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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Feb 09. 2016

[Thinkk Studio] Decha X Ploy

소울메이트

지난겨울 처음 디딘 태국의 땅은, 학창 시절을 보낸 파나마와 어딘가 닮아있었다. 그래서일까, 도착하는 날도 떠나는 날도 낯섦보다는 향수가 더 느껴지는 곳이었다. 눅눅하고 뜨뜻한 날씨도, 야자수와 물가의 경치도, 무엇을 먹으나 입에 맞는 음식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마음에 미련을 남긴 것은 사람이었다. 뜨거운 태양에 그을린 피부를 가진 태국 사람들은 정이 많았다. 서슴없이 말을 걸었고, 투박해도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 복잡한 주차장에서 차를 빼지 못해 쩔쩔매는 동안 어느새 다섯 명의 아저씨들이 둘러서서 왼쪽! 오른쪽! 후진! 등을 외치고 있었으니까.

띵크 스튜디오Thinkk Studio의 디자인에는 태국의 문화와 정서가 은근하게 묻어있다. 있는 척하지 않는 그들의 취향은 세련됨 안에서 자연의 소재를 자유롭게 놔두었고, 과감한 색상과 수공예 특유의 짜임을 과감하게 애용했다. 책상에서 스케치와 목업을 만드는 Ploypan에게 물었다. 그건 왜 그렇게 생겼냐고. 돌아온 대답은 허무하게도 좋으니까,였다. 매사에 까다롭게 굴 필요가 없다. 바쁘게 돌아가는 방콕과 대표적인 휴양지 코사무이를 오가며 일을 하고, 세계적인 디자인 페어에 정신없이 다니면서도 놀 땐 확실하게 노는 그들에게 '적당히'라는 개념은 '완벽'과 비슷한 느낌일 지도 모르겠다.


Decha Archjananun (이하 D)

Ploypan Theerachai (이하 P)


ⓒTHINKK


띵크 스튜디오는 어떤 그룹인가요?


Ploypan과 Decha가 공동대표로 있는 방콕의 디자인 스튜디오입니다. 저희는 대학에서 실내건축 공부를 하며 만났는데 오랜 시간 동안 함께 공부하고 일하고 연애한 끝에 몇 년 전 결혼을 했어요. 주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했었는데 공간을 만들다 보니 자연스레 제품과 가구 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커지더라고요. 지금은 리조트 같은 건축 스케일의 프로젝트부터 병따개 같이 작은 제품 디자인까지 작업하고 있어요.


어떻게 디자이너가 되었나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이유가 있나요?


P : 아빠가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는데, 어려서부터 현장에 따라다니면서 그 모습이 참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아마 아빠처럼 되고 싶었던 마음이 가장 클 거예요.


D : 제 가족 중에는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런데 어릴 적부터 그림을 잘 그리곤 했는지, 가족 중에 누군가가 건축가가 되는 건 어떠냐고 물었고, 그 생각이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둘 다 대학을 졸업하고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어요.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하면서 공간에 들어갈 가구와 제품을 고를 일이 많았는데, 일을 하다 보니 저희 마음에 드는 건 대부분 수입품이더라고요. 태국의 제조산업에도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죠. 저희가 태국에서 직접 디자인하고 생산할 수 있다면, 질도 높이고 가치도 담을 수 있을 테니까요.

제조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공모전 참가를 많이 했어요. 디자이너가 직접 사업가들을 만나 작품을 소개하고 생산과 유통까지 연결할 수 있는 워크숍들도 참여했고요. 그러다 2010년에 열린 Singapore Furniture Design Award 영디자이너 부문에서 ‘Scrap Facet’이라는 의자로 싱가포르 디자이너와 공동 2위를 하기도 했죠.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 보니 직접 제품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그러면서 알고 싶은 것이 더 많아졌죠. 더 배우고, 더 경험하고 싶어서 결국 함께 유학을 결심하게 됐어요. Decha는 스위스 로잔에 있는 ECAL에서 명품 디자인을, Ploypan은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Konstfack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하기 위해 떠났어요. 직접 부딪힌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굉장히 컸어요. 생각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 공부하는 방식, 소통하는 방식 등 아마 모든 방면에서 다르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어떤 것이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게 중 저희에게 유익한 것들만 수용해서 잘 담아온 것 같아요.


그리고 다시 태국으로 돌아온 거군요. 요즘에는 주로 어떤 프로젝트를 하나요?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워요. 상업 공간이나 거주 공간 등의 건축 프로젝트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코사무이에서 리조트 디자인을 하고 있고요.

제품 스케일에서는 대여섯 개의 브랜드를 위해 가구와 소품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주로 현지 소재와 공예를 현대 기술과 접목한 작업을 많이 해요. 의뢰받은 일 외에 자체 디자인 제작을 하기도 해요. 이 작품들은 스튜디오 이름 THINKK에서 KK를 GG로 바꿔 THINGG이라고 브랜딩하고 있어요. 그리고 매년 밀란 가구 박람회나 파리 메종오브제 같은 큰 디자인 전시에 주기적으로 참가하고 있죠. 예전에는 자비로 힘들게 갔지만, 이제는 클라이언트가 전시하면서 자연스레 홍보하는 방향으로 접어들고 있어요.


리조트 디자인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휴양지에서 일한다는 건 정말 이국적인 느낌이에요.


첫 고객이 프랑스 은행원이었는데, 그를 만나게 된 것부터 운이 참 좋았죠. 코사무이에 있는 럭셔리 별장을 디자인해달라는 일을 의뢰받은 것이 시작이었어요. 프로젝트가 입소문을 타면서 점차 섬의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리조트 하나를 개조해달라는 일을 맡으면서 지금까지 리조트 프로젝트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최근에 하고 있는 것들은 소규모 부티끄 리조트가 대부분인데, 한정된 예산으로 멋지게 만들어야 하니 어렵지만 그만큼 도전적이고 재미있어요.

여행하면서 일도 할 수 있다는 게 리조트 디자인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눈부신 섬에 머물면서 바닷물에 발 한 번 담그지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에요.

ⓒTHINKK


가장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현재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Lanna Factory'예요. 상업적 상품이 지겨워지면서 좀 더 실험적이고 재미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등갓을 만드는 기계를 개발하기로 했죠.

태국에는 털실로 만든 알조명이 유명한데, 이 제품을 제작하는 방식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작은 풍선에 실을 감고 풀이 마르면 풍선을 터뜨려서 속을 비우거든요. 그리고 천을 짜는 베틀에서 영감을 얻어 기계를 완성했어요. 발로 페달을 밟아 틀을 돌리면서 실을 감는데, 갓의 형태나 실의 색깔 및 방향 등을 직접 조정하며 각자의 취향대로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누구나 집에서 3D 프린터로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사람과 기술과 기계가 조금 더 밀접하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었어요. 현대 기술이란 훌륭하지만, 자원이 부족할 땐 가장 단순한 기술이 최고의 해결책이 될 수 있거든요. 상업적인 목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좋은 기회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요. 파리와 프랑크푸르트에서 전시되었고, 유럽의 다양한 디자인 숍들에 입점할 예정이에요.

언제부턴가 방콕이 굉장히 트렌디하고 디자인에 민감한 도시로 부상하고 있어요.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방콕 역시 서울처럼 유행에 민감한 도시들과 비슷해요. 디자인과 라이프스타일이 한데 섞여서 함께 흐르고 있죠. 식당과 갤러리, 카페와 서점 등이 독특한 분위기 안에 모여있고, 사람들은 한 곳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이런 공간을 많이 찾아다녀요. 복합문화공간으로써는 The Jam Factory라던지 The Commons가 대표적이고, 디자인과 문화에 관심을 갖고 태국에 오셔서 한 번쯤 방문해보시면 분명히 좋아하실 거예요.

하지만 방콕을 디자인의 도시라고 보긴 힘들어요. 디자인보다는 문화적으로 풍부하고, 재미있는 일들이 많고, 사람들이 따뜻하죠. 화려하고 유명한 곳들도 좋지만, 로컬 마켓에서 서민적인 음식을 먹으며 느긋하게 여행하시기를 권하고 싶네요.


태국은 성에 관해서는 굉장히 개방적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성애라던지, 트랜드젠더가 많다고 들었는데 이런 문화가 디자인 사회에도 영향이 있나요? 태국 패션 브랜드를 보니 화려한 디자인이 많았어요.


구체적으로 성에 대해 오픈되어 있다는 점이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해석할 수 없지만, 태국인들은 개방적인 만큼 독립적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패션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하죠. 남들 사이에 어우러지는 것보다 개성 있는 게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패션업계가 화려하고 다채로운 것은 그런 이유가 크다고 생각해요. 아마 다른 디자인 분야보다 패션에서 더 두드러질 거예요.

두 분이 부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결혼 전 연애기간이 길었죠? 유학시절에는 떨어져 있어야 했겠어요.


연애부터 따지면 17년이나 되었네요! 저희도 가끔 놀라운 사실이긴 해요. 친구로 시작해서 계속 좋은 친구로 살아가고 있고, 앞으로도 서로에게 둘도 없는 친구로 남겠죠. 태국 사람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둘 다 성격이 까다롭지 않고 느긋한 점도 오랜 관계에 한몫하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나라로 유학을 가긴 했지만, 오히려 같은 시기에 유럽에 함께 있다 보니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어차피 공부하느라 각자 바빴고요. 어떤 때는 일주일 내내 연락하지 못한 적도 있어요. 입만 열면 주로 학교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였지만, 그게 저희에겐 가장 흥미롭고 공감 가는 주제였어요. 가장 큰 관심사가 같다 보니 자연스럽게 서로가 가장 편한 존재가 되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에서 각자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둘의 성향이 다른 것 같은데.


P : 둘 다 디자이너의 역할을 해요. 모든 프로젝트는 함께 동의하는 방향을 찾는 것으로 시작해요. 그래도 주로 제가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역할을 하죠. 전 사람 만나는 걸 엄청 좋아하거든요. 평소에 사람들을 잘 관찰하는 편이에요. 그래서인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를 빨리 캐치하게 되는 것 같아요.


D : 전 인하우스 작업에 더 집중하는 멤버죠. 주로 스튜디오 내에서 프로젝트와 직원들을 관리하는 쪽이에요. 사교적으로 활발한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래서 저희 둘이 파트너로서 궁합이 좋은 것 같아요. 


배우자와 함께 일하는 건 어떤가요?


P : 매사에 있어서 동등한 관계로 일하려고 해요. 그래서 모든 결정을 함께 내리죠. 언제나 서로의 의견을 묻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서로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그런 경우 누군가는 상대방을 결국 설득해내야 해요. 물론 일이 아닌 일상에서는 Decha가 저의 의견을 따라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제가 버릇이 없어진답니다(웃음).

일에서나 생활에서나 가장 가까운 파트너가 동일 인물이라는 건 장점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일상생활과 업무시간의 경계가 거의 없어서, 끊임없이 일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된다는 점은 다소 아쉽죠. 일을 하지 않는 Decha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워커홀릭이거든요.


소울메이트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서로에게 어떤 방식으로 소울메이트가 되어주고 있나요?


P : 살면서 한 번도 소울메이트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저는 그다지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거든요.


D :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새로운 스튜디오 공간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방콕 근교에 땅을 조금 샀어요. 그곳에 지을 스튜디오 건물을 설계하고 있는데, 갤러리와 사무실, 그리고 거주공간까지 함께 만들 예정이에요. 방콕의 교통은 정말 끔찍하거든요. 매일의 출근길이 교통체증으로 스트레스 받는 시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하게 되었어요. 어쩌면 유럽에서의 시간이 준 영향일 수도 있겠네요. 약 3년 전에 유럽에서 돌아오자마자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정이거든요. 올해 안에는 꼭 완공해서 이사하는 게 바람이에요.


띵크 스튜디오는 어떤 목표들을 세우고 있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냥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해요. 지금을 충실하게 산다면 미래는 조금씩 나아질 거라고 믿거든요.


우리는 평소에 수많은 건축물을 드나들며 셀 수 없이 많은 의자에 앉아 도자기 잔으로 커피를 마시고 천장에 달린 조명을 밝히지만, 이 모든 것이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처럼 누구의 손을 거쳐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쉽게 가지지 않는다. 뒤에 숨어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야 사소한 소재와 형태 등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비로소 모든 것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태국에는 푸켓이나 크라비 같이 매력적인 섬들이 많지만, 우리는 코사무이에 가기로 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띵크 스튜디오가 디자인한 리조트에 머물 수 있는 호사를 누렸다. 연말이라 바닷가에는 남은 방이 없어 산 속에 있는 독채로 잡았는데,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해변과 시내에서 벗어나 호젓한 야자수 숲 속에 있으려니 오래간만에 무無의 감각이 밀려왔다. 째깐한 도마뱀이 붙어있는 하얀 천장을 보고 누워 있으려니 누군가의 이런 시간을 상상하며 하얀 종이를 채웠을 두 사람이 생각나 새삼 방의 모든 모서리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www.thinkk-studi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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