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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Mar 07. 2016

코브라파스타클럽 셰프 윤지상 인터뷰

Taste : 맛, 그리고 취향

SNS 메시지에 이름과 시간, 인원수를 적는다. 아까부터 자꾸만 벌렁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시계를 주시한다. 10시 29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 같다. 10시 30분의 순간, 전송 버튼을 누르고(아니, 터치하고) 이렇게 또 운명은 내 손을 떠났다. 아침이 되면 가까스로 골인에 성공한 이들의 영광스러운 이름이 공지되고, 희비가 교차하는 댓글이 달린다. 어떤 이들은 5수 만에 성공했다고 신입생 마냥 흥분을 감추지 못하기도, 어떤 이들은 손가락이 빠른 건지 운이 좋은 건지 재방문이기도 하며, 어떤 이들은 하염없이 인터넷만 탓한다.

망원동에 갑자기 나타난 파스타 식당, '코브라파스타클럽Cobrapastaclub'이 마주하는 매일이다. 가게 밖에서 기다리는 손님의 줄이 점점 길어지기만 해서 예약제를 도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가게 안에 테이블은 셋, 직원은 하나(사장님)다. 작은 메뉴판에는 넷, 그중 '가브라스'라는 메뉴는 모든 미방문자들의 침샘과 혓바닥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을지로, 일본, 미국, 또는 자택에서 공수한 가구와 소품들 사이에 앉아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니 맛보다 사람이 궁금해졌다.

코브라파스타클럽(이하 코파클)이라는 이름이 특이해요.


언젠가 술집을 연다면 '피닉스' 또는 '코브라'라는 이름을 쓰고 싶었어요. 원래 병맛 코드나 키치한 정서를 좋아하거든요. 나폴레옹 다이너마이트Napoleondynamite(미국 영화, 대한민국 밴드)처럼 혼자 진지한데 웃긴 것들 있잖아요. '클럽'은, 제가 정식 교육을 받은 요리사가 아니라서 그런지 레스토랑이나 비스트로 같은 호칭이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B급에서는 관용과 포용이 느껴져요. 별 것 아닌데 장황하죠?


원래 술집을 하고 싶으셨다고요.


술도 있어요. 파스타를 안주로 생각했는데 온전한 파스타집이 되어버렸죠. 웨이팅이 너무 길어서 유유자적 술을 마실 수 없는 환경이 됐어요. '파스타 가브라스'는 원래 술안주라서 간이 센 거예요. 식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죠.


메뉴는 직접 개발하셨나요?


'파스타 가브라스'만 제가 개발한 거고 나머지는 대구의 '더 자람 키친'에서 요리를 배우면서 익힌 레시피예요. 재료나 간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기본 토대는 거기에서 가져왔어요. 하지만 남의 레시피 만으로 장사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제 시그니처를 만들게 됐죠.


같은 메뉴만 반복해서 만들려면 지칠 것 같아요. 리뉴얼 계획은 없나요?


두어 가지 개발 중인데 조금 더 테스팅해봐야 해요. 이름도 고민 중에 있어요. '파스타 가브라스'는 코스타 가브라스Costa Gavras라는 영화감독 이름에서 따온 거거든요. 정석을 쫓아야 하는 곳이 아니다 보니 사소한 것에서도 자유도가 높아서 좋아요.

SNS 포스팅을 언제나 영화 장면으로 하시죠. '살모사비디오클럽'이라는 걸 언급하시던데.


영화를 끔찍하게 좋아해요. 코파클의 모태가 된 영화가 '비카인드리와인드Be Kind Rewind'랑 '웰컴 투 콜린우드Welcome to Collinwood'인데, 둘 다 엉성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사업자 등록하러 세무서에 가서까지도 '콜린우드'랑 '코브라파스타클럽'을 놓고 한참 서서 고민했네요. 결국 더 이해하기 쉬운 이름으로 선택했어요. '콜린우드'는 자칫하면 어쭙잖은 카페처럼 들릴 수도 있을 것 같고.

'살모사비디오클럽'은, 영화 상영회를 하고 싶어서 지어놓은 이름이에요. 이렇게 계속 파스타만 만들고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브라운관 티비를 놓고 옹기종기 모여 비디오테이프로 옛날 영화를 보고 싶어요. 정기적이지 않더라도 올여름부터는 조금씩 진행해볼까 해요. 그리고 코브라보다 살모사가 더 웃긴 것 같아요.


미대도 다니셨고 영화도 좋아하시는데 왜 예술 계통의 일을 하진 않았는지.


영화나 음악은 어릴 적부터 너무 좋아했는데,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은 다르더라고요. 대구에서 조소를 시작했는데 학교 커리큘럼과 제 성향이 잘 맞지도 않았고, 그제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던 동기들이 갑자기 예술가 흉내를 내는 모습이 불편했어요. 학교를 그만두고 2007년에 모션그래픽이나 뮤직비디오를 배우고 싶어서 서울로 올라왔는데, 영상 씬scene은 이미 과잉이 된 상황이었죠. 이미지는 넘쳐나고, 아무것도 없는 걸 있어 보이게 만들려는 작업이 싫었어요. 무엇보다 어려서부터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눈이 높아져서 스스로를 만족시키기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아버님께서 문화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아버지는 예술 포스터 장사를 하고 싶어 하셨어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같은 작가들을 엄청 좋아하셨거든요. 직접 외국에 가서 포스터를 모으고, 제작도 하고, 가게 공사까지 다 해놨는데 결국 오픈을 안 하시더라고요. 이유는 아직까지도 모르겠어요. 창고에 수두룩하게 쌓여 있던 포스터들을 10년 전쯤에 처분하셨는데, 그때 챙겨놓은 걸 결국 제 가게에 걸게 되었네요. 가게 인테리어는 중학교 때 살던 집과 똑같아요. 할아버지부터 문화적으로 많이 깨어있었던 것 같아요. 할머니가 일본분이셨는데 일본 문물에는 콧방귀도 안 뀌셨어요. 유럽만 좋아하시고. 한마디로 사대주의죠 하하.


그래서 영화도 많이 보셨나 봐요.


부모님께서 에로영화만 아니면 연령제한 상관없이 보여주셨어요.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 있는 비디오 가게 사장님들이 모두 저를 알았어요. 새로 들어온 비디오가 있으면 먼저 검증을 요청하기도 하시고. 비디오 산업이 그대로 있었더라면 그 일을 하고 있었겠죠.

어째서 비디오테이프죠? 음악은 카세트테이프인가요?


음악은 주로 LP로 들어요. 비디오테이프와 같은 느낌인데, 둘 다 수동으로 조작해줘야 하는 매체라 더 집중하게 돼요. 한쪽이 끝나면 뒤집어줘야 하니까. 요즘에는 음악을 BGM으로 많이 듣잖아요. 그것보다 감상이 중심이 되는 게 좋아요. 최근에는 비디오가 가득 담긴 박스를 배송받게 되었는데, 박스를 뜯는 내내 주체할 수 없이 기뻤어요. 아직도 나에게 이렇게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있구나,라고 다시 느꼈죠.

아티스트보단 음악에 담긴 기억을 좋아해요. 집에 가는 길에 있던 레코드샵에서 비 오는 날마다 틀었던 노래, 쪼그리고 앉아 쇼윈도의 LP 커버를 구경하며 들었던 음악, 그 시간의 냄새와 축축함 등이 노래를 들으면 생생하게 떠올라요. 과거에서 벗어나서 미래를 바라보라고 많이들 그러는데, 전 그 반대예요. 과거란 머릿속에 계속 있잖아요. 안 좋았던 기억도 좋게 가공돼서 영원히 소유하게 되는데, 존재하지도 않고 막상 닥쳐도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미래가 뭐가 중요하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요리를?


코파클은, 뭐라도 성과를 내야 할 시점이었기에 시작한 거예요. 사회적으로가 아니라 저 자신에게 말이에요. 멍 때리는 걸 좋아해서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너무 많이 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 자신감이 낮아지더라고요. 해놓은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모아놓은 돈도, 배운 기술도 없다고 생각하니 그런 자신에게 넌더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겁을 많이 냈던 것 같아요. 이번에는 저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화도 났고, 궁금하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요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대단해요. 음식에 대한 감각은 자연스럽게 묻어있었던 것 같아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니 식당을 하게 됐네요. 사실 고등학교 때 요리 유학을 갈 뻔도 했어요. 남들이 안 간 길을 갈 수 있을 것만 같았거든요. 그런데 준비 중에 퓨전 음식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청담동에 퓨전 레스토랑이 우후죽순 생기고, 남자 셰프들이 유명해지고, 연예인들이 요리책을 내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안 갔어요.


성장과정에서 터득하게 되는 감각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직접 해보니 어떠세요?


정말 힘들어요. 육체적인 부분은 그래도 괜찮아요. 손발이 느려서 몸으로 때우는 건 익숙하거든요. 남들보다 더 일찍, 더 오래 하면 됐으니까요. 그것보다 제 시간이 부족한 게 제일 힘들어요. 혼자 영화 보고 음악 듣는 게 낙인데, 그 시간이 현저히 줄었어요.

인생 파스타, 코켓팅{코브라파스타티켓팅), 수강신청 등의 연관어가 생겼어요.


작년 9월 5일, 토요일 오후 5시에 오픈했는데, 그다음 주 목요일에 사람들이 줄을 섰어요. SNS에서 유명한 손님이 포스팅을 한 거예요. 아직 메뉴도 손에 안 익었고, 가게 시스템도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정말 당황했어요. 그래도 감사하고 초연했어요. 스스로 셰프라고 한 적도 없고, 최선을 다하고 있고, 떳떳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해요. 파스타를 만드는 일 외에는 하는 게 없으니 마케팅을 더 해야 하는지, 요리 공부를 더 해야 하는지.


SNS의 덕을 보기도 했지만 음식이 맛있으니 인기가 이어지는 거겠죠. 제가 먹어본 코파클 음식은, 맛도 맛이지만 가정에서 만든 것 같은 양과 플레이팅에서 꾸밈없는 편안한 정성이 느껴져요. 대중은 멋있는 것도 좋아하지만 친숙한 것에서 큰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가장 신경 쓰는 건 어떤 부분인가요?


결국 맛이에요. 어떤 사유로 인해 음식이 조금 짜게 나갔는데 손님들 표정이 안 좋거나 남기시면 계속 신경 쓰여요. 그러고 나면 그다음, 그다음 주문에도 표정만 살피게 돼요. 그래서 지금은 손님들을 못 보겠어요. 나가시면 접시를 확인하죠.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잘 안 고쳐져요.

오픈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찾아오는 분들의 반응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조용해요. 어쩌다 맛있다고 해주시면 날아갈 것 같고 깊은 안도감이 들어요. 아, 오늘도 살았구나.


맛집이라는 타이틀의 문제인 것 같아요. 잘 모를 때는 편견 없이 먹는데, 입소문을 타는 순간 평가단의 자세를 갖게 되는 거죠. 식당은 그대로인데 그걸 대하는 소비자의 태도와 기준이 달라져버려요. 모두 제각각의 기준을 갖고 있을 테고. 너무 미안한 마음으로 일하시는 것 같아요.


예약제 때문에 불만을 가지시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10시 반 정각에 수십 통의 메시지가 오고 저는 공정하게 선착순으로 명단을 작성해요. 얼마 전에는 예약 때문에 SNS에서 분란이 일어나서 글을 삭제하기도 했어요. 제 입장에서는 감사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면 파스타 한 접시일 뿐이잖아요.

남들이 하는 걸 나도 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음식을 먹는 것보다 인증샷 찍고 싶어서 오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SNS에서 본 컵, 접시 등을 요구하기도 해요. 사진 찍는 동안 파스타는 다 식어버리고.


취향을 형성하거나 문화를 소비하는 기준이 너무 획일화되어 있고 폐쇄적이죠.


인정하기 싫지만 민족성도 있는 것 같아요. 개척하는 능력도 없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줄 몰라요. 부자들은 돈이 있어도 제대로 쓸 줄 모르죠. 한국 사람들이 비참해지는 이유는, 자기 기준에 맞는 행복을 찾을 줄 알아야 하는데 죽을 때까지 도달할 수 없는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되고 싶어서예요.


한편으로 코파클에 들어서면 주인의 취향이 여실히 드러나요. 첫 눈에는 소박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찬찬히 둘러보면 신경 쓴 티가 역력해요. 조명, 가구, 그릇, 열쇠고리까지도. 그럼에도 화려하진 않아요.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들은 완벽을 추구해요. 그래야 불안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멋 낸 티가 나는 걸 안 좋아해요. 예를 들면,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백팩을 멋 때문에 메고 다니는 걸 못 참겠어요. 패션은 좋아하지만, 멋 부리는 건 싫어요.


누가 보기에는 이 가게도 한껏 멋 부렸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래도 모든 요소마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떳떳해요. 보이기 위해서 표면적으로 놓은 건 하나도 없어요. 요즘엔 뭘 하든 레퍼런스가 다 비슷비슷해요. 그걸 따라가려다 보면 답은 없어요. 그래서 개인 취향이나 정체성이 점점 중요해지는 거겠죠.

느지막이 요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요. 어떻게 하는 거죠?


저처럼 하려면 일도 아닌 것 같아요. 기술보단 입맛인 것 같아요. 전 이론적으로는 잘 모르고, 그냥 맛있으면 돼요. 그렇다고 사람이 먹으면 안 되는 재료를 쓰는 건 아니니까요. 요즘엔 요리 콘텐츠가 엄청 많잖아요. 따라 한다고 그 맛이 나는 것도, 그 비주얼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몇 번 보고 만들면서 연구해보면 다른 레시피가 나와요. 그러면서 본인의 메뉴가 되는 거죠. 많이 먹어보고 맛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어요. 맛 또한 취향이니까.

영화와 음악, 그리고 파스타. 따지고 들자면 연관성 없는 것들이다. 한 가지 공통점이라면 윤지상이라는 사람의 취향과 시간이라는 것. 그의 기억과 감각, 과거와 현실이 모여 코브라파스타클럽을 만들었다. 그에겐 당연함과 자연스러움으로 무장한 공간이었고, 많은 사람들은 파스타를 먹는 것 같지만 그 이상을 오감 속에 담고 돌아왔다.

독특한 콘셉트로 세워지는 공간을 많이 본다. 게 중에는 새롭지만 마치 그 자리에서 오랜 시간을 한 듯한 곳들이 있고, 그 나머지는 새롭지만 또 새 것이기만 하다. 무엇이 더 뜨거운지, 어렵지 않다. 우리는 취향이 기준이 되는 시대에 산다. 취향은 베낄 수 없는 것이고 시간이 필요한 것이며 물려줄 수도 있는 것이다. 무언가에 푹 빠져본다는 것, 빠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일 테다.


+ 인터뷰이가 '셰프'라는 호칭을 꺼려했으나 '대표'보다는 '셰프'가 나은 것 같아 사용합니다. Chef는  요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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