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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Mar 14. 2016

조각가 강용면 인터뷰

ⓒ kangyongmeon


수천 개의 얼굴들이 옹기종기 모이고 쌓여 파도를 이루었다. 몇 해 전 우리 곁을 떠난 수백 명의 아이들이 떠오르기도, 70년 전 길거리에서 국기를 흔들며 자유를 외쳤을 사람들이 연상되기도, 한편으로는 어깨를 부대끼며 좁은 도시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지금의 우리가 보이기도 했다. 흙빛의 인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안중근 의사 같은 민족의 영웅도 있지만 배트맨 같은 가상의 히어로가 중간중간 눈을 마주치며 짐짓 긴장되었던 마음을 놓아준다. 강용면 조각가의 작품 ‘현기증’은 고은 시인의 ‘만인보’에서 태어났다. 시인이 하나하나 손으로 써 내려갔다면 조각가는 하나하나 손으로 빚었다. 모두가 아는 사람, 또는 아무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역사를 쓰고 있었다. 그 가운데 서서 이를 마주하고 있자면 조금 어지러워진다.

강용면 작가를 만나기로 한 날, 전라도에는 폭설주의보가 내렸다. 기차역에서 마주한 그는 카멜색 모직코트에 붉은 머플러를 걸치고 훤히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군산의 중년작가에 대해 떠올렸던 이미지는 비루한 선입견으로 그쳤고, 우리는 휘날리는 눈발에서 벗어나 작업실 히터 앞에 모여 그가 타주는 믹스커피부터 한잔 삼켰다. 바람 사이로 햇빛이 드는 기다란 창문 앞에 앉은 조각가의 미소는 부드러웠다. 오랜만에 만난 큰아버지처럼.

하지만 인터뷰가 시작되어 오가는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그의 목소리와 표정에 무거움과 어둠이 서렸다. 그의 까칠함은 사라져가는 우리의 전통으로 향해 있었다. 대한민국 문화에서,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세워지는 예술에서 정체성이란 점점 정의 내리기 힘든 것이 되어가고 있었다. 매해 수천 명의 학생들이 미국과 유럽 등지로 유학을 떠난다. 새로운 문화와 문물을 배우고 수용하고자 하는 자세는 훌륭하다. 자신의 뿌리도 아직 제대로 모르는 어린아이가 신기한 것을 보고 따라 하기 급급 해지는 게 문제다. 내 것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는데 남의 것이 어찌 읽히겠나. 한국의 예술가들은 역사와 문화의 퍼즐을 맞추기도 전에 표면과 효과에 집착하는 서양 예술산업의 아류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사고하고 지향하도록 교육받아온 젊은 작가들을 탓할 수가 없다. 체할 정도로 빨리 성장한 나라에서, 우리의 것보다 남의 것에 목말라있던 세대는 결국 어느 쪽에서도 메마르게 되었다. 그리고 강용면 작가는 통탄했다. 그의 작품들은 전통적인 오방색과 불교문화의 상징, 죽음과 삶의 공존, 외국인은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의 정서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아마도 의무적으로 담았다. 알록달록하고 묵직한 작업에서 빛과 노니는 소재, 온통 흙빛으로 쌓은 작품에 이르기까지, 그는 한국의 조각들을 차곡차곡 모아 세계를 만들고 있었다. 작은 얼굴들이 큰 파도를 일으키는 것과 같이.

ⓒ kangyongmeon


Watch full interview >  https://youtu.be/TJQewnzOT9U

우려가 깊은 사람이지만 그에게선 ‘꼰대’의 향이 풍기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덜 겸손해도 될 정도의 태도로 우직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사상과 꿈을 고백했다. 강용면 작가는 언젠가 있을 뉴욕에서의 개인전을 그렸고, 인스타그램 댓글에 영어로 성심껏 대답해주었다. 이 시대의 예술가란 자본 앞에서도 지지 않을 수 있어야 하며, 문화를 잘 모르는 대중과도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배고픔과 고독이란 더 이상 예술가의 미덕으로 고려되지 않는다. 많은 이력을 세워온 그였지만 여전히 이루고 싶은 꿈이 많았고, 우리는 함께 그의 단골집에서 비빔밥을 비벼먹으며 유럽에서의 활동을 현실적으로 논해보았다. 새로 물꼬를 트는 가능성에 금세 반짝이는 모습 앞에서 그의 나이도, 우리의 나이도 의미를 잃었다.

하루의 끝에서 작가는 한국의 첫 번째 빵집이라는 ‘이성당’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일제 강점기에 쌀 수탈의 전전기지였던 군산은 근대문화유산이 가장 많이 남은 도시가 되었고, 이성당의 유명한 단팥빵 역시 그 흔적 중 하나였다. 이런 곳에서 전통을 지키고 한국의 사상을 알리는 작업을 하는 것이 우연의 일치라 치부하기엔 너무 강한 필연처럼 느껴졌다. 서울에 올라가서 가족과 나눠먹으라며 양손 두둑이 종이백에 빵을 싸주는 그에게서 잊고 있던 한국인의 정이 듬뿍 느껴졌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 쏟아진 폭설에 발걸음이 한층 무거워졌지만, 비단 쌓인 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yongm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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