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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Mar 21. 2016

하이드아웃 셰프 이규성 인터뷰

Taste : 맛, 그리고 취향

녹사평역 출구에서 달리는 차를 따라 죽 걷는다. 이태원의 끝이라고 할 법한 곳에 다다르면 소월길의 시작과 만난다. 지도 앱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들면, 왼쪽 너머의 남산 타워와 오른쪽의 오밀조밀한 동네 사이에 서있는, 어딘지 웅장한 느낌의 검은색 건물과 마주하게 된다.

오색찬란 네모난 빛들이 벽과 바닥에 흩어지는 공간에 들어섰다. 스테인드글라스가 연상되는 인테리어인데, 이유를 물어보니 건물 옆 가로등의 빛이 별로 예쁘지 않아 낸 아이디어라고 했다. 그리고 건물에 직접적으로 손댈 수 없으니 자석으로 아크릴판을 붙인 것이라고. 그게 다였다. 쉬웠지만 자연스러웠고, 무엇보다 멋졌다. 마음에 드는 인터뷰가 될 것 같은 예감은 어째서 틀린 적이 없나.

원래 꿈이 셰프였나요.


사실은 음악을 정말 좋아해요. 디제잉을 10년 넘게 해서 아직도 셰프보다는 DJ라는 호칭이 더 편해요. 형을 통해 일렉트로닉 음악을 접하게 됐고 푹 빠져버렸죠. 꽂히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라. 친구들이 H.O.T.에 빠져 있을 때 전 Prodigy를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미국에서 거의 13년 정도 혼자 살았어요. 덕분에 해외생활을 하면서 다방면에 관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음악, 장난감, 그리고 사람들. 카투샤에서 통역을 하면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하는 걸 잘하고 즐긴다는 걸 느꼈죠. 그래서 복학과 동시에 Hospitality(외식+호텔업) 경영학과로 전과했어요. 그 전공에 요리수업이 있어요. 다른 친구들은 그 수업을 싫어해요. 셰프가 되려고 온 게 아니니까. 그런데 전 너무 재미있고 학점도 잘 나오는 거예요. 맛있게 만들면 되고, 그건 자신 있었거든요. 어머니가 요리를 좋아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줄곧 보면서 컸는데, 어머니 말씀으로는 제 간 보는 스킬이 남달랐다고 해요.

여하튼 학교를 졸업하고 포시즌스Four Seasons에서 회계업무를 하게 됐는데, 편하더라고요. 편한 만큼 혼란스러웠어요. 그렇게 살려고 미국에 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어디서도 절 받아주지 않았어요. 경력은 없고 학력만 높았던 거죠. 그러다 CIA 출신의 셰프를 만나게 됐는데, 학교에 갈 생각이라면 거두어주겠다고 하시더라고요(CIA에 입학하려면 6개월의 경력과 셰프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덕분에 바닥부터 일도 배우고 학교에도 진학할 수 있었어요.


학교를 오래 다녔네요. 늦게 시작한 만큼 부담이 컸겠어요.


제일 힘들었던 건, 다들 요리사의 꿈을 품고 학교에 왔는데 저는 너무 캐주얼하게 그 사이에 껴있던 거예요. 자주 의기소침해지기도 했어요. 그래도 막상 그렇게 못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재미있었어요.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항상 혼자였는데, 요리 업계는 군대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그만큼 의리로 똘똘 뭉치거든요. 그런 소속감을 처음 느껴본 거죠.


사람을 좋아하니 그런 부분에서는 잘 맞았나 봐요.


진짜 재미있는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부잣집 자식들도 있지만 생계가 걸린 이민자들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배우는 게 많아요. 번듯한 호텔에서는 뻔한 캐릭터만 보게 되거든요.

셰프라면 갖게 되는 공통점에는 뭐가 있을까요.


아마도 삶이 조금 빡빡하다는 것. 레스토랑에 삶을 쏟아붓게 되거든요. 항상 애인이랑 싸우고, 친구 결혼식은커녕 가족과 휴가도 못 가요.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적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셰프들끼리 뭉치게 되는 것 같아요.


일반 셰프와는 다른 점이 분명하게 있어요.


요리 외의 관심사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물론 요리사라면 음식에 미쳐있는 게 맞겠죠. 하지만 전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온통 요리뿐이니까. 전 학교 끝나면 음반도 사야 하고 클럽 가서 음악도 들어야 하는데, 친구들은 식재료 사서 이걸 굽네 볶네 찌네 하고 있는 거예요. 저도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건지 고민이 많았지만, 삶을 너무 좁히지 않고 다양하게 끌고 가는 게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왔으니 하이드아웃이 있는 거겠죠.


맞아요. 부정할 수 없어요. 셰프가 아니어도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했었는데, 이렇게 빨리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방학만 되면 한국에 와서 클럽을 갔어요. 제가 액면가도 높고 덩치도 큰 편이라 출입이 다소 수월했거든요. 그러다 DJ Soulscape와 친해지게 됐는데, 저에게 종종 디제잉을 시켜주기도 하고 형이 필요한 레코드가 있으면 미국에서 사 오기도 하며 지내던 중 360 Sounds가 결성되었죠. 이 크루와 함께 Cooking & Scratching(음식과 음악을 결합한 이벤트)을 해오던 중 소월길에 자리가 났다는 연락을 받은 거예요.


요리와 디제잉을 동시에 즐긴다는 건, 교차점이 있어서일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좋아하는 걸 공유하고자 하는 마음이에요. 음악이 너무 좋아서 댄스 플로어에서 들려주고 싶은 게 모든 디제이의 초심이에요. 음식도 마찬가지죠. 함께 먹고, 공감하고. 뭔가 좋아하는 마음이 계속 커지면 결국엔 나누고 싶어 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최종적으로는 요리를 선택했나요.


끝까지 저를 괴롭혔던 고민이 바로 그거예요. 음악이 너무 좋았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음악으로는 먹고살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업으로 삼아보니 취미가 일이 되는 게 최고의 시나리오도 아니더라고요. 좋아하기 때문에 취미로 남겨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야 더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지금도 음악은 언제든지 틀 수 있는데, 요리는 아직 그만큼의 자신감과 짬이 없어요. 하지만 디제잉도 바닥부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얻었던 자신감을 모티브로 삼고 요리하는 중이에요. 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되는 날이 올 거라 믿어요.

하이드아웃 음식의 장르는 퓨전이라고 볼 수 있겠죠.


요리 경력이 긴 것도 아닌데 남들 다 하는 것처럼 해봤자 경쟁력이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유학생활 동안 먹었던 것들을 많이 풀어내는 편이에요. 특히 처음에 개발한 번 메뉴가 그렇죠. 꽃빵 안에 돼지 뱃살을 넣은 건데, 외국 친구들은 껌뻑 넘어가요. 뭔가 햄버거 같기도, 샌드위치 같기도 한데 아시아의 맛이 나니까 너무 이국적인 거죠. 그 인기를 기대하고 만들었는데 애피타이저 수준으로 나가고 있어요. 삼겹살을 밥 먹듯이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새로울 게 없던 거예요. 줄 서서 사갈 줄 알고 테이크아웃 용기도 만들어 놨었는데 하하.

꼬리곰탕 파스타는 어머니에게서 영감을 받았어요. 방학 때마다 꼬리곰탕을 끓여주셨는데, 파스타 소스로 만들었을 때 육수가 가진 점성이 잘 맞아떨어질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4년 전인데 이제야 메뉴로 만들게 되었죠.


요리 철학이라는 게 있다면.


멋 부리지 않은 음식이 좋아요. 미국으로 치면 Diner, 한국이라면 국밥집. CIA 졸업생 중 99%가 파인 다이닝으로 빠져요. 하지만 우리는 그런 음식을 먹고살지 않잖아요. 평소에 즐기지 않으니 표현도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좋아하는 걸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거기에서 필요한 건 뭘까요.


적어도 제가 느끼기로는, 직접 먹어본 맛 밖에 표현이 안 돼요. 창조를 하는 것 같지만 모두 경험의 재조합인 거죠. 작년에, 요리를 시작하고는 처음으로 이탈리아에 갔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지방 음식도 먹고 서민음식도 먹고. 그중에 소의 침샘으로 만든 파스타가 있었는데 신기했어요. 영어로는 sweetbread라고 하는데. 그만큼 달고 지방이 많은 부위예요. 원래는 안 먹고 버리니까 서민들이 즐겨 먹었는데, 파인 다이닝에서 재발견되면서 인기가 많아졌죠.

디제잉도 똑같아요. 방에서 혼자 듣는 것과 댄스 플로어를 느끼고 오는 것과는 천지차이예요. 경험이 밑바탕이 되지 않고서는 어설프게만 되는 것 같아요.

줄 서서 음식을 먹는 게 점점 보편화되고 있죠. 외국도 마찬가지인가요.


우리나라보다 더 심한 경우도 있어요. 크로넛이라고 크로와상 도넛 같은 빵이 있는데, 새벽 다섯 시부터 줄을 서더라고요. 스카우터들이 사서 한 개에 100달러씩 받고 팔기도 해요.


왜 이렇게 먹는 것에 열광하게 되었을까요.


SNS 때문인 것 같아요. 인증이라는 게 너무 중요해진 거죠. 하이드아웃도 영향을 받고, 역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해요. 그래서 비주얼이 더 중요해졌어요. 음식은 이제 더 이상 미각만의 경험이 아니에요.


작년 여름에 했던 스티키몬스터랩Sticky Monster Lab과의 콜라보 영향도 컸겠어요.


제가 진짜 SML 마니아거든요. 오픈한지 얼마 안 돼서 심적으로 많이 힘든 때였는데, SML과 콜라보하면서 어찌나 흥분되던지 이런 순간 때문에 이 일을 하는구나 싶을 정도였어요. 물론 수제로 몬스터 젤리 만드느라 정말 고생했지만. 이번에는 삭스어필과 양말도 제작하고 있고요(3/22-3/26 하이드아웃에서 팝업스토어 진행).


음악이나 요리만큼 피규어에 대한 사랑도 만만치 않은 것 같아요.


장난 아니죠. 제 성격 때문인데, 도무지 하나로는 만족이 안 돼요. 토이에 대한 관심도 유학 생활하면서 시작됐어요. 집이 휑해서 하나씩 사들이기 시작한 피규어가 이렇게까지 왔네요. 하이드아웃도 집처럼 꾸미다 보니 여기저기 장난감이 많아요. 지저분하다고 싫어하는 분들도 간혹 있는데 취향의 차이죠 뭐.

메인 셰프로 일해보니 어떤가요.


자기 가게에서 일하는 건 직원으로 일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예요. 퇴근이라는 게 없죠.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저의 일이지만 그래서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김민준 대표, DJ Soulscape 모두 요식업은 처음이라 다 같이 부딪혀가며 배우는 중이에요.


그 과정에서 가장 많이 느낀 게 있다면.


불가능은 없다는 것. 이 많은 사람을 어떻게 먹이지, 하고 걱정하지만 어느새 마지막 설거지를 하고 있어요. 저도 처음이라 무서운 게 많았거든요. 그런데 하면 돼요. 사이클에 진입하는 게 어려울 뿐이지, 한번 발 담그고 나면 굴러가요. 물론 이것 외의 제 삶은 여기저기 구멍이 나고 있기도 하지만.


셰프가 가져야 할 자질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계속해서 디제잉과 비교가 되는데, 어렸을 땐 음악을 들으면서 왜 사람들은 이걸 즐기지 못할까,하는 자만심이 있었어요. DJ 초창기에도 '내가 가르쳐줄게'라는 오만한 태도가 있었는데 점점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호흡할 줄 알아야 하는 거였어요. 제가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받기도 한다는 걸. 음식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되 저만의 색깔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 중이에요. 그리고 그런 면에서는 하이드아웃이 잘 하고 있는 것 같고요.

인터뷰가 끝난 주말에 친구들을 데리고 하이드하웃을 한 번 더 방문했다. 이번에는 브로콜리와 치토스(네 맞습니다, 그 "먹고 말 거야" 치토스)로 만든 메뉴를 추천받았다. 도무지 어이가 없는 조합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궁리하고 있으니, 우습게 보지 말라며 제법 자신 있는 제스처로 음식을 내놓았다. 눈이 부신 초록과 주황빛의 조화, 아니 대비, 브로콜리와 치토스를 크림수프 같은 소스에 담가 먹으니 묘하게도 궁합이 좋았다. 홀린 듯 에일맥주 한 잔을 시켰다.

홀 한쪽에 세워져 있는 턴테이블, 대낮부터 베이스를 때리는 하우스 음악과 카운터에 즐비한 피규어들, 그리고 정확히 장르를 알 수 없는 메뉴 이름들의 합작과도 같은 맛이다. 이유를 따지고 들어봤자 답은 없다. 하지만 애초에 질문이란 없었던 것처럼 당연하게 오감으로 스며든다. 꾸민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도.

삶의 모든 점들을 굳이 의식적으로 연결시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저절로 뭉쳐진다. 취향이라는 기준 아닌 기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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