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엄마랑 딸이 하는 작은 그릇 가게가 있어요.'
이 짧은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가족과의 시간은 꾸준히 줄어들고, 어떤 업종이든 대기업이 사냥해버리는 세상 안에서 전혀 반대쪽으로 움직이는 작은 세계가 있다는 사실은 긴 한숨 대신 짧은 공기를 들이마시게 해주었다. 독산동은 제조업 회사에 다니던 시기에 목업(mock-up.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며 밤을 새우던 동네다. 중년의 아저씨들이 주차장에 모여 담배를 태우고, 밤새 도료와 플라스틱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 이런 가게라니, 괴리감이 큰 만큼 행복을 느끼기에는 최적인지도 모른다.
'정감 가는 우리 그릇'을 판다는 목련상점은 도자기 그릇 사이사이에 포근함이라든가, 정이라던가, 햇빛 같은 것을 함께 포장해주었다. 딸이 운영하는 인스타그램에는 소박한 일본 가정의 일상 같은 사진이 올라왔다. 따뜻한 나무 빛이 가득했고, 정갈하게 차린 한 그릇의 덮밥과 아기자기하게 담아낸 디저트가 있었다.
목련이라.
목련 꽃을 좋아해요. '목련'이라는 이름의 브랜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는데, 엄마와 도자기 가게를 열게 되었죠. 목련 꽃의 이미지가 도자기와 잘 어울리기도 하고요.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 중 하나죠. 목련이 왜 좋을까요? 찰나 같은 매력도 있지만 너무 빨리 져서 아쉬움도 큰데.
땅에 떨어져 갈색빛이 된 목련 잎을 주워와서 책 사이에 꽂아놓기도 했었어요. 희미하게 남은 향이 좋아서. 목련은 은은함이 매력인 것 같아요. 형태도, 크기도, 색감도, 전반적인 밸런스가 좋아요.
목련을 좋아하게 된 진짜 이유는 조금 삐딱해요. 봄이 되면 다들 벚꽃놀이를 가잖아요. 벚꽃이 봄꽃의 전부가 아닌데. 그렇다면 난 목련놀이를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린 나이에 남들과 다르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 봐요.
마이너한 취향인가 봐요.
약간 그런 거 같아요. 유행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나만의 것을 찾고 싶은 욕구가 더 큰 것 같아요.
특별히 도자기를 취급하는 이유가 있나요?
원체 요리를 좋아해서 그릇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의 분위기를 모아보니 도자기가 되더라고요. 유리보다 따뜻하고, 손맛이 느껴지는 게 좋아요.
전에는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었어요. 일은 참 재미있었는데, 우리나라 출판업계 형편이 별로 좋지 않잖아요. 월급은 적고 야근은 많죠. 비정상적인 상태가 지속되면서 결국 몸에서 신호가 왔어요. 더는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서 반강제적으로 집에서 쉬었는데, 아무것도 안 하니까 너무 무기력해지더라고요. 최소한 좋아하는 차라도 찾아서 마셔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마음에 드는 컵이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전부 엄마의 취향이었던 거죠. 그래서 직접 쓸 컵을 찾기 시작했어요. 한창 북유럽 디자인이 유행하던 때였는데, 전 여기서도 저만의 것을 찾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국내 도자기 위주로 봤는데, 마음에 드는 걸 찾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저만 그런 건 아닐 거예요. 우리나라의 품질 좋고 예쁜 도자기를 소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뭔가 잃지 않고서야 손에 쥔 걸 놓기가 힘든 것 같아요. 인생이 한 번씩 그렇게 놓치도록 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목련상점이 태어난 데에는 엄마의 공이 커요. 전 일이 주어지면 열심히 하는 편이지만 뭔가 새로 시작하는 건 어렵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는 작은 가게를 많이 운영하셨어요. 그러면서 저에게는 회사 다니는 게 편한 거라며 장사는 하지 말라고 말씀하시곤 했죠. 그런데 제가 앓아누우니 오히려 엄마에게 계기가 된 거예요. 도자기 얘기를 꺼내자마자 이천으로 갔어요. 기껏 20만 원어치 고르면서도 어안이 벙벙해져서 이렇게 갑작스러워도 되나 싶었죠. 그런데 그릇을 사 와서 집에 놓고 보니 이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지더라고요.
엄마와 딸의 역할이 따로 있나요?
실무는 제가 거의 다 하지만 결정은 엄마와 해요. 특히 사입은 꼭 함께 해요. 혼자 결정을 내리는 건 조금 두려워요. 전 요리를 좋아하지만 제대로 살림을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실용성보다는 디자인에 더 치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 요리와 라이프스타일에 맞추다 보니 1인 식기 위주로 보기도 하고요. 반면 엄마는 오랜 시간 동안 축적된 살림 노하우가 있고 대가족에 꼭 맞는 그릇을 찾아내요. 그래서 같이 봐야 밸런스가 맞아요.
엄마랑 많이 친하신가 봐요.
엄마가 유독 가족적이에요. 가족모임이 있는 날이면 모든 일정을 포기하고 귀가해야 했어요. 결혼 전 독립은 꿈도 못 꾸죠. 어렸을 때는 집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어요. 그래서 일본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살기도 했고요. 하지만 지금은 가족적인 분위기가 좋아요. 엄마와 둘이 여행 가면 관광지보다 숨어있는 작은 가게 찾아다니는 걸 좋아해요. 취향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게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굉장히 많은데(웃음). 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와 함께 살다 보면 점점 가치관의 차이가 드러나면서 마찰이 많은데 거기에다 일까지 같이 하니까요. 일반적인 동업자였다면 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도 엄마라는 이유로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돼요.
화해는 어떻게 해요?
전 분쟁이 있는 상태를 못 견뎌요. 그리고 제가 생각해도 제가 어리광 부리는 부분이 많아서 먼저 사과하려고 하죠.
일본에서는 뭘 했어요?
계획을 세우는 성격이 못 돼서 무작정 갔어요. 원래 일본 문화를 좋아해요. 출판사에서 일한 것도 일본 영화나 잡지를 좋아해서였어요. 가서는 그야말로 그냥 생활을 했지 특별할 건 없었어요. 음식점에서 혼나면서 일한 정도.
역시 요리네요. 요리를 할 생각은 안 해봤나요?
좋아하는 것뿐이에요. 전문적으로 배운 게 아니라 확신도 없고, 돈을 받고 요리하면 스트레스가 심할 것 같아요. 책정한 금액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건 언제나 부담이죠. 직접 몸에 들어가는 거라 더욱 신경 쓰이기도 하고요.
절제된 성향을 가지신 듯해요.
목련상점의 모습 그대로가 저인 것 같아요. 자신에 대해 정의 내리는 건 누구나 어려운데, 이 일을 하면 할수록 제 분신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온라인으로 시작한 지 3년이 돼가네요. 그땐 사무실에 물건을 쌓아놓고 실물을 보고 싶어 하시는 분들에 한해서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게 했었어요. 생각보다 많이 와주시는데 어쩐지 죄송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상점다운 모습으로 만들게 되었죠.
가게를 열고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공간이 주는 힘을 알게 되었달까요. 온라인으로는 아무리 보여줘도 감을 잡기가 어려워요. 아무래도 물성이 강한 품목이다 보니 직접 만져보는 게 중요하죠. 공간 자체에서 전해지는 것도 많고요. 구색을 갖추니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오프라인 매출도 늘었어요. 우연히 지나가다 들를만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마음먹고 오셔서 많이 구매하시는 편이에요.
항상 간식을 두고 손님들과 대화하는 것 같아요. 손님을 환영하는 목련만의 방법인가 봐요.
멀리서 오시니까요. 급하게 가지 마시라고 차도 한 잔 내려드리고요. 간식 드시면서 찬찬히 오래 보시면 좋겠어요. 구석구석 쌓여있는 물건이 많아서 보면 볼수록 눈에 더 들어올 거예요.
외진 곳에 있는 게 아쉬웠던 적은 없어요?
전혀요. 사실 가게 바로 위가 어렸을 때 아빠가 설계하신 우리 집이에요. 회사 생활을 너무 힘들게 해서 그런지 여유롭게 일하고 싶었어요. 임대료를 내지 않으니 가능한 얘기지만, 사실 목~토요일 여는 것도 버거워요. 번화가에 있었다면 일주일 내내 발이 묶여있었겠죠. 이 동네에 있으니 오픈을 제외한 시간은 배송작업을 하고 개인적으로 사용해요. 드디어 삶의 페이스를 찾은 기분이 들어요.
우리나라 도자기의 매력은 뭘까요?
북유럽이나 일본 도자기에 비해 은근한 멋이 있어요. 외국 도자기는 한눈에 알아보기 좋고 독특한 면이 있는데 우리나라 것은 자극적이진 않지만 쓰면 쓸수록 매력이 느껴져요.
조금 무거워 보이기는 해요.
흙으로 만들기 때문에 무게감은 무시할 수 없죠. 단점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무거워서 좋은 그릇도 있거든요. 다양하게 갖추고 용도에 따라 적절히 사용하는 게 좋아요. 가벼운 걸 선호하는 분들이 많지만 얇으면 얇을수록 내구성은 포기하셔야 해요. 밸런스를 맞추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아리타 재팬의 그릇을 보면 예쁘기도 하지만 기술적인 부분에 감탄하게 돼요. 완벽함의 미학이랄까요. 정작 사용하기엔 너무 조심스러울 것 같지만. 반면 목련상점의 도자기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어요.
그런 부분이 저의 내면과 닮아있다고 생각해요. 첫눈에 예쁘지도 않고 완벽하지도 않지만 그래서 더 끌리는 것. 가게도 세련되지는 않지만 편안하잖아요.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 없어요. 어떤 건 완벽해서 매력적이고 어떤 건 그렇지 않아서 아름답죠.
좋은 식기란 뭘까요?
각자의 기준이 있을 테지만, 저는 어떤 음식을 담을지 쉽게 떠오르는 것들로 골라요. 도자기는 정물로서의 가치가 있지만 그릇은 사용되었을 때 완성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디자인이 아무리 훌륭해도 용도가 애매하거나, 지나치게 예뻐서 마음껏 쓸 수 없을 것 같은 그릇은 사지 않아요. 디자인과 실용성의 균형감이 잘 맞는 게 좋은 식기인 것 같네요.
그래서 항상 음식을 담은 사진을 올리시는군요.
도자기 그릇이라고 하면 도자기에 중점을 많이 두시더라고요. 일상의 음식을 담는 평범한 그릇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전 결혼할 때 남대문에서 하얀 식기세트를 샀어요. 그런데 살면서 하나씩 모아도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아요. 하지만 요리를 하는 편이 아니어서 저에게 맞는 식기나, 좋아하는 식기가 뭔지 알 방법이 없네요.
식기에 대한 관심은 요리를 해야 생기는 것 같아요. 어떤 요리를 하느냐에 따라 선호하는 식기도 달라지거든요. 그리고 전 식기세트도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식기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더욱 그렇죠. 관심이 생기기 시작하면 포인트로 하나씩 사보세요. 도자기는 가격대가 높은 편이기 때문에 한꺼번에 세팅하려면 부담스러울 거예요. 차근차근 자기의 취향을 알아가시면 되죠.
가장 많이 찾는 그릇이 있나요?
품목으로 말하자면 지름이 15cm 정도 되는 디저트 접시가 제일 인기가 많아요. 식기를 다 갖출 순 없어도 차 마실 때 디저트만큼은 예쁜 그릇에 내놓고 싶은 마음이랄까요.
그릇이 예쁘면 음식을 예쁘게 먹게 될 것 같아요. 좋아하는 식기를 매일 사용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요리를 하고 어떤 그릇에 담을까 고민하는 시간 자체가 좋아요. 한상 차려놓으면 별것 아닌데도 뿌듯하죠.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삶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스스로 확인하는 작은 과정인 것 같아요.
그러려면 천천히 사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의 삶은 너무 바쁘죠. 그렇다고 다들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주 작지만 숨통을 틀 수 있는 리추얼을 하나씩 가질 수 있다면 좋겠어요. 퇴근하고 짧은 티타임을 갖는다던가 하는. 잔잔한 음악을 켜고, 은은한 향초도 태우면서 아끼는 컵에다가 말이에요. 저도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지만 일 특성상 체력에 부치는 때가 있어요. 그런 날은 일과가 끝나면 차 한잔 내려서 침대에 들어가 좋아하는 책을 펼쳐요. 저도 정작 회사 다닐 때는 그런 의지조차 없었지만, 의식적으로라도 행복한 습관을 만들어 놓으면 좋지 않을까요.
목련상점이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것인가 봐요.
일본 도자기에 대한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구를 발견한 적이 있어요. '좋아하는 그릇이 있는 생활'. 아, 나도 이런 걸 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새 그렇게 되었네요. 좋아하는 그릇이 하나쯤은 있는 생활로 시작해서 조금씩 만족스러운 생활을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어요.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의 시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도는 대화였다. 목련상점이 자리한 동네도, 작아 보이지만 파고 들어가면 끝없이 예쁜 그릇이 나오는 가게도, 그리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주인마저도, 넓고 넓은 들판에 핀 작은 풀꽃 같았다. 조금 뻔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정말 풀꽃 같은 곳이었다니까.
치명적인 발간빛을 띤 꽃 모양의 작은 그릇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순간의 유혹으로 그릇을 갖게 된다 해도 우리 집에서 제구실을 할 턱이 없었다. 스웨덴에서 사온 커피잔과 함께 선반에서 먼지를 묻혀가며 어딘가 어긋난 생활을 더 뚜렷이 보여주기만 할 것이었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은 지금의 생활에서는 욕심부리지 않기로 했다.
좋아하는 그릇이 있는 생활. 혼자 먹더라도 건강하고 정갈하게 밥을 차려 천천히 식사를 하는 생활. 반찬을 반찬통에서 바로 집어먹지 않는 생활. 설거지가 쌓여있지 않는 생활. 배탈이 나지 않고 숙면을 취하는 생활. 우리의 삶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차이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작고 귀한 사실을 간과하고 산다. 목련상점은 그런 우리에게 조용하고 담백하게 잔소리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