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공예
[보이다]라는 인터뷰 코너가 있다. 사람을 '보여준다'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었는데 나 말고는 아무도 알아주는 것 같지 않다. 그래도 그렇게 시작했으니 계속 그렇게 간다.
다루고 있는 몇 가지 형태의 이야기 중에 이 [보이다]가 제일 인기가 없다. 그래도 꾸역꾸역 매 달 한 명을 만난다. 이제 인터뷰를 하는 행위 자체가 나 자신에게 무시할 수 없는 에너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 에너지가 이걸 읽는 누군가에게도 통했으면 좋겠다는 거고, 그러려면 내가 더 나은 인터뷰어가 되는 방법 밖에 없겠지.
이태원의 그 곳을 찾아간 건 쌀쌀한 가을이 오기 전이었다. 아직 히트텍을 찾지 않던 날씨의 오후.
배가 고파 요기를 하기 위해 유명한 맛집 쟈니덤플링에서 군만두 테이크아웃을 기다리고 있는데 촉촉한 머리카락을 한 인터뷰이가 지나가다 날 발견하고 인사를 한다. 자전거를 타고 동대문까지 다녀오느라 샤워를 하고 나왔다고.
따끈한 군만두 냄새를 솔솔 풍기며 바로 옆 주택 건물 2층에 위치한 공방으로 들어간다. 수업이 없는 날, 인적이 없는 공방은 햇빛과 가죽 냄새가 채우고 있었다.
아벡모로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다른 종류의 대답들이 떠오르지만, 일단 회사에 다니던 중 가죽공예를 접하게 된 게 가장 크겠죠. 회사를 나왔던 이유는, 일이 싫어서도, 사람이 싫어서도, 페이가 싫어서도 아니라 아무리 일을 해도 내 손에 나의 것이 쥐어지지 않는 느낌 때문이었어요. 사실은 입사한지 반 년 만에 그걸 느꼈지만 2년이 지나고 나서야 퇴사를 했어요. 뭘 하고 싶은지 몰랐거든요.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었는데, 마침 백팩이 하나 필요해서 직접 만들어보기로 한 게 발단이 됐어요. 이왕 만드는 거 가죽으로 잘 만들어봐야겠다. 그런데 이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항상 다음이 기대되고.
몸도 마음도 너무 아픈 시기였어요. 누가 아주 살짝만 건드려도 눈물이 날 것만 같고. 퇴사를 하고 병원에 다니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가죽공예를 배웠는데, 그렇게 반 년 정도 지내니까 나 자신이 수면 위로 살짝 올라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처음엔 공방이 아니었어요. 작업실 겸 쇼룸 정도로 생각했는데 지인의 권유로 수강을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온 거죠.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서 첫 클래스 공지를 올렸는데 딱 두 명 왔어요. 연탄으로 난방할 때였는데. 아침에 수강생들 오는데 연탄이 꺼져서 다시 떼느라 고생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연탄을 뗄 필요가 없어졌어요.
전 아직도 그 두 명의 수강생들을 기억해요. 신청이 들어왔을 때의 그 기쁨도. 그 느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친구에게 혹시라도 미래에 내가 잘 돼서 기고만장하거든 꼭 그 첫 수업을 상기시켜달라고 했어요.
언제부턴가 가죽공방도 참 많아졌는데, 아벡모로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해요?
남들과 차별되는 컨셉을 잡아야지,라고 생각한 적은 딱히 없어요. 다만 제가 가죽을 배우면서 가장 크게 얻었던 게 마음의 위안이라 ‘감성회복 가죽공방’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죠. 아벡모로를 오픈할 때만 해도 힐링과 공예를 접목시킨 곳은 없었어요. 제작 자체에 많이 집중했던 거죠. 하지만 요즘에 사람들이 공방을 찾는 이유는 공예적인 접근보단 가죽이라는 소재의 매력과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고자 하는 욕구 때문이거든요.
직장인이던 프리랜서건 주부건 백수건, 살면서 내 마음대로 뭔가 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겠냐고요. 그래서 수강생이 뭔가 만들고자 할 때 최대한 뜻대로 할 수 있도록 돕는 편이에요. 단순히 가죽을 배운다기보다는 자신만의 것을 만듬에서 얻는 희열이 굉장하거든요. ‘잘’ 하는 것보다 ‘나를 위해’ 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재능을 신체 부위에 표현할 수 있다면, 손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뇨, 머리예요. 한 수강생이 ‘가죽공예는 상식이다’라는 말을 했었어요. 공예가만의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터득한 기본적인 지식들을 가지고도 충분히 할 수 있거든요. 이건 손재주가 아니라 눈썰미의 문제예요. 하나의 물건이 완성되기까지의 전과정을 얼마나 상식적으로 분석할 수 있느냐의 문제.
새로운 형태의 가방을 보면 어떤 패턴인지 머리 속에 그려져요?
네, 어느 정도는. 저는 장인적인 퀄리티를 파고드는 것보다 구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더 잘 맞아요.
대부분의 공방에서는 보유한 패턴들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경향이 있어요. 검증된 자료이고, 수강도 훨씬 수월하죠. 그러다보니 어딜 가나 비슷하더라고요. 전 그걸로 성이 안 차서 패턴 뜨는 걸 따로 배웠어요.
저희 수강생들에게도 각자 패턴을 뜨게끔 해요. 저로써는 그게 가장 까다로운 과정이지만, 시중에 나와있는 걸로만 할 거라면 굳이 제가 이 일을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리고 세상에 만들어지지 않는 건 없어요. 어떤 모양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결과적으로는 뭐가 됐든 다 만들 수 있어요.
한때 디자이너였던 사람으로서 카피에 대한 문의가 들어올 때 괴로움은 없나요?
없어요. 회사에서는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도 들어줬어야 했는데요 뭐. 카피라는 것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예쁘고 좋은 물건을 쓰고 싶은데 돈은 없고… 그런 단순한 욕구에 대해 너무 빡빡하게 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이건 그냥 가방일 뿐이에요. 개중에 정말 까다로운 손님들이 있어요. 스타일에 따라 어느 정도는 정해져 있는 요소들이 있는데 자기 고집을 부리죠. 상담하면서 조율을 하긴 하지만 요구사항을 최대한 들어주려고 해요. 다른 사람 눈에 그 가방이 어떻게 보이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잖아요. 게다가 본인이 바라던 가방을 받았을 땐 정말 뛸 듯이 기뻐해요. 그러면 된 거 아닐까요?
이렇게 스스로 이루어놓은 것들을 보면 많이 뿌듯하겠어요.
그런 것보다 더 많이 드는 생각은 이거예요 - ‘다행이다’.
공간의 주인만큼 담담하고 인간미가 묻어나던 곳. 언젠가 나 또한 이 곳에서 내 가방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마음 한가득 품고 이태원의 밤거리로 나섰다. 그녀에게 배우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일 것임으로.
아벡모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72-17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