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스벅에 나왔다. 새벽 4시까지 작업을 해서 그런지 하루 종일 도통 집중이 되지 않는다. 하루 24시간을 풀가동하는 것도 아니지만 주말과 평일의 경계 없이 몇 주를 지내다 보니 영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 머릿속이 그득 차오르는 느낌도 좋지만 모든 것과 단절된 섬에 하루 정도 들어갈 필요도 있다.
아니, 사실 지금 집중을 못하고 있는 건 늦게 자고 자시고의 문제가 아니라, 대각선에 있는 테이블에서 신경을 끄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여자 둘이 빈 커피잔을 앞에 두고 앉았는데(남자들은 목소리가 저음이라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여자들 얘기만 엿듣게 됨), 그중 한 명이 손에 꼽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단어들을 쏟아내고 있다. 분노와 짜증이 카페 가득 퍼져간다. 친구에게 불만이 있는가 본데, 그 친구가 좀 이기적인 캐릭터인 듯하다. 자기는 배가 안 고픈데 자꾸 뭘 먹으러 가자고 끌고 가서 앉아있으라고 하질 않나, 뭐 그런 굉장히 사소하고 반복적인 피해를 쓰나미처럼 풀어내고 있다. 한 사람이 싫어지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작디작은 기준들의 어긋남, 그것이 먼지처럼 쌓이면 그 관계는 회복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한들 아예 끊어버릴 수도 없는 관계, 그런 것이겠지. 건너편에서 듣는 여자는 목소리도 작을뿐더러 사실상 끼어들 틈도 없어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다.
누군가가 싫어지고, 그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고자 하는 욕구는 백번 이해한다. 하지만 내가 있는 공간에서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는 게 또한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다. 5,100원짜리 아이스 라떼 한 잔 시켜놓고 할 말은 아닐지 모르겠으나, 분노와 짜증은 기쁨보다 더 쉽고 빠르게 전이된다. 난 저 사람도, 저 사람의 친구도 모르지만 그 감정은 이미 나를 충분히 괴롭히고 있다. 내 앞에 앉은 여자는 이어폰을 끼고도 한숨을 쉰다.
한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은 너무 쉽게 드러난다. 미간의 주름, 건너편 사람에서 커피잔으로 이동하는 눈빛, 눈썹의 각도, 목소리의 높낮이, 말의 속도, 다부지게 낀 팔짱, 움직임의 범위, 무심코 짓는 표정,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몇 미터 떨어진 자리에서도 상대를 파악한다. 그것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색의 머리를 하고 어떤 화장을 했는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아무리 비슷비슷한 공산품으로 치장을 해도, 진짜 모습은 피부를 통해 드러나고 만다.
사실 불만이 많은 사람은, 자기 안에 화가 쌓인 경우가 많다. 확실히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자잘한 일들에 별로 영향받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스트레스로 다가오지 않고, 잘 맞지 않는 사람도 그저 그런 삶이겠거니 싶다. 어차피 세상은 쉽게 바꿀 수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도 없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위치 선점을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게 내 삶의 분위기, 내 앞에 앉은 사람과의 분위기, 내가 속한 공간의 분위기 모두를 결정한다.
더 많은 얘기를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저 목소리가 여전히 공격적으로 공기 중에 퍼지는 바람에 나의 단어들이 맥을 못 춘다. 이번에는 엄마가 문제인가 보다. 꼭 아나운서가 아니더라도, 자기 목소리를 한 번씩 들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