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이 되면 스타벅스에 잘 가지 않는다.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서 자꾸 코감기에 걸려 돌아오기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습도 때문인지 더욱 세게 튼다. 따뜻한 커피를 시켜도 금방 식어버리고 만다. 빗물에 젖은 내 몸도 차갑게 식는다. 덕분에 습한 공기와 퀴퀴한 냄새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만, 쭈뼛쭈뼛 서는 솜털과 얼음장처럼 차가워지는 손발을 견뎌내야 가까스로 커피 한 잔을 즐길 자격이 주어진다. 빨리 먹고 나갈 수 있도록 불편하게 만들었다는 맥도널드의 딱딱한 의자 얘기가 떠오른다.
어제 역시 일할 카페를 찾는데, 어김없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섰다. 웬일로 춥지 않았고, 마침 소파 자리도 비어있어서 기분 좋게 자리를 잡았다. 커피를 주문하고, 인터넷에 연결한 후 이어폰을 꽂았다. 귀에 뭘 꽂으면 시야도 좁아진다.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한참을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자리에서 큰 움직임이 느껴졌다.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커플이었다. 여름 교복 같은 것을 입었고, 삼선 슬리퍼를 신었다. 데이트하나 보다. 좋겠다. 방학이고, 비가 축축하게 내리는 뜨끈한 여름이고, 스타벅스라니. 스타벅스가 추운 걸 잘 아는지 준비해온 극세사 담요를 꺼내 덮었다. 마치 이불처럼 목덜미까지 포옥 덮었다. 이걸 알고 싶어서 알았다기보다는, 10초 간격으로 이어폰을 뚫고 들려오는 쪽쪽 춥춥 쭈압쭈압 소리에 차마 어떤 아이들인지 안 볼 수가 없었어. 여기는 너희 집 거실 소파가 아닐 텐데. 아 거실에는 부모님이 계시겠지. 달아오른 몸을 어쩔 줄 모르겠는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이렇게 안았다가 저렇게 꼬았다가. 미성년자의 연애는 이렇게 불편하다.
커플이 차지한 두 개의 테이블 위에는 펼쳐지지 않은 문제집과 필통이 나뒹굴고, 마땅히 있어야 할 커피 한 잔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키스와 애무를 한껏 시전하고 해결되지 않은 육체적 욕구를 그대로 부둥켜안은 둘은 담요와 가방을 챙겨서 나갔다. 아르바이트생이 와서 물자국 없는 그들의 테이블을 닦았다.
나 또한 사랑에 빠졌었고 빨간 불이 켜진 신호등 앞에서, 아무도 없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실기실 맨 뒷자리에서 손잡고 뽀뽀도 해보았다. 둘만 존재하는 것 같은 세상이 어떤 느낌인지, 얼마나 주변과 쉽게 분리되는지도 잘 안다. 하지만 무엇이든, 적당한 선이라는 게 있다.
눈치를 보는 것과 매너를 지키는 것은 다르다. 그 커플이 굳이 마시고 싶진 않지만 에어컨을 쐬며 소파에서 쾌적하게 뒹굴고 싶은 마음에 스타벅스에서 가장 싼 페리에 물 한 병이라도 샀다면, 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을 테다. 하지만 고작 3,300원의 예의 비용조차 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선을 넘어버렸다.
당당할 수 있는 선은 자기가 긋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지킬 때, 누군가를 불편하지 않게 할 때, 비로소 당당해도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