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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룬아 Jul 20. 2017

Untamed Step, 민희영 작가 인터뷰

평창동의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오르내리다 하늘색 대문 앞에 섰다. 문과 땅 사이 틈에서 설렘으로 가득 찬 그림자가 꼬리를 친다. 채 닫지 못한 문 앞에서 마당을 한 번 눈으로 훑기도 전에 아키가 허벅지와 무릎을 점령했다. 우리 집에 들어오기 위한 관문이에요,라고 민희영 작가가 덤덤하게 말한다. 온몸이 아키의 애정으로 범벅이 된 후에야 고개를 들어 곳곳에 핀 장미와 들꽃, 유칼립투스와 각종 허브, 그 뒤로 막힘 없이 트인 하늘을 보았다. 아이들이 놀다 간 모래 박스도, 빨랫줄에 축축하게 걸려있는 러그도, 색연필 흔적으로 채워진 하얀 벽과 갓 피어나기 시작한 꽃봉오리도, 민희영 작가의 손길을 기다리는 것들 한가득이다.

민희영 작가, 하면 가정의 이미지가 강해요. 가족 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려요.

남편은 서동욱 화가이고 마침 개인전을 하는 중이에요. 저는 조각을 했는데 첫째 낳고 작은 사업을 했고, 둘째 출산으로 쉬다가 최근에 다시 작업을 시작했어요. 첫째 아이 이름은 세보이고, 벌써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네요. 컨트롤이 잘 안 되는 성격을 갖고 있어요. 둘째는 이보이고 어린이집 다니는데, 영악하다고 해야 할지 똘똘하다고 해야 할지.


상상하던 결혼이나 가정의 이미지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첫 남자 친구와 결혼해서 그런가 봐요. 계산적인 편이 아니어서 연애하다 보니 결혼까지 하게 됐어요.


첫사랑과 결혼이라니, 의외인데요.

사귀면 당연히 결혼하는 줄 알았어요. 제가 학창 시절부터 어른스러운 척했지만 정말 순진했거든요.


남편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아버지 일로 파리에 갔는데 이틀 뒤에 남편을 소개받았어요. 아는 사람이 남편밖에 없으니 의지를 많이 했어요. 둘 다 순수예술계통이었으니 잘 통했던 거겠죠. 그리고 제가 영화배우 양조위를 엄청 좋아하거든요. 보면 이해하실 거예요. 


예술 계통에 종사하는 가족이 많아요. 무엇의 영향일까요?

언니네 부부도, 남편 동생네 부부도 그래요. 부모님들은 예술과 관계가 없는데 좀 신기하죠. 전 언니 때문에 대학에 진학했어요. 원래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안 가려고 수능도 대충 봤거든요. 그런데 언니가 미대에 수시합격을 한 거예요. 그게 멋있어 보여서 그제야 저도 입시미술을 시작했어요. 


원래 미술을 하진 않았고요?

어릴 때부터 맨날 언니와 그림 그리고 놀았어요. 하지만 초등학교 들어가니 계속 대회에 나가고, 친구들은 자꾸 그림을 청탁하고, 환경미화도 다 맡아서 했더니 질려버렸어요. 흥미를 잃고 중학교 들어가면서 손을 뗐는데 결국 돌아왔네요.


세보에게서도 예술가의 느낌이 물씬 나요. 본인이 유명한 화가였다고 했다면서요.

지금까지 봐서는 세보 역시 미술밖에 길이 없다고 생각해요. 잘 그린 그림만 보면 다 자기가 그렸대요. 고흐로 태어났다가 마그리트로 환생했다고 하질 않나. 세보가 특이한 말을 잘 하긴 해요. 이보 임신했을 때 처음 알려준 것도 세보였어요. 너무 초기라 아무도 몰랐는데 갑자기 제 뱃속에 아기가 있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대화할 때도 명확한 대답을 하기보다는 자기 세계만의 애매한 말을 해요. 공부는 어려울 것 같아요.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재미가 없대요. 왜 그런가 했더니 선생님만 말한다는 거예요. 자기들은 듣고만 있어야 한다고. 그런 얘기를 하면 아 교육은 소통해야 하는 거지, 하고 정신이 들어요.


걱정도 되겠어요. 아이가 성장하는 환경을 고민해야 하잖아요.

최대한 집에서 이끌어주려고 해요. 외국 생활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에 외국에서 키우고 싶진 않아요. 개인주의가 강하잖아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고 배려심 있게 어우러질 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육아에 있어서 특별히 엄격하거나 자유로운 기준이 있나요?

뭐든 못하게 하는 건 없어요. 그래서인지 산만한 편이긴 한데, 어렸을 때 표출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창의성은 자유로움에서 비롯된다고 믿거든요. 칼이나 가위 같은 도구를 위험하다고 못 쓰게 하기보다 올바른 사용법을 가르쳐주면 생각보다 잘 다뤄요. 무엇보다 눈높이를 맞추려고 하죠. 반응도 적극적으로 해주고, 구체적으로 물어보고,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 대화를 하려고 노력해요. 바라는 점이 있다면, 기본적인 예의만 잘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밝게 크는 거예요. 나머지는 다 따라와요.


엄마는 겁이 좀 없어야 하는 것 같아요.

너무 깔끔해도 안 돼요. 못 견디실 거예요. 


밝게 키우기 위해 신경 쓰는 게 있나요?

세보 같은 경우에는 스킨십을 좋아해요.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뽀뽀해주고. 그 부분을 채워주지 않으면 아이 마음에 쌓여요. 이보는 또래에 비해 조금 빠른 편이라 책 읽어주고 대화하는 걸 좋아해요. 아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채워주는 게 중요해요.

아이들은 절대 부모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아요. 그래서 컨트롤하기보다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그 안에서 자율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게 부모의 역할인 것 같아요.


그런 맥락에서 마당 있는 주택에 사는 게 어떤 영향이 있을까요?

주택에 살아서 아이들이 활발해졌다고 보긴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얌전한 성향은 아니라 어차피 아파트에서는 못 키웠을 거예요. 마당은 경험의 폭을 넓혀주는 것 같아요. 더우면 수돗물 틀어놓고 흠뻑 젖도록 뛰놀고, 계절이 바뀌면서 꽃과 나무가 지고 피는 것도 보고, 온갖 곤충과 새들의 이름도 외워요. 매일 같은 놀이터나 키즈카페에서 노는 것과는 조금 다르죠.


마당을 가꾸고 집을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아요.

처음에 본 집은 황토칠이 되어있고 담쟁이도 무성해서 조금 어둡고 음침했어요. 식물을 다 걷어내고 집 안을 하얗게 칠하고, 리모델링도 하고 마당을 가꾸기 시작하니 애정이 생기는지 재미가 붙더라고요. 요즘에는 가드닝에 빠졌어요.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전원생활이나 주택에서의 삶을 한 번씩 꿈꾸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꿈과 현실은 다르죠. 각오해야 할 게 있을까요?

힘들긴 힘들어요. 오래된 집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고칠 구석이 계속 나와서 유지비가 많이 들어요. 비가 새서 천장을 다 뜯고 굴뚝을 들어낸 적도 있어요. 지하실이 침수되면 물을 다 퍼내고, 외벽은 정기적으로 칠해줘야 해요. 벌레는 포기하고 같이 사는 거죠. 마당은 일주일만 지나도 잡초가 무성해져요. 딱히 무슨 일이 없어도 계속 손대지 않으면 폐가처럼 변해요. 꾸준히 구석구석 살펴가며 애정을 쏟아야 해요.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어요. 우리가 만들어간다는 게 재미있어요. 시간이 쌓여가는 게 보여요. 사람도 자연도 서로 적응하는 거예요. 

첫 아이의 이름을 따 사업을 했었죠. 핸드메이드 파티용품이라고 하면 될까요?

세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니 손이 근질거리더라고요. 돌잔치를 하면서 음식과 데코를 다 직접 만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블로그에 올리니 반응이 좋아서 한 번 해볼까, 싶었죠. 사실 재료를 너무 많이 사기도 했고. 우리나라에서 케익 번팅은 제가 처음 시작했는데 얼마 안 지나서 카피 상품이 우후죽순 생겨났어요.


그 상황을 어떻게 해결했어요?

카피 업체들은 대량 생산이었고 단가를 맞추기 위해 종이를 주로 다뤘는데 전 개인 맞춤형 서비스였어요. 퀄리티에 민감해서 펠트 같은 소재를 사용하고, 아이들 이름이나 이벤트 컨셉에 맞춰서 제작했어요. 결국 저의 입지는 유지했는데, 이보까지 낳고 나니 힘들더라고요. 전 육아가 먼저거든요. 일 때문에 아이의 순간들을 볼 수 없다는 게 싫어요. 지금도 이보가 크는 게 아쉽기만 한데. 후회될 것 같아서 다시 육아에 전념하기로 했죠.


그래도 아쉬움은 있었을 것 같아요. 사업을 통해 얻은 점도 많을 것 같은데.

제일 잘 될 때 멈춰야 했다는 점이 아쉽긴 한데, 무리였어요. 개인 맞춤이다 보니 연락도 너무 많이 오고, 제작도 오래 걸리고요. 얻은 건 정말 많죠. 무엇보다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는 점. 미디어에 노출되고 단행본에 실리고, 기자분들도 만나고, 온라인에서 활동하게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해주었다고 할까요.


학생 땐 주로 어떤 작업을 했나요?

구상조각을 했어요. 추상조각의 반대되는 장르라고 볼 수 있는데, 실재가 있는 무엇을 활용해서 사실적인 표현을 하는 거예요. 관념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게 더 좋아요.


최근에 창간하신 그림책도 사실적인데, 어쩌면 그래서 대중들과 쉽게 호흡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럴 수 있겠죠. 보이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니까. 개인적으로 직관적인 것에서 더 많은 걸 느껴요. 추상은 잘 모르겠고, 이해한다 해도 와 닿지는 않는달까요. 남편도 그런 면에서는 비슷해요.


두 번째 사업은 이보의 이름을 땄네요. 그림책 독립출판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사업보다는 순전히 작업하고 싶어서 선택한 거예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일이라서.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온전히 제 작업을 할 수 있겠죠.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겠지만, 육아하며 일을 놓을 동안 조급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틈이 생기는 거잖아요.

전 확신이 있어요.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면 돼요. 어느 정도 나이가 든 후에, 더 무르익었을 때 작업하고 싶기도 해요. 사업하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조금씩 열리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일들이 수월해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단계적으로 성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젊은 나이에 성공하는 작가들도 많죠. 한편 중도 포기하는 작가들도 많아요.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해요. 그게 진짜 살아남는 거죠.

첫 책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AZ는 그림을 너무 그리고 싶어서 만들었어요. 그게 다예요. 동물과 식물을 소재로 고른 건 자연이 좋으니까. 아이들과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는데, 정말 아름답고 경이롭고 신기해요. 사람이 무슨 디자인을 하고 작품을 만드나 싶어요. 자연 그 자체로 이렇게 예쁜데. 그래서 직접 찾아내고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575종의 생물을 넣었는데, 나열만 하면 지루하니 알파벳으로 엮었죠. 컬러감은 별로 고민하지 않았어요. 별다른 기교 없이 있는 그대로만 표현해도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더라고요.


그림책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에 자신의 어떤 성향이 반영되었다고 생각해요?

깊게 파는 성격. 그런데 그리거나 만드는 것에만 꽂혀요. 그 외의 것들은 잘 하지도 못하고. 재미있고 행복하니까 파게 되는 거예요. 지인들이 출판사에 맡겨보라고 조언하기도 했는데 그저 그림을 그리고 싶지 사업화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인쇄나 제본에 지향하는 퀄리티와 방식이 있는데 출판사에 맡기면 불가능해지죠. 제 작업은 제가 끝까지 하고 싶어요.


작업시간은 얼마나 걸렸어요? 하루에 쓸 수 있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을 텐데.

창간까지 1년 정도 걸렸어요. 하루 중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3시간 정도예요. 하지만 24시간이 있다고 한들 더 오래 집중하기도 쉽지 않죠. 아이들 키우면서 일하려면 몰입하기까지 시간이 짧아야 돼요. 그래서 더 효율적으로, 규칙적으로 작업할 수 있어요.


그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어간 노력이 어마어마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림책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은 것 같은데.

전공자가 보면 이걸 어떻게 다 그렸냐고 하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비싼 그림책이더라고요. 하드커버도 아니고. 그리고 독립출판 시장이 많이 커졌다고는 해도 대중의 스케일로 보면 여전히 그들만의 리그인 거예요. 안타깝죠. 아무리 욕심이 없다고 해도 잘 팔려야 저도 신이 나지 않겠어요.

그리고 인스타그램으로 홍보하는데 그동안 아이들 포스팅을 많이 했더니 AZ를 아이들 책으로 국한해서 인식하시더라고요. 굳이 아이들을 겨냥해서 만든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더 비싸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차차 책이 나오면서 정체성이 조금씩 쌓여가겠죠. 다음 책으로는 어떤 걸 생각해보셨어요?

약간 그로테스크한 스타일로 몬스터가 우르르 나오는 모습을 상상해봤어요. 이태리의 어느 해변에 괴물들이 있는 거예요. 딱히 아이들을 위한 건 아닌, 그렇다고 어른들을 겨냥한 것도 아닌, 그냥 그림책이요.

또 한 가지는, AZ는 과슈를 사용해서 진하게 응집된 느낌으로 그렸는데 다음 책은 맑고 투명한 느낌으로 수채화를 그려보고 싶어요. 물속에서 요정이 나올 것 같은, 환타지아 같은 느낌으로.


생각하시는 스타일이 다양한데, 정체성을 명확하게 하고픈 욕심은 없나요?

일단은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어차피 제가 그리는 거라, 그 자체가 정체성이 되겠죠. 도구나 레이아웃 같은 요소가 바뀌는 것이지 만드는 사람은 저 자신이거든요.

하나의 직업만 갖는 시대가 아니에요. 분야를 바꾸면서 무엇을 느꼈나요?

모든 게 도전이에요. 가능성과 한계를 계산하기 전에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 밀어붙여야 해요. 제가 좀 단순하긴 하지만.


엄마라는 직업은 작업에 큰 영향을 끼치겠죠. 작가님에게는 어떻게 작용했나요?

좁았던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조금 폐쇄적이고 철이 없었거든요. 아이들이 없을 때의 작업은 멋있는 것, 아티스트적인 것들을 많이 추구했어요. 아이를 낳으니 현실감각이 생기고 꿈속에서는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좀 더 솔직해지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인생의 큰 부분들이 결정이 된 상태예요. 막연한 가능성이란 좋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을 뒤흔들기도 하는데, 안정감이 주는 여유가 있을 것 같아요.

전 지금의 제가 편하고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아요. 삶의 틀이 잡히니 뭐가 되었든 안정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감사한 일이죠. 에너지를 주고받는 관계가 집에 있다는 것은.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에는 마당의 의자에 앉아 입을 다물고 수분기 가득한 바람소리에 귀 기울였다. 오래도록 복잡하던 머릿속의 소음이 강제적으로나마 잦아들었다. 세보는 장난감 공룡을 위한 우물을 퍼주고, 이보는 그 옆에서 형의 놀이를 구경하고,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고, 나와 눈을 마주쳐주었다. 작가의 친언니가 이태리에서 보내준 재료로 오일 파스타를 해 먹고 2층 방에서 그림 그리는 아이들을 잠시 지켜보았다. 귀가하는 동안 노을의 처음과 마지막을 통째로 마주했다. 괜히 이름도 모르는 재즈 아티스트의 연주곡을 틀었다. 장마가 시작하기 직전의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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