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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Jul 27. 2022

세상에 있는 몇 개의 보루 중 하나라도,

<어떤 호소의 말들>을 읽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다 억울하고 답답해서 눈물이 났다. 보통 억울하고 답답하면 눈물부터 나는 편이라서 더 그랬다. 남 걱정은 참 사치지만, 이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답답한 일들을 매일매일 보시면서 작가님 괜찮으신지 걱정될 정도로.


한 때, 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를 선망한 적이 있었다. 변호사나 검판사, 의사도 선망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선망의 대상에서 내려놓게 된 이유는 하루 이틀 멋져 보이는 일이 아니라 평생 하는 일이라면 내가 안 괜찮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을 보는 사람들이 범죄자, 억울한 사람, 아픈 사람, 힘든 사람이라면 내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타인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주는 모습을 볼 때는 좀 멋져서 부러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다 자란 한 삶을 내 손에서 결정하고 떠나보내기에는 내가 너무 작고 작은 쫄보 같다. 그래서 착하고 여리고 아직 결정되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일을 하고 있다. 알고 보니 학교도 작은 사회와 비슷해서 억울한 애, 잘못한 애, 아픈 애, 힘든 애 등등이 있어서 위에 언급한 모든 것을 다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오래 보고 같이 성장하는 사이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으니까.


사회는 참으로 부조리한 게 많은 집단이지만, 특히나 인권위의 문을 두드리는 일들은 더욱 그런 일들이다. 의뢰인이 당한 일이 억울해서 답답하고, 혹은 그 와중에 의뢰인도 사람이라서 혹은 검은 머리의 짐승이라서 거짓말을 하거나 자기에게만 유리하게 말해서 자기편을 들어준 조사관들을 곤란하게 하기도 하고. 그럴 때는 남은 인류애도 뚝뚝 떨어질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차분하게 인류애도 유지하고 그걸 모아서 따뜻한 마음과 시선으로 책을 엮어내신 건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브런치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때 역으로 그럴 때마다 글로 정리한 게 도움이 되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사실 이건 국어 교사의 직업병적 시선으로 작문의 효용에 대한 이야기).


참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무엇보다 작가님의 시선과 마음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따뜻하다. 따뜻하다 못해 뜨거웠던 초창기 이야기도 그렇고, 노련해진 지금의 이야기도 노련한 만큼 푸근하고 따뜻하다. 판타지가 아니라서 사이다 같은 맛은 없더라도, 현실에 존재하는 뜨뜻미지근하고 고구마 같지만 말할 곳이 필요한 사람들이 말하고 갈 곳이 있다는 희망, 그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함께 싸워줄 열정이 남았다는 희망이 충전되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생각보다 살면서 억울한 일을 만날 일은 꽤 많다. 당장에 계약서 조항 하나만 허투루 넘겨도, 당장에 내게 닥칠 줄 몰랐던 일이 갑자기 들이닥쳐도 말하자면 긴, 나만의 억울한 서사가 생긴다. 억울한 일이 백 가지면 백 가지의 서사가 있어서 해법은 같은 듯 다 다르고, 진위 여부도 가지각색이다. 그럴 때 생각보다 법은 무정할 때가 많고, 진입장벽도 높을 때가 많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변호사가 되고서도 법무부 홈닥터로 일하고 계시는 변호사님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맡은 일이 많아 힘드시면서도 당장 숨이 막혀 죽을 거 같은 내 마음과 사연을 들어주시고 시간을 내 신경을 써주신 덕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일도 잘 해결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두 갑자기 답답하고 억울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법이 많은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대할 수밖에 없을 때도, 그런 분들의 선의와 열정이 사람을 살린다.


단언컨대, 자신의 사연을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국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를 바라서 인권위 조사관이 되었고, 퇴근하며 캐비닛 속에 사연들을 고이 두고 오는 것에 매번 실패하는 사람이며, '웅크린 말들'을 조금 슬프고 귀여운 존재로 볼 수 있는 저자와 같은 사람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세상은 조금 덜 억울해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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