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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Aug 27. 2022

라이프란 무엇일까.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를 읽고.

역시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 10여 년간 고등학생을 가르쳐온 나에게는 이 책을 덮으며 가장 마음에 남은 두 가지가 바로


1. 아들을 어떻게 저렇게 키울 수가 있지.

2. 팀은 괜찮을까.


였다. 1은 보통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너무나도 멀쩡하게 아들을 키운 부모님께 드는 생각이다. 경험적으로 대놓고 혐오를 내뱉으면서도 그것을 집단의 특성(?)마냥 인정받는 경우가 남학생에게 더 많이 보였기 때문에, 그 와중에 그렇지 않은 남학생을 보면 오? 신기하다. 어떻게 아들을 이렇게 키웠지? 싶어서 그 부모님이 존경스럽곤 한 것이었다. 사실 1권부터 차근차근 읽고 싶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좀 혼돈의 시간을 보내서 + 2권만 읽어도 무리 없다고 하셔서 2권만 읽었는데, 2권만 읽어도 무리 없이 쓱~하고 읽히는 책은 맞지만 읽고 보니 1권이 너무 궁금해져서 결국 1권을 읽게 될 것 같은 마성의 책이다. 개인적으로 영어권은 노진선, 일본어권은 김영현 번역가의 번역을 좋아하는데 원래 한국어로 쓰였던 것처럼 깔끔한 번역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적절한 위트도 있고. 왠지 우영우에서 나오는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같은 번역하면 특유의 라임을 잃게 되는 번역도 깔끔하게 해낼 것만 같은 분들....


물론 영국에도 저자의 아들 같은 아이들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저자의 아들은 한국에 있었더라도 아마 눈 비비고 다시 보게 되는 아이였을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좀 놀라워서 한 부분을 콕 집기가 어려울 정도로 몽글몽글했지만, 결국 팀과 다니엘을, 소울퀸을, 옆집 가족을 대하는 저자의 관점이 아들에게 이어진 것이겠지만 그것을 청출어람해내는 아들의 관점 중에는 어른인 나를 톡톡 깨 주는, 나보다 훨씬 나은 것들이 있었기에 좀 기록해두려고 한다.


85p. "학교에서 평소처럼 있는 건 다니엘의 자존심인 거야. 그러니까 그걸 부수면 훨씬 괴로워할 거야. 일단 상황을 좀 보려고. 이번에 운이 좋았던 사람은 나니까."


87p. "이끄는 것이란 앞에서 당기는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맨 뒤에서 서서 뒤처지는 사람이 없도록 밀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122p. "얼굴이 무척 똑똑해 보이는걸. 한 사람만 생긴 게 전혀 다르고 몸집이 큰데, 점점 다가오니까 '뭐야, 이 생물은.' 하고 놀란 건지도 몰라. 아하하하"

그는 호쾌하게 웃었다. 비아냥거리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마치 그 상황을 즐기는 듯한 밝은 웃음이었다. 거북한 분위기를 단번에 풀어주는 태양처럼 밝은 미소.


227p. "하지만 '라이프'란 그런 거잖아. 후회하는 날도 있다가 후회하지 않는 날도 있다가 그게 계속 반복되는 거 아냐?"

'인생'이라고 번역하고 싶지 않을 만큼 열세 살 아들이 '라이프'같은 말을 하는 건 너무 시기상조로 느껴졌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만큼 지금 아들의 '라이프'에는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겠구나 생각했다.


아들의 말을 번역함에 있어서도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에서 느껴지는 전율, 그게 그의 아들을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로 키워낸 힘이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고교학점제를 앞둔 교사로서 또 하나 눈에 밟혔던 것은 '팀'이었다. 영국의 학제를 아주 잘은 모르지만 책에 따르면 대학에 진학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선택지를 나누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리도 고교학점제라는 게 결국은 실전에서는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이 운명이고, 어쩌면 목적이지 않을까 싶은데 그 과정에서 사실은 선택을 빙자한 또 다른 차별이 생기는 사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에 가정환경을 비관해서 일어난 많은 자살 사건에 아이들의 생명권이 존중되지 않는, 아동 살해사건도 꽤 많이 일어난 걸 생각해보면 하물며 생명권이 존중되지 않는 가정이 아직도 존재하는 세상에서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진정한 꿈을 따라가는 학업 선택권은 존재할까. 그것으로 인해서 또 다른 차별이 생기지는 않을까. '팀'은 정말로 대학에 진학할 생각이 없어서 다른 코스를 선택한 것일까? 그렇게 선택했다가 뒤늦게 생각이 바뀌면? 하는 생각은 드는 것이었다. 내가 너무 한국의 학제에 젖어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책인데도 잔잔하게 너무 멋져서 감정의 기복 같은 감동보다는 무릎을 탁 치고 머리를 깨어나게 하는 감탄 포인트도 많고, 생각 포인트도 많은 책이었다. 믿고 읽는 브레디 미카코 x 김영현 번역가의 책으로 생각이 넓어지는 경험들을 함께 해보시기를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


+ 소수자의 시선과 함께하는 다다의 시선을 너무나도 사랑하는데, 다독 클럽에 함께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말을 남기고 싶다. 첫 책이 이 책인 것도 너무 좋고, 1권도 꼭 읽어보려고 한다는 것도! :)


+아 그러고 보니까, 옐로에 화이트는 부모님의 인종이라면 블루는 계층인 것일까...? 제목부터 다층위를 보여주는 책이었던 걸까! (나만 몰랐던 것일까)


+'인지저하증'이라는 번역은 어색했지만 신선했고, 그리고 다다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참 좋았다. 앞으로도 다다의 시선을 잔뜩 기대해야겠다.



#나는옐로에화이트에약간블루 #다다서재 #다독클럽1기 #다독클럽 #도서제공 #다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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