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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Dec 16. 2024

귀걸이를 잃어버렸다.

이별은 갑자기

나는 전생에 까마귀였던 게 확실하게, 크고 반짝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또 와중에 귀에 켈로이드가 있어서 은 귀걸이는 하지 못한다. 14K이상만 올라가는 비싼 귀...


그래서 좀 뭐랄까, 파워 웜톤에 걸맞게 핑크나 옐로 골드이고 또, 볼륨감이 있는 원터치 귀걸이가 좋다.


사실 드롭 귀걸이도 취향이긴 한데, 지금 머리에는 자꾸 걸려서 나부낄 거 같아서 못하고 다녔는데...


오늘 아주 평범한 하루를 보내다가 문득?! 귀를 만졌는데(버릇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없다.


이게?


한쪽만?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리가 없는데?


없다.


원터치 귀걸이는 본디 하다 보면 좀 헐렁해지기는 해서, 귀걸이를 한 채로 휴게실에 누웠다가 베개에 빠져있었던 적은 있었는데. 이렇게 걸어 다니다가 갑자기 귀걸이가 사라진다고? 이렇게 갑자기?


너무 당황해서 나머지 한쪽을 빼서 주머니에 넣고 오늘의 동선을 따라다녀보았다. 그런데 역시? 없다.


그래 있을 거라고 기대하고 가는 건 아니지만, 혹시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 아련한 기대가 바짝 타는 마음을 안고 가는 건데, 혹시나가 역시나지. 없었다.


그래도 어쩌면 있을지도 모른다는 뭔가 환각 같은 기대란 게 있었는데. 없다.


언제부터 없었을까? 정말로 어느 사이에 없어졌을까.

정말 감도 오지 않는다. 진짜로. 후드를 털고 외투를 털어보아도 없다.



이쯤 되면 할 수 없다.



할 수 없을 땐 다음 단계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2년 전쯤 이 귀걸이를 샀던 가게를 떠올렸다. 그날도 생각도 못하고 가서 이 귀걸이를 건졌으니까, 조만간 가서 또 한참 쓸 녀석으로 하나 업어와야지 싶다. 같은 게 있으면 한 짝만 살 수 있을까? 아니면 두 짝을 사면 이게 스페어가 될까? 하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귀걸이는 한쪽을 잃어버리면 한 쌍을  다 못쓰게 되는구나.


하필이면 혼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머리로는

 '가장 가까이 닿는 내밀한 관계일수록 멀어질 때는 더 잔인하고 남보다 못하게 되는 것이 관계의 본질인 것일까.'는 생각을 하며, 그렇다면 모든 이는 일평생을 닿지 않고 일정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마땅한데 그렇다면 결국 모두는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어야 하거나 혹은 무성애자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멀어질 이유도 없겠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만난 뜻밖의 이별이었다.  


마침 정신을 쏙 빼놓도록 나를 흔들어놓았던 관계가 스쳐가고 있던 찰나였다.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라서, 끊임없이 "왜?", "언제부터?", "무엇 때문에?"를 고민했고 답을 듣고 싶어 했다. 그런데, 결국 이런 것이었다. 내 몸에 끼고 있던 귀걸이가 빠져나가는 물리적인 촉감도 알지 못하는데, 만져지지도 않는 사람의 마음이 생기고 변하고 사라지는 것인 바에야. 어쩌면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한쪽 귀걸이가 갑자기 사라지면, 혼자가 된 귀걸이는 짝으로 쓸 수 없게 된다. 영원히.

관계의 폐기처럼. 아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보석함에 한 짝만 남은 귀걸이 모음통에 봉인되겠지. 아마 다시 귀에 걸릴 일이 없이.


지금의 나는 귀걸이가 사라졌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혹시나 어디선가, 누군가가 찾았다고 말해줄까 봐, 학년부 단톡방에 귀걸이를 올리고 아이들과 하는 인스타에 스토리를 올리고, 귀걸이를 잃어버렸다고 소문을 냈다. 갑자기 사라졌듯이, 갑자기 돌아올 수도 있으니까. 아마 일전에 키보드에서 튀어나간 나사를 교실 얼룩 바닥에서 찾아보겠다고, 답이 없는 걸 알지만 오늘이 지나면 정말로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거 같아서 하염없이 바닥을 쓸어보던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의 짧은 미련은 아마 집에 돌아가서야 비로소 끝날 것이다. 돌아가는 길을 다 톺아보고, 그리고 귀걸이를 찼던 자리에 앉아서 거기에 흘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귀걸이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빨리 그 존재를 잊는 게 낫다는 걸 알지만, 지금 조금 마음 편하자고 그랬다가는 최선을 다해보지 않았다는 게 내내 마음을 괴롭힐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아주 작은 미련으로 혹시나? 아침에 너무 피곤한 나머지 한쪽을 제대로 차지 못하고 집에 떨어뜨리고 온 것은 아닐까? 아침부터 한쪽만 차고 온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도 자꾸만 내가 다 톺아보지 못한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고 있다. 자꾸만 돌아가는 길에, 혹은 집에 들어가 문을 열고 앉은자리에, 그 귀걸이가 있는 장면을 상상하게 된다.


이토록 이별이란 갑자기구나. 그게 뭐든, 그게 누구든.


그걸 알려주려고 주님께서, 귀걸이 한 짝 빼가셨구나.


어쨌거나 여기까지였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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