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애착도 미련도 쩌는 사람이라, 사실 집에 돌아가서 귀걸이가 없는 것을 알고도 하루를 더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을까? 어딘가에 사진이랑 전화번호를 붙여둬 볼까? 그런 것들. 결국 지하철역들과 버스회사에 전화를 해보고 나서야 그가 나에게 다시는 돌아올 수 없게 되었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은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에.
나는 왜 그렇게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최선을 다해야만 했을까?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머리와 마음이 늘 합의에 실패하는 지점에서 나는 꼭 최선을 다해보아야 마음에서 떠나보낼 수가 있었다. 왜 그랬을까.
귀걸이를 찾는 동안 문득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왜 쓸모없는 것들은 없어지지도 않고 자꾸만 나오는데 쓸모 있는 것만 사라질까? 애타게.'라는 생각.
그런데 생각해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었다. 사실 쓸모없는 것도 일정 비율로 없어지고 있을 것이다. 다만 어쩌면 쓸모없기 때문에 없어졌는지도 모를 뿐이고, 그게 쓸모 있는 무언가를 찾을 때에야 비로소 갑자기 튀어나와서 걸리적거리는 바람에 아이러니하게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슬픈 일이다.
더 슬픈 일은 그것이 잃어버렸던 동안 쓸모 있는 것이었다가 찾은 시점에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을 때다. 그것은 또 다르게 알싸하게 마음 시린 것이다.
그러니 우선 내가 귀걸이를 열심히 찾았고 애가 탔던 것은 내가 그것을 2년여간 사랑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무 당연해서 늘 함께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 그 사랑과 쓸모가 끝나지 않았을 때 나를 갑자기 떠난 것이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아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또 나는 문득 내게서 잃어진 것의 입장을 생각하게 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마음 아플 때는, 내게는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이 나를 떠나는 순간 의미 없어질 때이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시계에 달려있던 중요하고 구하기 어려운 부품 하나가 떨어져 나가서 사라진다면? 내 시계는 그 부품이 없어 멈춰서 쓸모가 없어지고, 그 부품은 차가운 길바닥에서 그 근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한낱 치워야 할 쓰레기로 취급받아 버려진다. 그 부품이 나를 떠나지 않았거나 돌아왔더라면 시계도 멈추지 않고 부품도 가치 있는 자연스러운 일상을 살아가게 되겠지만, 둘이 떨어져 버리는 순간, 그 자연스러움이 깨어지고 새삼스럽게 시간이 멈추며 둘은 모두 가치를 잃어버린다. 나는 애타는 마음으로 내 눈에는 도통 보이지 않는 그것을 찾아 헤매지만, 야속하게도 우연히 그것을 본 사람에게는 그것이 하나도 소중하지 않다. 내게 있으면 소중한 것이 나를 떠나면 의미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꼭 아까워서라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의리와 같은 마음으로, 한 번은 최선을 다 해 찾아보아야 비로소 인정하고 보낼 수가 있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었다면 그것은 안 되는 거니까. 어쩌면 사람은 반대로 의미 없는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야 비로소 의미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물건은 말을 못 하니까. 혹시 나를 떠나서 누군가에게 더 가치 있어지는 무엇이라면 조금은 시원섭섭하더라도 기꺼울 수 있을 텐데, 그런 게 아닐 때는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찾고 지킬 수 있을 때까지 지켜는 보고 싶은 것이다. 나한테는 아직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면. 어쩌면 그 의식이란 무엇도 하지 않으면 영영 답을 들을 수 없는 것에 대한 나의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보면 꼭 주워서 찾아주고 싶어 했다. 이리저리 채일 게 위태로워서. 그리고 내 눈에 의미 없어 보이는 이것이, 그 주인에게는 애타는 무엇일 수도 있는 거니까. 그 연을 다시 이어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마음이 누군가와 그것을 엇갈리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운명이라 할지라도.
그래서 요즘은 정말로 영 주인을 모르겠는 물건은 최대한 그 자리에 두려고 한다. 찾으러 올지 아닐지 몰라도 어쩌면 애타는 마음으로 그 길에 애타게 찾아왔던 것이 그대로 놓여서 자신을 기다리는 환상을 놓지 못하고 왔던 길을 모두 되짚고 있을지도 모르는 그를 위해, 적어도 나는 그 운명을 비틀어놓지 않으려고. 하지만 나와는 생각이 다르거나 아직 이걸 생각하지 못했을 누군가가 또 주울 것이고, 그렇게 틀어질 것은 결국 틀어지게 될 것이다. 또 나도 언젠가는 다시 줍지 않는 마음보다 주워서 찾아주는 것이 운명을 개척하는 일일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 날이 다시 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잃어버리는 사람과 줍지 않는 사람과 줍는 사람은 돌고 돈다.
그제의 나는 잃어버리는 사람이었고 어제의 나는 줍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늘의 나는 인정하는 사람이 되어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리라. 물론 아직은 잃은 것에 대해 상술한 마음에서 떠나지는 못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당분간 잃어버리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은데, 그것은 아마 불가능한 일일 것이겠지?
무엇도 당연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언젠가 떠난다는 마음으로 조금 마음을 띄워두면, 나는 좀 더 무덤덤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