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정말 오랜만에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으니까 사실은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내 시험을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완전히 새로운 직무를 맡게 되어버렸다. 사실 학교일이라는 게 참 묘한 게 어떻게 해도 1년은 지나가고 크게 잘 되어도 티가 안 나고, 개같이 빵꾸나도 어떻게든 지나가게 마련이기는 한데, 타고난 성격이 그렇지가 못해서 내 시험보다 남의 시험에 한 해를 걸어버렸다. 뭐 모로 가도 서울은 서울이지, 어쨌든 계획대로 내 시험에 매진하는 것은 생각보다 못했지만, 고3담임으로서 한 해, 나름 자이언트 베이비로 성장했다. 뭐 어쨌든 크게 성장한 한 해. 물론 선무당 애송이라 할 수 있는 생각이지만(그러니까 지금밖에 못하는 생각이니 지금 좀 하겠다.), 나 좀 재능충 맞는 듯..? 여태까지는 귀납적으로 퍼즐을 맞춰왔다면, 진학지도를 통해 결실을 맺자고 아등바등해보니 좀 틀이 다르게 보인다. 그러고보니 여태 맞추지 못했던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거나, 혹은 만화에서 나오는 궁극의 열쇠를 꽂아서 유닛이 완성된 느낌이 드는 한 해. 그러기 위해 출장도, 연수도 겁나게 다니고 자료 연구도, 상담도 많이 했다. 내가 모르면 선배들께도 나누고 묻기도 하고. 좋은 생기부가 무엇인지 각도 잡고. 그런 생기부 쓰려면 어떤 활동 어떻게 기획해야할지도 생각해봤고.
이렇게 혓바닥이 긴 이유는, 정작 내 시험 공부는 정말 못했기 때문이다. (ㅠㅠ) 사실 인생의 과업은 이쪽이었을 텐데, 뭘 맡으면 그걸 또 잘해야하고, 그렇지 못하면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는 성격이 크으게 한 몫을 했다. 그래서 항상 마음 한편에는 그놈의 시험 생각이 있었다. 왠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는 듯한 그런 복잡한 마음과 번민과 불안정함. 그래서 이래저래 극도로 불안했던 시험 직전에, 시험이 끝나면 참치를 먹기로 하면서 시험 끝에 어쨌든 참치가 기다린다는 마음을 먹기로 했다.
정작 시험이 끝난 날은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참치를 미뤘다. 그러나 이 시험은 참치를 먹어야 비로소 끝나는 시험이었다. 그래서 참치를 먹었다.
뭐 참치 하나 먹은 거 가지고 이렇게 정신사나운 소리를 하나 싶겠지만, 나는 그런 의식이 제법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일들이 슬그머니 시작되고 끝나기도 하지만, 어떤 일들은 시작과 끝이 제법 중요하다. 그래야 시작하는 마음을 먹으며 힘을 낼 수 있고, 끝내는 마음으로 어쨌든 무겁게 내려앉은 회한과 묵은 일들을 털고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것들이 있다. 11월 27일에 나는 참치와 함께 생각보다 마음의 짐이기만 했지만, 어쨌든 올해 내게 늘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았다. 어쨌든 나는 올해 성장했다.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지겠지.
그렇게, 시험 마치고 며칠이 지나서야 참치와 함께 시험을 끝냈다. 마무리 의식으로 좋았던 선택
어쩌면 삶이란 내가 구성하는 문장들로 이루어진 한 편의 글이지 않을까. 그래서 당장은 전체가 보이지 않더라도 좋은 주제와 단어를 골라 끊임없이 써내려가야하는 게 아닐까. 그 중 한 문장에는 꼭 들어가야하는 문장성분을 빠지지 않게 써야 뼈대가 생기고 적절한 수식어를 써주면 풍요로워진다. 과도한 수식어는 문장을 망칠 수 있고, 잘못 고른 단어가 글을 흐릴 수 있으며, 미련을 가지고 맺지 못하는 문장은 문장이 되지 못한다. 앞문장이 좀 부족해도 뒷문장이 부연해줄 수 있으니까, 맺을 문장은 맺어야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러니 이 문장에 이렇게 마침표를 찍고 다음 문장으로 가자.
나의 참치의식에 대한 기록. 참치의식을 적극 협찬하며 함께해준 H에게도 커다란 감사의 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