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생각보다.
몇 번 언급했듯이 올 1월 중순, 나는 만신창이가 된 마음을 역시 만신창이인 몸이 버틸 수 없어질까봐 헬스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난생 처음 하는 헬스에 바짝 긴장하고 PT가 없으면 헬스를 시작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PT를 등록하기로 마음 먹었다. 동네 헬스장 두 군데를 상담 받고 현재 답도 없는 폐기 직전의 몸뚱아리를 어떻게든 살려야한다는 마음에 재활 PT가 있는 곳으로 등록하게 됐고, 결과적으로 대만족하며 운동 중이다.
등록한 헬스장 체험 PT를 갔을 때 원장님이 특정 동작을 해보게 하셔서 아무 생각없이 따라했는데 원장님의 반응이
"...? 이게 되시네요...?"
였다.
"...이게 안 되나요?"
"...네 운동을 처음하시는 분들은 보통 못하시는 동작입니다. 코어가 아주 없으신 건 아닌가봐요."
....몰랐던 코어의 존재를 발견했다.
PT 초반에 한 타임 막바지가 되었을 때 PT쌤이 갑자기 플랭크를 해보라고 하셔서 해봤다. 처음부터 부들부들 떨면서 자세를 잡으니 별 기대 안 하신 거 같은데 1분 10초를 버티고 내려왔더니 PT쌤이 화들짝 놀라셨다. 사실 버틸 마음을 먹었으면 더 버틸 수도 있긴 했는데 무리하지 마라길래 무리 안 한 거였는데...라고 말했더니 PT쌤도 회원님 코어 상태 좋으신 거 같다고 했다.
....전혀 몰랐던, 내가 코어수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PT쌤이 수업이나 운동 전 10분 정도 유산소를 타고 몸을 데운 다음에 운동을 하고 끝나고 유산소를 40분쯤 태우라고 하셨다. 나는 가성비 좋게 유산소를 태울 수 있는 천국의 계단을 선택했다. 천국의 계단은 대충 15분쯤 타도 괜찮다고 하셨다. 15분? 그래서 20분, 25분, 30분을 존버해봤다. 그 말을 들은 PT쌤이
"회원님, 지구력은 진짜 인정이에요."
라고 하셨다.
....내가?
...정말 생각도 못했던, 내가 지구력 개쩌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 힙과 하체 운동을 조금 무리하게 해놓고 뱃살을 마저 조지겠다는 일념으로 코어운동을 하다가 살짝 근육이 놀라는 경미한 부상을 당했었다. 며칠 가는데 너무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한의원을 갔더니 복직근 염좌 또는 파열이 의심된다고 했다. 파워N모드가 켜져서 오만 상상을 다하면서 검색해보다가 생각이 점점 커지길래, 스레드에서 도움을 주신 도수치료사님 추천으로 스트레칭을 하고 재활의학과를 찾아서 초음파를 보고 나니 그 어느 곳도 파열된 곳은 없이 깨끗하지만 며칠 무리 안 하면 나을 수 있다는 말과 며칠치 약을 받아와서 먹고 나니 진료 후 하루만에 가벼운 복근 운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걱정이 사라지니 마음이 좀 편안해졌달까? 똑같은 고통도 보이지 않는 미지의 고통일 때는 추측과 상상이 난무하며 점점 커졌는데 실체를 알고 나니 걱정이 사라지며 빠르게 나아갔다. 오늘 경과 보러 간 김에 다른 아픈 곳도 여쭤보고 걱정되던 다른 부분 엑스레이도 찍어보았는데 내가 생각보다 아주아주 양호하고 멀쩡한 몸뚱이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도 새로이 알게 되었다. 나는 아주 멀쩡한 곳이 없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의학적 소견이 1도 없는 표본처럼 깨끗한 상태의 몸뚱이였다니(?). 갑자기 뼈부심이 들기 시작했다. 의사쌤께서 재활피티 이미 잘하고 계시고요, 이렇게이렇게 운동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걱정하실 거 전혀 없고요, 이미 운동 잘 하고 계셔서 그런지 상태가 너무 좋네요 *^^*라고 해주셔서 걱정이 싹 걷혔달까..? 안녕하세요? 뼛속까지 미인입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알지 못할 때는, 막연하게 모든 것이 두렵기만 했다. 잘못하면 어떡하지, 잘 안 되면 어떡하지, 크게 다친 것이면 어떡하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것이면 어떡하지?
그런데 막상 닥쳐서 암막을 한 겹 걷고 보니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한 발 다가서서 일단 시작해 보면, 암막을 걷기 위해 손을 뻗고 열어 젖히면, 그 실체에 다가설 용기를 내면, 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좋았던 일들이 많았다. 그 걱정이 덜어지면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뭐 생각만큼 나쁘면 또 어떤가.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더 나빠지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텐데.
헬스장에 가지 않았다면, 플랭크를 버텨보지 않았다면, 병원에 가서 몸속의 환부와 뼈정렬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한 발만 다가서면 마주할 수 있는 실체를 만나지 못하고 암막 뒤에서 크나큰 망상에 잡아먹히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암막 안에서 두려워 떨고 있는 마음이라면, 용기를 내 암막을 걷어보자. 아마도 암막 저편에는 제법 괜찮은 세상이 있을 것이다. 적어도 막연하게 두려움에 떨어야하는 날들보다는 훨씬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