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를 좇는 마음

어떻게든 버티는 시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by 보드라운 고슴도치

내게 겨울은 유난히 늘 추웠다. 커다란 나무로 태어난 내가 풍성하던 잎과 열매도 모두 떠나보내고 오롯한 알몸으로 홀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계절. 자꾸만 나를 증명해야 하는 시간들이 닥쳐오고, 봄여름가을의 노력들이 산산이 부서지기도 하는 아픔은 무뎌질 법도 한데 늘 새로웠다. 봄여름가을의 따스함에 취했던 대가일까. 그렇다고 겨울이 아프지 않고 싶어서 따스함을 흘려보낼 수는 없다. 어제의 그 따스함이 겨울의 따가움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다가올 내일이기도 하니까.


올해는 꾹꾹 눌렸던 겨울의 아픔과 불안이 터져버려서 잠시 생각과 마음을 꺼두고 쉬게 했다. 그 자리를 몸이 가득 채우면서 몸과 마음이 비로소 발을 맞추는 짝꿍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게 즐겁다. 운동이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서 본격적으로는 살면서 처음 해보는데, 꾸준히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너무 재밌게 하고 있다.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결국 손에 잡히지 않게 산산이 부서지는 것과 달리, 몸의 변화는 시시각각 달라지기 때문이리라. 한 달 정도만에 매일 달라지는 몸과 몸무게를 보면서 눈에 보이는 노력의 열매에 위안을 받곤 한다. 물론 이 노력이 유익한 것이어서 몸이 건강해지면서 마음도 한결 개운해지는 것도 너무 좋다. 나의 몸짓과 노력이 유익하고 무해한 것이라는 것이. 그래서 요즘 헬스장은 나의 피안의 세계이다. 순수하게 몸과 땀과 나의 노력만이 가득 채우는 시간.


나의 첫 고3 아이들을 졸업시킨 며칠 전에도 뭉클한 마음과 헛헛한 마음을 운동으로 태우고 밤이 되어 돌아오는 길이었다. 고요한 한밤에 밝은 달도 보고, 시선을 먼 곳에 두고 터벅터벅 돌아오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다 와 아파트 정자 앞 익숙한 자리에 별안간 화사하게 한껏 꽃을 달고 있는 꽃나무 한 그루가 보였다.

예쁘다, 벌써 꽃이 피나? 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영하 7도에 저렇게 화사하게 꽃이 피는 나무가 있었나? 이 자리에? 벚꽃나무 자리는 여기가 아닌데?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어 다시 보니 본래 일 년 내내 빨간 잎을 단 단풍나무의 잎이 말라 오그라 붙으면서도 제 몸뚱이에 대한 의리를 지키는 중이었다. 어찌 생각하면 진정하게 눈물 나게 아름다운 꽃과 같은 마음이겠구나 싶긴 했지만, 어쨌든 정체는 꽃나무가 아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자리에 꽃나무가 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꽃나무를 보았다고 생각하고 말했을 것이다.
내가 그냥 스쳐 지나가면서 얼핏 꽃나무인가? 했다면? 나는 신기하게도 한겨울에 꽃이 활짝 핀 꽃나무를 보았다고 생각하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온전히 나의 감각으로 얼핏 접한 것을 그저 믿어서는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고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특히나 적어도 말하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잘 아는 것이어야겠다는 생각.

그런데 어쩌면 나는 꽃나무를 보고 싶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 현실에는 없지만 절실하게 원하는 것을 환상이나 꿈으로 보기도 하는 것처럼. 8월의 크리스마스라든지 한여름에 눈이 내린다는 엉뚱한 내용의 노래가 있는 것처럼 갈망하는 것을 상상할 자유는 있는 셈이니까. 내가 한겨울에 꽃나무를 보았다는 것이 누구에게도 무해한 것이라면 내가 꽃나무가 만개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상상하는 것은 지금 당장은 그럴 리가 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지금의 상실을 견디고 곧 다가올 날들을 기다리는 마음이라고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그토록 봄을 기다리고 있었구나. 혹은 이 혹독한 겨울 한가운데서 봄을 발견하는 마음으로 힘을 내면서 버텨내고 있구나. 그런 마음으로.

사막 한가운데서 목이 말라죽어가는 사람들이 조금 더 걷게 하는 것은 신기루라고 한다. 신기루조차 보이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희망을 잃고 말라죽어갈지도 모르는데, 조금만 더 걸으면 물을 마실 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한 걸음 더 걷게 하고, 그렇게 사막을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등산을 하다가도 정상이 어디쯤인지 물으면 10분만 더 올라가면 된다는 그 신기루 같은 희망이 한 걸음을 더 걷게 해서 마침내 정상까지 오르게 한다.

어쩌면 정말로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보면 그럴 리가 없는 것들을 말하는 마음은 듣기에 터무니없을지라도 그를 한 걸음 더 걸어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내일을 바르게 살게 하는 것은 현실인식일지 몰라도, 버틸 수 없는 날들을 하루에 하루를 더해 버텨내게 하는 것은 신기루를 좇는 마음이 아닐까.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또는 믿고 싶은 대로. 그의 세상에는 그때에 필요한 것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해 아이들 진학 상담을 할 때도,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대할 때도, 그리고 내가 여전히 아련한 것들을 놓지 못하는 마음으로 아득해질 때도, 이 순간을 기억하며 신기루는 사실 허황된 것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신기루를 좇는 마음을 조금 더 헤아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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