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의 주문

또는 삶의 방향

by 보드라운 고슴도치

요즘 나에게는 마법의 주문이 있다.

"유산소!"


좀 한참 걸어야 할 일이 생기거나 올라가야 할 계단이 보이면 주문을 외친다.

"유산소!"

갑자기 가야 할 길이 별로 멀지 않게 느껴진다.


갑자기 딸기치즈타르트 같은 사치스러운 치팅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고민이 생길 기미가 보이는 찰나에 주문을 외치듯 생각한다.

"유산소!"

그럼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이 맛있게 먹으면서 그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유산소 하면 되니까.


유산소가 하기 귀찮으면 어떻게 하냐고? 그럼 또 마법의 슈트를 착용하면 된다. 그것은 바로 운동 시작하면서 구입한 젝X믹스 레깅스. 일단 레깅스를 다리에 끼면 얼른 튀어나가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산책 나가고 싶은 강아지 같은 마음이 된다. 홈트를 할 때도 잠옷을 입고 하는 것과 레깅스를 입고 하는 것은 묘하게 느낌이 다르다. 어쩌면 부적이라는 건 이런 기전으로 작용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것은 유산소다!'

'유산소 하면 되니까.'


마법 같은 생각이다. 문득 '이거 꽤 괜찮은 변화인데?'라고 생각했다. 작년에 어떤 사람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나 지향하는 방향은 그가 주로 쓰는 서술어에 묻어난다는 것을 깨달았던 적이 있다. 엄청 엄청 쌉T처럼 말하고, 강하게 말하는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까 그는 "~하면 서운하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것을 발견하고 가만히 지켜보니 그는 누구보다 쌉F였다. 그걸 이해하고 보니 그가 왜 F인지, 그가 언제 마음 상해하는지,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지를 알 수가 있었다. 누군가의 말에는 그 사람이 묻어있었다. 그런 맥락에서 이 마법의 주문은 요즘 내가 '~하면 되지.'라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그리고 하면 된다는 것이 아주 뜬구름 잡는 무엇이 아니라 실현 가능한 작은 목표인 유산소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먹고 싶은 것이 생각날 때 나를 꾹 누르고 참고 포기하는 게 아니라, 먹고 걸으면 된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삶을 대할 수 있다는 것도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고 둘 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방향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도 좋았고, 어차피 걸어야 하고 올라가야 하는 것(이를테면 나는 일단 교실과 교무실이 복도 끝에서 복도 끝이다.)이 무의미하게 힘 빼는 시간이 아니라 유의미한 움직임이 된다는 점도 좋았다. 유산소가 되려면 파워워킹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걸음도 좀 힘차진다는 것은 덤이었다.


생각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순간에도, 혹은 모르고 있는 순간에도 사실 늘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흘러가는 생각들이 아까워서 글을 쓰고 있다. 흘러가는 생각도 붙잡으면 글이 된다. 그리고 흘러가는 생각들 중 한 단어나 한 문장은 삶의 방향을 보여주거나 끌고 가는 주문이었다. 요즘을 살아가는 나의 주문이 유산소라서일까. 제법 삶이 건강하고 생기와 활기가 생긴 기분이다.


요즘 당신의 주문은 무엇인가?

매거진의 이전글괜찮은 오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