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가닉 효과라는 것이 있다.
풀지 못한 숙제나 해결하지 못한 과제는 더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서 뱅뱅 돌고 있다는 것. 그것을 머리는 놓지 못하고 어디선가 끝까지 붙들고 풀고 있는 것이다. 미련하게스리.
그리고 가끔 나는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알려줘 버리면 머릿속에서 그 문제를 풀고 이제 놓아버릴까 봐서인지 그 답을 어디엔가 꽁꽁 숨겨두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나 보다. 사실 의식은 눈에 불을 켜고 답을 찾아 헤매고 있으므로, 무의식이 그랬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답을 아주 엉뚱한 곳에서 마주한다. 어쩌면 아주 냉정하게 상대의 입장을 엉뚱한 3자를 통해 마주하게 된다든지, 그게 3자이기 때문에 꽁꽁 숨겨놨던 그 답을 나도 모르게 꺼내주게 된다든지. 그리고 이내 그 답과 마주하며 서로 놀라게 되는 것이다.
오늘 문득 나는 누군가의 삶에서 내가 지나왔던 삶의 어느 구간에 함께했던 상대의 모습을 보았고, 그의 고민을 그때 내 상대의 입장에서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는 그 구간을 막 지나가고 있었고, 나는 적어도 그 구간을 지나와본 사람이었으므로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나는 "당신은 그녀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 않네요."라고 말했다.
언젠가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의 차이를 구분해 놓은 것을 보고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한 적이 있다. 다 기억나진 않아서 지금 생각나는 것은, 내가 행복하려고 만나는 거라면 상대를 좋아하는 것이고, 상대의 행복을 기준에 두면 상대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요지의 내용이었다. 미묘하지만 극명하게 둘은 달랐다.
그랬겠구나. 어떤 수많은 연애들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은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구분되지 않은 채로 같은 포장지에 담겨서 서로의 추억을 다르게 쓰게 하겠구나. 어쩌면 너는 나를 좋아했고, 나는 너를 사랑했으나 그 둘이 다른 것을 둘 다 구분하지 못하였으므로 우리는 엇갈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지만 어쩌면, 나는 너를 사랑했다는 말은 옳을까? 그것도 모르겠다. 정말 사람으로 사는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다. 어쩌면 느끼는 감정에 이름표를 붙이는 일조차 이토록 어려워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