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져서 꽉 잠기지 않던 볼펜이 떨어지며 스프링이 사라졌다.
마치 원래 없던 것처럼.
원래 없던 것이 아닐까 하고 조립해 잠가보았는데 아까의 볼펜이 아니었다. 스프링은 사라진 것이었다.
적당한 힘을 주어 사용하면 볼펜의 몸통이 꽉 잠기지 않는 것 정도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냥 헐겁고 불안정할 뿐. 그런데 그것이 떨어져 스프링을 뱉어내며 문제가 되었다. 그 볼펜이 영 쓸모없어져 버렸다. 별일이 없으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별일이 생기며 돌이킬 수 없어졌다.
아무리 찾아도 스프링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마치 원래 없었던 것처럼. 혹은 다른 차원의 문이 잠시 열려 빨려 들어가서 사라진 것처럼. 되려 평소에 보이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었던 쓸모없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프링도 그렇겠지. 애타게 찾을수록 보이지 않는 것이 그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 눈에는 걸리적대서 기어이 쓰레기가 되겠지. 그렇게 사라진 스프링도, 스프링을 뱉어버린 볼펜도 서로를 영영 잃으면서 두 쓰레기가 된다. 둘이 만나면 어떤 의미가 되지만, 둘이 영영 만나지 못하며 둘은 모두 쓸모없어진다. 더욱 슬프게도 그는 이제 그의 가치를 몰라보고 그와 마주치면 쓰레기통에 넣을 무심하거나 위험한 사람의 눈에만 보이게 될 것이다. 얄궂게도 꼭 그러했다.
마음은 아프지만 나를 떠난 스프링은 잊기로 하고 스프링을 잃은 볼펜은 챙겨두었다. 마침 닮은 녀석이 있으니까, 그거 다 쓰면 이거 끼워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스프링을 잃은 볼펜은 장기기증을 통해 새 몸에서의 새로운 삶을 꿈꾸는 날을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운명이란 그런 것이었다. 손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닥치며,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 평범할 때는 위험하지 않아 방심하며 삶으로 받아들였던 아주 작은 틈새를 파고 들어서 그 삶을 통째로 흔들어놓곤 하는 그런 것.
볼펜으로 태어나도 이런 운명에 휘말리게 될 줄이야.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생각 못하고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