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본인이 셀프로 소재로 활용하며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으니 나도 글로 쓸 수 있는 거지만, 2008년 싸이월드가 한창 유행할 때 장근석 배우님이 싸이월드에 올린 글로 허세근석으로 털릴 때가 있었다.
예를 들면 요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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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당시 장근석 배우도 20대고, 한창 저런 생각할 수 있는 때 아닌가...? 예술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감수성에 더불어 장근석 배우 정도 되면 저런 글 좀 올려도 되는 거 같기도 하고. 허세가 누구한테 칼 들이대면서 강도짓하는 것도 아니고 저거로 누굴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자기 싸이월드인데.
당시 디씨의 영향으로 온갖 밈들이 있었고, 익명으로 타인을 공격하는 것이 정재되지 못한 상태로 튀어나와 난무하는 야만의 시대였는데 날것으로 주어진 자유는 가끔 너무 무책임하게 타인을 베곤 했다. 너무 당연하게 멍석말이처럼 남이 하니까 재밌다고 남에게 막 폭력을 휘두르던 시절. 유독 '오그라든다', '손발이 오그라든다' 는 식의 밈이 유행하면서 지나친 담백함의 검열이 시작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폭력적일 수가 없는, 개성의 몰살.
그런 유행을 보면서 당시에 나는 윤동주와 백석이 요즘 청년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윤동주, 백석, 이육사, 김영랑이 고인이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 면면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싸이월드를 하는 유명인이었다면. 윤동주, 백석은 심지어 잘생겼잖아. 그럼 당시라면 막 5대 얼짱 이런 거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들의 싸이월드도 크게 관심받으면서 그들의 섬세한 문학성이 결합된 게시물이 허세 개쩐다며 조리돌림 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힘든 시대를 살다 간 그들이지만 그들의 고뇌가 문학으로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건, 싸이월드와 디씨가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낭만이 없는 시대. 낭만이 탄압당하는 시대.
윤동주 백석을 얻다 갖다 대냐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들의 정제된 작품들만 보고 있으니까, 그들이 평소에 그냥 쓴 게시물로 개털리며 의욕을 잃었다면 아마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이 되기도 전에 붓을 꺾었을지도.
근데 문득 요즘 유튜브뮤직에서 옛날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요즘 노래가사에는 없는 낭만이 있다는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이미 낭만이 탄압당하며 숨죽이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때도 지금보다는 낭만이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며칠 전 운동 갔다오면서 한때 노래방에서 많이 불렀던 루머스의 STORM이 생각나서 찾아 들었는데,
이 부분을 들으면서 오...제법 세기말 감성인데...?
라는 생각을 했다. 뭐 사랑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 너무 낡은 사람이 듣기에는 그 사랑에 목숨 걸 수 있었던 그 시절 젊은 사랑의 낭만도 느껴지고, 근데 또 요즘 어리고 젊은 사랑들이 다 그런가하면 오히려 낡은인 나보다 더 쿨하고 깔끔하고 어찌 생각하면 현명하게 자기를 지키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런 사랑은 이제 어디에서도 찾기 어려운 희귀한 사랑의 낭만일지도. 하지만 이 가사가 약간 낭만적이지만 좀 극단적인 느낌이 든다면, 가사가 굉장히 문학적이고 낭만적이어서 문학 수업은 물론 문법 형태소 끊기에도 많이 쓰던 내가 사랑해 마지 않는 노래가 있었으니
보아의 NO.1
이별한 여성 화자가 달을 청자로 설정하고, 기복의 모티프를 비롯해 전통적이고 지고지순한 조선의 전형적 여인상을 그린 노래. 사실 정확히 말하면 조선 사대부들이 이상화한 조선의 여성상을 그린 게 아닐까 싶다. 정철의 사미인곡, 속미인곡 정서와 달의 상징성을 설명하기 딱 좋은 노래. 어찌 생각하면 아름답고 지고지순한 사랑이지만, 좋은 이별따위는 없다는 생각을 하면 조선 여성이 강요 받은 여성성 + 정철이라는 남성 사대부가 이상화하여 왕 보시기에 딱 좋은 신하의 위치에 자신을 놓기 위해 차용한 이미지로서의 여성. 어쨌든 그 정서를 이해하게 하기에 딱 좋은 노래여서 수업에 많이 활용했는데...
이제 이 노래도 박물관에 박제되어버려서 애들한테 아냐고 물어보면 거의 모르는 노래가 되어버렸다. 보아도 어른이 되어서 이제 가수로보다 오디션프로그램의 심사위원이나 배우로 활동하는 때가 되었으니까.
이 노래가 지금 발표되었다면 어땠을까. 그때만큼 인기가 있을까?
이미 낭만은 죽었다고 생각했던 때에도 지나고 보니 사실 우리는 한창 하두리로 찍은 사진과 인터넷 통신(하이텔 나우누리 유니텔), 싸이월드로 숨죽이며 낭만을 만들고 문학적 모티프가 묻은 낭만적인 가사를 향유하고 있었구나.
그럼 진짜 낭만이 죽어버린 것 같은 지금도 지나고보면 그럴까? 그땐 무엇을 보며 그때도 낭만이 살아있긴 했구나 하고 깨닫게 될까?
덧,
얼마 전 수교경 임장행사에 처음 참가해서 평촌 일대를 돌았다. 묘하게 90년대 감성이 물씬 나는 1기 신도시의 거리를 걸으면서, 아직도 단지 내 작은 놀이터 앞에 테니스장이 있는 아파트를 보면서, 순간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땐 이게 낭만이 될 줄은 몰랐는데. 숨쉬듯 자연스러웠던 것이 사라진 자리가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그때의 향수를 자극하는 무언가를 만나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아련한 기억이 있는 것. 그런 것이 낭만일까. 어쩌면 낭만이란 이제 게릴라로나 만날 수 있는 아련한 것이 된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