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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드라운 고슴도치 May 26. 2022

낯섦의 권력관계, 그게 차별이다.

<민낯들>을 읽고


스피커의 존재만으로도 감사하고 귀한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오찬호 박사님이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아무리 말을 잘해도 말귀를 들어 처먹지 않는 사람에게 이거 한 번 읽어보라고 조용히 권하면 되는 그런 책. 그런 글을 써주는 고마운 사람. 그런 오찬호 박사님의 신간이 나왔다기에 이건 진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제목에서 진심 눈이 뒤집혔다. '민낯들'이라니. 이건 읽어야 했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서평을 아주 잘 쓰고 싶었다. 근데 글을 읽다 보니 내가 무슨 수로 이 글들보다 글을 더 잘 쓸 수 있단 말인가 싶어서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지만 다들 이 책은 꼭 읽어주시라. #미쳐있고괴상하며오만하고똑똑한여자들

과 함께 맞는 말 파티다. 언급한 책에서 얼마 전에 읽은 문장 중 '한국 사회에서 한 사람의 자살을 우울증의 결과로만 치부하는 것은, 어쩌면 그것이 가장 간편한 해결책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살의 원인이 공동체의 문제라면 함께 풀어가야 하지만, 개인의 우울증이라면 그것은 자살자 본인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여기를 보라니까 저기를 보는 사람들'이라는 언급에 오박사님의 문장으로 적혀있다.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을 이쯤 되면 옜다 답이다. 하고 던져주는 수준이다.



꽃은 피면 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꽃의 피어있는 모습만 귀하게 여긴다. 꽃이 지고 늙어 찌그러지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 그 자체'인데도 외면하거나 생각조차 하지 않거나 피어있는 다른 꽃의 존재로 눈을 돌린다. 한때 살아있던 시기에 열광하던 꽃의 죽음을 외면하고, 충분히 애도하지 못하는 사회. 그것이 민낯들과 닮아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철쭉이 지던 시기에 이 책을 받고 모두의 관심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철쭉이 아니라 복스럽게 피어있는 장미로 돌아가는 시기에 이 글을 쓴다. 아름다운 것에 관심이 있는 건 당연한 거 아니냐고? 그게 문제다. 아름다운 장면만 골라 편집해서 보려고 하니까. 그러게 인생을 '꽃처럼'핀다고 이야기하고, 꽃이 지고 열매 맺는 중간 과정을 생략하며, 열매 맺지 않으면 가치 없다고 여기는 것이 굴레처럼 덧씌워지지 않나. 피는 것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도 의미 있는데, 피는 시기가 지나면 마치 인생이 끝난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혹은 피어나는 시기가 지나면 열매를 맺어야만 한다는 식의 압박을 주는 것 그게 당연한가? 그렇지 못하면 가치 없는 인생인가? 그만큼 자연스러운 것 같은 우리의 생각의 우물 벽 높이가, 사회에서 규정하고 아무렇지 않게 너 예민하게 굴지 말라고 하면서 지어놓은 그 벽의 높이가 많은 존재들을 지우고, 잊고 또 잃게 한다.



책은 열두 가지의 민낯들을 보인다. 죽음으로서 세상에 존재를 증명해야 했던 사람들이 그저 잠시의 불꽃처럼 불타고 잊히고 있다는 것을 일깨우는 여섯 가지 민낯과 그렇게 망각하며 되풀이하는 데에 익숙한, '특히나 이해하기 어려운 역사는 반드시 되풀이된다'는, '낯섦의 권력관계, 그게 차별이다.'라는 도무지 이해시키기 쉽지 않은 명제를 이토록 명징하게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이 시대에 존재함을 감사한다.


우리는 모두 이 책을 읽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본인 또한 최진리님 생전에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 중 하나임을 고백한다. 날카로운 말로 그녀를 향한 칼을 던진 적은 없다는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운동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다 그녀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대단한 팬이 아니었음에도,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지만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닌 누군가가 죽은 것 중에 가장 강력한 충격을 받았다. 그녀가 그녀답게 사는 것을 나에게 이해시킬 필요가 없었음에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시선 중 하나였음을 깨달았고, 변할 수 있었다. 그녀의 죽음은 그런 의미를 가졌지만,  우리가 그 사실들을, 우리가 그런 민낯을 가졌던 사람임을 잊는다면 아무것도 변할 것은 없다. 누구에게나 우물 안 시절이 있노라고 작자도 말한다. 그러나 어느 사회의 우물 벽이 얼마나 높은지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자기도 모르게 결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함께 읽고, 벽을 깨자. 그리고 유익하고 무해한 사람이 되어서, 존재하는 모두와 함께 그들을 부정하지 않고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면 우리 모두의 그간의 무지로 인한 잘못들을 되돌이킬 수 있을 것이다.


#서평단 #북트리거 #오찬호 #민낯들 #오찬호신간 #사회학 #인문학 #차별 #혐오 #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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