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7년 ~ 1258년
지난주 목욕탕의 도시 로마에 이어, 오늘은 식도락의 도시 바그다드다. 드디어 연도 표시에 기원전이 사라지고 서기로 훌쩍 넘어왔다. 바그다드는 사실 들어는 봤지만 가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법한 도시다. 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중세 내내, 세계 20대 도시 중 19개가 이슬람 도시이거나 중화제국에 속한 도시였다고 한다. ( 유일한 예외가 콘스탄티노폴리스다)
로마가 지중해에서 확장하여 세를 구축했다면 바그다드는 서양과 동양을 연결하는 한 가운데에서 대도시로 성장했다. 인간 세계의 부와 에너지가 스페인의 코르도바와 서아프리카 가나 제국의 도시에서 중국의 광저우까지 땅과 바다에 걸쳐 펼쳐진 도시망에 집중되었고, 그 중심에 바그다드가 있었다. 특히나 이슬람교의 뿌리가 도시 문화였기 때문에 도시의 성장은 더욱 폭발적이었다.
물론 이런 지리적 조건도 이었지만,
바그다드가 세계의 중심이 된 비결은 힘과 돈이었다.
바그다드는 강력한 군사력의 중심지이자, 막강한 구매력과 사치 욕구를 가진 도시였다. 그리고 개방적인 도시로서 수많은 외부인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바그다드는 알 만수르가 세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만수르라는 이름은 요즘에도 유명한 이름이다.
길거리 음식
이런 국제도시 바그다드가 특히 식도락으로 유명한 것은, 성장하는 도시로 유입되는 이민자들의 특성 때문이다. 음식 판매는 음식 말고는 팔 만한 것이 별로 없는 다수의 이민자들이 도시로 진입하는 수단이었다. 바그다드 사람들은 왕족이건 부자이건, 가난한 사람이건 희귀하고 값비싼 재료를 썼고 음식을 무척 진지하게 여겼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묘사된 바그다드 시장의 모습을 보면 정말 화려하기 그지없다.
맨 처음에는 아주 맛 좋은 포도주 한 병을 산다. 다음에는 과일 가게에 들어가 '시리아의 사과, 오스만의 모과, 오만의 복숭아, 나일 강에서 자란 오이, 이집트의 라임, 술탄국의 오렌지와 시트론 그리고 알레포의 재스민, 향기로운 도금양 열매, 다마스쿠스의 수련, 쥐똥나무 꽃과 국화꽃, 새빨간 아네모네, 제비꽃, 석류 꽃, 장미, 수선화'를 산다. 그런 다음 푸줏간에 들러 양고기를 산다. 이번에는 말린 과실, 피스타치오 열매, 티하마의 건포도, 껍질 벗긴 아몬드를 사려고 식료품 가게에 들어간다. 그러고 나서 제과점으로 향해 ' 속이 보이는 과일 파이, 사행 냄새가 나는 과일 튀김, 비누과자, 레몬 빵, 절인 멜론과 갖가지 사탕을 산다. 향수가게에서 10가지 화장수, 사향 냄새가 나는 장미수, 등화수, 수련 화장수, 버드나무꽃 화장수, 제비꽃 화장수 그리고 나머지 5가지 화장수, 설탕 두 덩어리, 향수 뿌릴 때 쓰는 병 하나, 남자용 향료 한 개, 침향, 용연향, 사향, 알렉산드리아 밀랍으로 만든 초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채소 가게에 들러 크림치즈와 시리아의 단단한 치즈 그리고 사철쑥을 곁들여 소금물과 기름에 절인 버드나무 열매와 올리브 열매를 산다.
이것이 식도락의 도시 바그다드의 시장 풍경이다.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길거리 음식은 도시적 사교성을 창출하기도 하였고, 실제로 맛도 좋아 왕도 잠행을 나와 몰래 길거리 음식을 사 먹고 들어갔다고 한다.
세계 지식의 교차로 바그다드
바그다드는 음식 문화만 발달했던 것이 아니다. 음식에 대한 관심은 요리법이나 레시피를 책으로 남기고 읽고자 하는 욕구도 불러일으켰고, 때마침 중국에서 전해진 제지술로 문서로 지식을 남기는 일이 활발했다.
메트로폴리스 3장에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그 뒤를 있는 세계 지식의 중심지로서 바그다드가 떠오른다. 아래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대해 포스팅했던 글 링크이다.
https://blog.naver.com/thedanny77/222403335998
동서양의 중심에 있던 바그다드에는 서쪽으로부터 아테네, 알렉산드리아, 로마의 학자와 지식이 건너 왔다. 동쪽에서는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중국 등지에서 학자들이 찾아왔다. 이렇게 도시가 인간 지식을 폭발이 일어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한다.
* 정치적 상업적 측면에서 강력한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
* 과학 실험을 후원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은, 야심만만 한 권력자들이 있다.
* 활기차고 호기심 많은 대중들이 탐구 문화를 조성한다.
* 무엇보다도, 새로운 관념과 사람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
역시 개방성이 중요한 요소다. 도시가 발전하려면 알렉산드리아나 로마 그러했듯이 활짝 열고 사람과 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현대에도 배울 점이 많은 것 같다. 인종의 용광로 미국은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며 초강대국이 되었지만 요즘 보면 고질적인 인종 차별 문제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보인다. 누군가 '미국이 망한다면 인종차별 때문일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요즘 부쩍 외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는 그들에게 편견 없이 활짝 열려 있는지 반성해 보게 된다. 외국인 노동자들, 다문화 가정 등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겠다.
이렇게 융성하던 바그다드는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군에게 아시아와 유럽 일대가 초토화되면서 쇠퇴하게 된다. 13세기에 세계적인 도시들이 이렇게 파괴되자 세계 무역의 양상이 흔들렸다. 그러나 지는 것이 있으면 피는 것이 있듯이, 이러한 도시 붕괴는 13세기 이후 새로운 도시의 출현과 도시 문화 형성을 가속화 시킨다. 역시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가 보다.
다음 편에서는 바그다드에 이어 뤼벡으로 넘어가 보자. 유럽의 도시로 떠나보자.
그 때까지 우리 모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