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21 씀.
아침저녁으로 큰 항우울제 캡슐 두 개, 항불안제 두 알을 삼키는 대신 고단할 때 푸록틴 한 알 정도를 먹는다. 상반기를 진료 없이 버텼는데 녹록지 않았다. 아니, 거짓말이다. 사실 갈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죽고 싶었나? 그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죽어가고 있었다.
불행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누군가에겐 불행이 아닐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나에겐 죽지 않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불행이었다. 걸을 수 없어 기며 살았다. 그것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살짝 밟힌 지렁이의 이동과 모습이 유사했다.
글 쓰기를 그만두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름이 찾아왔고, 나는 매일 스타벅스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며 게임을 했다. 커피값을 낼 돈이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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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에는 글 쓴다고 연필 대신 시간과 제정신을 깎아 넣었고, 하반기에는 스포츠 본다고 두문불출했다. 오지게 불행하고 눈물 나는 한 해였는줄 알았다. 위불행? 위악? 여하튼 다 물들었던 것뿐이었다. 퍼렇게 물들었을지라도,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린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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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 친구 J가 뮤직뱅크에 데려가 준 적이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알록달록한 머리칼이 보였고, J가 "야! 여기 너 최애 있다! 대박!!"이라고 큰 소리로 외치며 나를 돌아봤을 땐, 난 이미 저 멀리 로비 한가운데로 열나게 달려가고 없었다. 도망쳤다. 비슷한 일이 그 이듬해에도 있었다. 3년을 좋아했던 애의 생일을 마지막으로 챙겨줄 수 있었던 그날, 나는 그 애에게 초콜릿 하나를 주었다. 결과적으로 그날 이후로 그 애를 보지 못한 건 아니었지만, 그때 튀어나왔던 나의 심장 부근엔 퍼런 멍자국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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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향으로 향하는 배려가 되돌아오지 않을 때, 햇빛보다 진한 서러움을 남긴다고. 의사 선생님은 서러워하는 날 안타까워했다. 그녀의 위로는 나를 빈틈없이 벗겨냈다. 받을 것을 다 받은 나는, 이제 더 이상 메아리를 기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