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현 Sep 15. 2019

타인의 삶을 볼 때

나는 나를, 그녀는 그녀를 바라보아야 한다

  골목에 있는 주택이었다. 커튼이 쳐 있는 큼지막한 창, 그늘막이 세워진 테라스에서 여자가 건조대에 빨래를 널고 있었다. 걸려 있는 마른 세탁물들을 한쪽에 모아 두고 흰색의 수건, 셔츠 등의 물기를 탁탁 털어 구김이 없게 만들었다. 그 모습이 참 여유로워 보였다. 그녀의 얼굴이 내 얼굴과 오버랩되면서 그 여유로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시작 버튼을 누르니 1:10의 세탁 시간을 확인한다. 그 시간 동안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한다. 먼저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냉장고를 열어 오래되어 먹지 못하는 식재료를 음식물쓰레기봉투에 담고 반찬통을 정리한다. 마른 접시를 정리한 후 식사 때 나온 그릇들을 정리한다. 청소기를 돌리며 정리하지 못했던 옷가지들을 옷걸이에 걸어둔다. 필터의 먼지와 머리카락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휴지통의 비닐을 꺼내 종량제 봉투에 담는다. 분리수거들과 함께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면 건조대에 있던 마른 옷들을 걷어와 정리한다. 각각의 서랍에 넣어두면 어느새 세탁기에서 종료 알림이 울려온다. 건조대에 빨래를 널면서 저녁 메뉴에 대해 고민한다.


사람의 삶이라는 게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타인의 삶이 이상적으로 보여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녀도 카페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같은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나의 삶이 지루해질 때 타인의 삶은 행복해보인다. 보여지는 것들로(어쩌면 보여주는 것들로), 얻어진 결과만으로 판단하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쉽게 불행해 빠졌다. 오늘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내 얼굴이 겹쳐졌다. 쏟아지는 햇살에 빨래를 널며 행복해하는 내 얼굴. 그제야 나는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행복해졌다. 나는 타인의 모습이 아닌, 내 모습을 진정으로 바라봤을 때 행복해질 수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문을 닫을 때야 써진 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