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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Apr 08. 2019

문을 닫을 때야 써진 글

일상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

 사과를 사야 한다. 매일 아침 J는 냉장고 오른쪽 과일 칸에 보관해놓은 사과를 꺼내 먹는다. 사과가 떨어지면 J는 상쾌한 아침을 시작하지 못한다. 주말 내 출근을 하는 바람에 사과를 사지 못했다. 오늘 퇴근을 하고 시장에 갔다. 사과는 4개에 5,000원이다. 바나나도 하나 산다. 바나나는 나의 아침.


엄마가 준 꽃무늬 장바구니만큼 튼튼한 장바구니가 없다


꽃무늬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페에 왔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켰다. 쓰고 싶어 계속 키보드를 두들겼지만 결국 무엇도 쓰지 못했다. 요즘 쓰기보다는 무언가를 계속 읽게 된다. 소설을 읽기도 하고 에세이를 읽기도 하고 시를 읽기도 하고 역사서를 읽기도 한다. 꾸역꾸역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 머릿속에 입력되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게 읽고 있다.


며칠간 아팠다. 몸의 리듬이 깨지니 자연스레 생각도, 마음도 무너져 있었다. 다시 제자리를 찾는 데에는 그보다 배의 시간이 든다. 억울하다. 왜 무너진 것은 같은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만 회복되는 걸까. 카페가 곧 문을 닫는다. 몇 번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니 드디어 글이 써진다. 왜 닫을 때가 되어서야 글은 써지는 걸까.


결국 어떤 것도 제대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얼음이 다 녹은 아메리카노를 한숨에 마시고 카페를 나왔다. 하지만 나는 내일의 사과와 바나나를 샀고 커피 한 잔을 마셨고 이렇게 글을 쓰고야 말았다. 그러니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는, 그것을 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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