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호텔 부산
이른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7월 둘째 주는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기 전이라 원하는 호텔, 원하는 뷰를 선택할 여지가 있었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시티뷰를 선택할 것이냐, 이왕 가는 거 탁 트인 오션뷰를 선택할 것이냐. 꽤나 금액 차이가 있으니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J의 가벼운 한 마디에 언제나 선택은 쉬워진다.
네가 정말 원하는 걸 선택해.
가격은 생각하지 말고!
'음, 그렇다면 말이지.' 하며 오랜 생각 끝에 오션뷰뿐만 아니라 테라스까지 있는 객실을 무려 '3박' 예약했다. 휴가를 얼마 앞두고 J에게 우리가 묵게 될 호텔과 객실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얼마야?"하고 물었다. 가격을 말해주니 입이 떡 벌어졌다. 오랜만의 여행이고, 앞으로 해외여행도 못 가고, 이러쿵저러쿵, 이런저런 이유를 댔다. 하지만 어떤 이유보다 '내가 원하는 곳'이라는 말에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21,480원이라는 획기적인 가격 덕분에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J의 지인이 공항까지 픽업을 나왔고 맛있는 점심과 커피까지 대접해주었다. 오후 4시쯤, 드디어 호텔에 도착하고 1206호 배정받았다. 객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해운대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테라스로 향했다. 도착한 날부터 날씨가 흐렸고 머무는 내내 비가 내려 맑은 하늘과 바다를 볼 순 없었다. 하지만 그 덕에 시원한 여름 공기와 적절한 조도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해운대 맛집인 '빨간 떡볶이'에서 사 온 떡볶이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정말 호텔을 좋아하는 이유
고작 10평의 공간이지만 호텔의 객실은 언제나 반듯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한다. 1박을 할 때보다 연박을 하면 호텔의 매력에 더 깊이 빠져든다. 머무는 동안 메이드가 깔끔하게 정리를 해주기 때문이다. 각 잡힌 티슈, 주름 없는 베딩, 깨끗이 비워진 휴지통, 물기 없는 세면대, 부드러운 샤워가운.
누군가는 왜 호텔에 가느냐고 묻는다. 집에서도 충분히 잘 쉴 수 있는데, 굳이 비싼 돈 들여 호텔에 머문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맞다. 집에서도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르다. 집에서의 휴식이 온전치 않을 때가 있다. 집에 가만히 누워 있다 보면 바닥의 먼지와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이 온다. 그러다 보면 물때 낀 화장실도 생각나고 바구니에 담긴 빨래도 떠오른다. 하나씩 하나씩 집안일을 하면 어느새 식사 시간이 다가온다. 음식을 만들고 먹고 치우는 일련의 과정을 하면 어느새 하루가 지나간다. 당연히 우리가 해야 할 몫이지만 무언가가 허전하다.
그 허전함은 온전한 휴식이다. 일과에서 잠시 떨어져서, 자유롭게 쉴 수 있게 해주는 공간이 내겐 바로 호텔이다. 우리는 늘어지게 잠을 자고 일어나 가벼운 옷차림으로 주변을 산책하다가 바닷가가 보이는 한 스페인 음식점에서 간단한 요기와 낮술을 마셨다. 한참 동안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방으로 돌아와 낮잠을 잤다. 느지막이 일어나 피트니스에서 운동을 하고 좀 부족한 기분이 들어 미스트처럼 뿌려지는 빗 속을 뛰었다. 다음 날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야외 스파에서 실컷 비를 맞으며 스파를 즐겼다. 3박 4일 내내 우리는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었다.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둘이서.
잠시나마 꿈처럼 누린 호텔에서의 3박 4일 휴가가 무척이나 즐거웠지만 왠지 모르게 집에 돌아오니 내 집만큼 편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스락거리는 침구는 없지만 썩 포근한 이불을 몸에 돌돌 감는다. 다음에는 어느 호텔로 떠나볼까.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