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언니, 나는 아이를 낳고 언니 생각이 더 많이 나. 결혼을 하기 전에도, 결혼한 언니가 집에 와 편히 쉬고 엄마 반찬을 가져갈 때도 부루퉁한 표정과 말투로 언니를 대한 적이 참 많아. 결혼을 하고 보니 언니가 많이 이해됐어.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서 더더욱. 엄마보다 언니가 나에게 더 가까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리고 더 이해하기 편한 사이잖아. 우리는 자매니까.
경험하지 않은 일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기란 참 어려워. 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라 더더욱 그랬어. 그래서 나는 어릴 적 '싯다르타'를 읽을 때 고빈다가 참 이해가 되지 않았어. 왜 직접 경험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할까. 아마 싯다르타가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런데 나도 고빈다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더라. 삶의 의미, 본질, 진리를 추구하지만 정작 거기에 몸과 마음을 던지지 않아. 질문을 던지지 않아, 그저 수용할 뿐이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삶이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점점 더 모르겠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것이 너무나 많아서 지금이 틀릴까 봐 두려워. 이런 생각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 그래서 나는 좀 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글쎄, 어떻게 달라지고 싶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어려운 데, 나는 달라지고 싶어. 살아보고 싶다고 말하면 이해가 될까? 언니, 나는 살아보고 싶어. 내일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아쉬움이 없이 살아갔었는데 나는 이제야 좀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무언가가 되고 싶다기보다는 그저 살아가고 싶어. 언니라면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지?
어릴 적, 늘 나에게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고 격려해주고 다독여주던 언니가 있어서. 언니가 내 언니여서 나는 살았던 거 같아. 고마워. 정말 고마워. 각자의 가정이 생기고 살아가는 모습이 조금씩은 달라도, 언제나 언니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응원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