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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Nov 15. 2022

살았으니까 괜찮아

거짓의 조금, 유진목

도시에서 새를 구한 적이 있다.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은 어둡고 밝았다. 무채색(무채색은 색이 아니라고 하지만) 표지가 어떻게 눈에 띄었을까. 작가의 이름 세 글자가 기억났다. 아침달 시집 시리즈 '식물원'을 쓴 시인. 그리고 내가 좋아한 '시와 산책(한정원 저, 시간과 흐름)' 책의 다음 편인 '산책과 연애'를 쓴 작가.


책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이미 섣부른 판단이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조금은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역시 지나친 자만이겠지. 그럼에도 책을 읽으며 나는 그녀가 살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여전히 그녀가 살아있음에 기뻤다. 그리고 벌레 같은 인간들에게 나름의 복수를 하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은 부모를 싫다고 말하고, 삶을 너무 사랑할까 봐 무섭다고 말하는, 그녀의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해져서 더 기뻤다. 여기에는 거짓이 전혀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왜 '거짓의 조금'일까. 한참 동안 책 제목을 입으로 되뇌었다. '사랑의 의미', '국민의 권리'. 이런 건 이해가 되는데 왜 '거짓의 조금'일까. '조금의 거짓'이라면 모를까. 며칠 동안 중얼거리다 사전을 찾아보았다. '적은 정도나 분량'을 뜻하는 조금. 어쩌면 이 책은 거짓의 '일부분'인 걸까? 아니면 그녀의 삶이 '거짓'의 일부분인 걸까?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면 뭐 어때. 어쨌든 살아가니까, 살았으니까 괜찮다. 그럼 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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