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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들의 아름다움

인생의 역사, 신형철

by 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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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지 않는 책들이 있다. 분야가 낯설거나 깊이가 너무 깊다고 여기질 때, 나는 책을 읽다 주춤한다. 신형철 평론가는 내게 그런 작가였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숙한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사람이라서, 책을 펼쳤다가도 이내 멈추곤 했다. 그래서 늘 읽고 싶지만 선뜻 다가갈 수 없는, 기울어진 관계 같았다. 동기부여가 필요해 책모임을 신청했고, 다 읽지 못한 채 참석했다. 그리고 기어이, 다 읽어냈다.


'살아간다'는 말이 좋다. 과정이 포함되는 말이라 그 안에는 부족함으로 인한 아쉬움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후회되지 않는 건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주는 희망 때문이다. 그러니까 '인생의 역사'는 제목부터 너무 매력적이었고, 목차는 더 아름다웠다. '고통의 각', '사랑의 면', '죽음의 점', '역사의 선', '인생의 원', '반복의 묘'. 고통은 여기저기 날카로운 흔적을 남기지만 사랑의 한 장면만으로도 살아갈 힘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죽음이라는 마침표가 찍힌다. 그 수많은 점들이 이어져 역사가 되고 마침내 모두가 이어져 인생이 된다. 그런 반복들이 삶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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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인생을 생각하며 책에 담긴 시와 작가의 평론을 읽었다. 어떤 시는 해설 덕분에 전혀 알지 못했던 한 시대의 역사를 배웠고, 또 다른 시는 인생 선배의 경험이 주는 조언 같기도 했다. 가끔은 오롯이 혼자 느끼고 싶은 시를 만나기도 했고, 시보다 작가의 글이 더 좋아 덕지덕지 인덱스 플래그를 붙이기도 했다.


작가가 아빠가 되어 쓴 첫 번째 책, 그래서 책의 시작과 마지막이 지금의 내게 더 와닿았다. 부모가 된 순간은 삶을 다르게 보는 새로운 지점이 된다. 이전에 나를 이룬 많은 생각들과 가치관이 동전의 앞뒤처럼 한 순간에 바뀐다. 이해되지 않았던 어떤 모습들이 단번에 받아들여지니까.


책을 다 읽기까지 한 달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참 좋았다. 오래 쥐고 있을 수 있어서. 혼자 읽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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