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 최진영
작가 한강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다. 그녀는 나와 전혀 다른 책들을 집어 읽고, 나와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고 느낀다. '구의 증명'도 그랬다. 아마 그녀가 아니었다면 내 손에 이 책이 닿았을까 하는, 처연하고 처염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
구와 담, 태어남과 살아감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태어났고 살아갔다. 그리고 죽음 역시도 그랬다. 길가에서 죽은 구의 시체를 힘겹게 끌고 온 담은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알 수 없도록 그를 먹는다. 그것이 책의 시작이었다. 파격적인 이야기는 일순간 나를 머뭇거리게 했고 그렇게 닫아버린 책을 한동안 읽지 못했다. 몇 달이 흘러 펼친 책은 어제 읽은 것처럼 다시 나를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가 마침내 마지막 장을 닫게 했다. 순식간이었다. 구와 담을 오래 그곳에 내버려 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저릿했다. 어디에서나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을 그들의 삶이 그늘 같고 그림자 같았다. 그럼에도 함께였을 때, 그저 둘이었을 때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웃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책을 읽은 후 근래에 본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놓았다가 끝내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누가 절절히 사랑하기라도 한대? 나는 그냥 시험 때려치우고 집 나간 심지구보다, 나 때문에 이렇게 미쳐서 팔짝 뛰는 너보다, 몇 살인지도 모르는 애랑 사귀는 심혜성보다, 아픈 엄마보다, 그냥 그 사람이 조금 더 걱정됐을 뿐이야. 그냥 그 사람이 덜 외로웠으면 좋겠는데, 이게 뭐, 이게 뭔데?"
결국 사랑은 걱정하는 마음이다. 담은 행복하자고 같이 있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고 말한다. 이렇다 할 고백도, 해피 엔딩도 없지만 누구보다 더 단단한 사랑이었음을 나는 느꼈다. 죽은 후에도 담이 곁에 남아있는 구의 존재가 그 사랑의 증명일 것이다. 다만,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알아본 사람의 사랑이 아플 때가 너무 슬프다. 사랑도 빈익빈부익부인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