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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Apr 22. 2023

사랑, 걱정하는 마음

구의 증명, 최진영


작가 한강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다. 그녀는 나와 전혀 다른 책들을 집어 읽고, 나와는 다른 무언가를 발견하고 느낀다. '구의 증명'도 그랬다. 아마 그녀가 아니었다면 내 손에 이 책이 닿았을까 하는, 처연하고 처염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


구와 담, 태어남과 살아감은 그들의 선택이 아니었음에도 태어났고 살아갔다. 그리고 죽음 역시도 그랬다. 길가에서 죽은 구의 시체를 힘겹게 끌고 온 담은 누구도 그의 죽음을 알 수 없도록 그를 먹는다. 그것이 책의 시작이었다. 파격적인 이야기는 일순간 나를 머뭇거리게 했고 그렇게 닫아버린 책을 한동안 읽지 못했다. 몇 달이 흘러 펼친 책은 어제 읽은 것처럼 다시 나를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가 마침내 마지막 장을 닫게 했다. 순식간이었다. 구와 담을 오래 그곳에 내버려 둔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저릿했다. 어디에서나 그런  취급(!)을 받으며 살아왔을 그들의 삶이 그늘 같고 그림자 같았다. 그럼에도 함께였을 때, 그저 둘이었을 때는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웃었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책을 읽은 후 근래에 본 드라마 '사랑이라 말해요'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자신의 마음을 꾹꾹 눌러 놓았다가 끝내 그것이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순간.


"누가 절절히 사랑하기라도 한대? 나는 그냥 시험 때려치우고 집 나간 심지구보다, 나 때문에 이렇게 미쳐서 팔짝 뛰는 너보다, 몇 살인지도 모르는 애랑 사귀는 심혜성보다, 아픈 엄마보다, 그냥 그 사람이 조금 더 걱정됐을 뿐이야. 그냥 그 사람이 덜 외로웠으면 좋겠는데, 이게 뭐, 이게 뭔데?"


이미지 출처: 디즈니+ 사랑이라 말해요 


결국 사랑은 걱정하는 마음이다. 담은 행복하자고 같이 있는 게 아니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고 말한다. 이렇다 할 고백도, 해피 엔딩도 없지만 누구보다 더 단단한 사랑이었음을 나는 느꼈다. 죽은 후에도 담이 곁에 남아있는 구의 존재가 그 사랑의 증명일 것이다. 다만,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알아볼 수밖에 없고 그렇게 알아본 사람의 사랑이 아플 때가 너무 슬프다. 사랑도 빈익빈부익부인 것 같아서, 그게 너무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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