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휴먼스 랜드, 김정
나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해서 사실 기반의 정보를 전하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보다 사실을 각색한 드라마나 소설을 통해 문제를 인식하는 편이다. 심각한 환경 문제와 기후 위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구 종말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 상황에서도 좀처럼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런 내게 '노 휴먼스 랜드'는 마치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것 같았다. 평행 우주 속 서울의 모습처럼 말이다.
노 휴먼스 랜드, 김정(창비)
소설 '노 휴먼스 랜드'는 기후 재난으로부터 시작된다. 2차례의 기후 재난 이후 지구 육지의 57%는 거주하던 사람들을 추방해 노 휴먼스 랜드로 지정된다. 그로부터 수십 년 뒤, 미아(주인공)은 노 휴먼스 랜드 조사단에 들어가 노 휴먼스 랜드인 '서울'에 파견을 간다. 할머니의 고향인 서울, 폐허가 된 그곳에서 함께 간 조사단 한 명이 죽고 만다.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알려진 노 휴먼스 랜드에 '누군가' 살고 있었다.
소설 속 노 휴먼스 랜드를 지정한 국제기구는 유엔기후재난기구 UNCDE(United Nations Climate Disaster Enforcement agency)였다. 노 휴먼스 랜드가 기후 재난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누군가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 갈 권리가 타인에게 존재할까. 소설은 기후 재난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전쟁이 떠올랐다. 기후 난민은 전쟁 난민 같았고, 기후 재난에 대응하려고 만들어진 환경법은 마치 전쟁을 중재하려는 나라들 간의 이권 다툼처럼 보였다.
세계는 점점 나빠지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하지만 이대로 물러날 수는 없다. '이토록 평범한 미래' 역시 누군가의 의지가 만든다. 우리가 '인간다움'만 포기하지 않는다면, 일단 뭐든 해보겠다는 '의지'만 굽히지 않는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