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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Mar 01. 2024

매일의 사소함을 사랑하길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인생, 앤 그리핀

'사람이 팔십사 년을 살면(p.11)' 어떤 느낌일까? 십 대에는 스무 살도 멀게 느껴졌고, 이십 대에는 삼십 대는 너무 나이 들었다고 생각했다. 삼십 대가 되니 '나이'에 대한 개념이 달라졌다. 서른도, 마흔도 그저 숫자에 불과할 뿐, 여전히 모르는 것투성이인 어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죽기 직전에야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깨닫게 되는 게 아닐까. 어쩌면 그 사실을 알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게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모르겠다. 


책/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인생, 앤 그리핀 (복복서가)

플레이리스트/ Eloise -  Wanderlust



책은 주인공 84세 모리스 해니건이 더블린 근교 호텔 바에 홀로 앉아 아들 케빈에게 하는 말인 듯한 독백으로 시작한다. "난 여기 기억하러 왔어. 지금까지 겪었고 다신 겪지 않을 모든 일을(p.38)." 그날 밤 모리스 씨는 호텔 허니문하우스로 향하기 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던(사랑했던) 다섯 명을 기억으로부터 소환한다. 폐결핵으로 죽은 형 토니를 위하여 흑맥주를, 사산한 첫째 딸 몰리를 위하여 부시밀스 21년 숙성 몰트위스키를, 특별한 처제 노린을 위하여 흑맥주를, 아들 케빈을 위하여 제퍼슨 프레지덴셜 실렉트를, 2년 전에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세이디를 위하여 미들턴 위스키를 마시며 그들을 향해 건배한다.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란다.

모리스 씨에게 가장 소중했던 다섯 명은 그의 인생의 전부였다. "중요한 건 사소한 것이란다, 아들아. 사소한 것(p.18)." 이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늦게 깨닫고 만다. 늘 곁에 있었던 그 사소한 것이 실은 모든 것이었다는 것을. 그는 사랑했던 존재들과의 이별을 잘 감당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랑도, 상실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던 모리스 씨는 불쑥 불쑥 나타나는 토니와 몰리를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아니, 그리움에 그들을 더 오래 떠나보내지 못했던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리스 씨를 오래 괴롭혔던 일이 있었다. 어릴 시절, 모리스 씨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일했던 지주 돌러드 가에서 그는 무차별적인 폭력과 학대를 당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창밖으로 떨어진 돌러드 가의 보물인 금화를 주워 오랜 세월 숨겼다. 금화 분실 사건은 돌러드 가 내의 불화가 더 깊게 만들었고, 모리스 씨 역시 그 일로 인해 오랜 세월 불행했다. 하지만 그 죄책감은 사실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호텔 스위트 하우스로 향하는 그날 밤에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제이슨에게 바란 건 살아 있는 것밖에 없었어요."


처음 책을 읽은 후에는 그저 모리스 씨의 인생이 후회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오래, 책을 덮은 후 오래오래 그의 인생에 대해 생각할수록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음에, 남은 이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음에, 회한에 잠긴 그의 인생이 참으로 슬프고 아름다웠다.


한 사람의 인생을, 그의 삶의 깊이와 밀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럼으로 우리는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매일의 사소함을, 늘 곁에 있어 소중함을 잊은 이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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