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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Oct 31. 2024

반짝이는 너의 오늘

매일 마주하는 우리

오늘은 너무 졸려서 자려고 누웠다가 모기의 잉- 소리에 결국 몸을 일으켜 모기 구이를 만들어주고 식탁에 앉았다. 오늘은 퇴근 전부터 너무 졸렸다. 어제 아이를 일찍 재우고 너무 신나서 늦게 자는 바람에 달리기 후유증이 다리에 달라붙어 있었다. 하원하고 일단 먼저 씻기려고 하는데 아이가 계속 안 씻는다고 도망을 다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아이 속옷과 실내복을 준비해 욕실로 향하며 "얼른 들어와."라고 말했는데 "나 안 졸려." 하는 아이의 답이 돌아왔다. 아, 씻으면 바로 잔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자기 전에 씻는 적이 많아 샤워 -> 잠으로 연결되어 생각한 거다. 이제는 대충 흐름을 다 안다.

나: 아니야, 씻고 나서 간식 먹자.

아이: 간식? 음, 그럼 키위랑 망고!

나: 망고는 없어. 키위는 있고.

아이: 아니야, 망고랑 키위.

나: 그럼 자몽은 어때?

아이: 오- 좋아 좋아. 야호. 그리고 엄마 까투리 보자.

오.... 먹는 걸로만도 충분히 딜이 됐는데 이제는 영상까지. 좋다 좋아. 하루에 30분 정도는 괜찮지. 씻으면서 막 소리를 지르길래 조용히 하라고 했더니 "아니, 아빠가 집에 오는 길에 내 목소리 들으면 기분 좋겠지?" 여기에 뭐라고 대꾸를 해야 하냐고. 아빠는 이 얘기 들으면 좋아하겠지, 근데 내 귀는 어떡할 건데.

씻고 나서 머리 말리고 간식을 준비하고 영상을 틀어주니 드디어 남편 퇴근! 완전히 집중력을 발휘하던 아이는 아빠가 들어오자 씩- 한 번 웃어주고 다시 몰입했고 그 사이에 나는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하고 남편은 분리수거 후 샤워 완료. 영상이 조금 길어 36분 정도 보고 간식 먹은 후 양치까지 시키고 좀 쉬려는데 갑자기 귤을 먹는 아빠한테 가서 자기도 달라고 한다. 양치해서 안 된다고 했는데 갑자기 아빠 손에서 귤 하나를 뺏어 들더니 아빠 설득하기 시작.

남편: 이거 안 먹으면 아빠가 내일 아침에 귤 큰~~ 거 다 줄게.

아이: 아니, 내가 아빠 저번에 계란 줬잖아!

남편: 그걸 왜 지금 얘기해.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야. 

아이: 아빠~ 내가 저번에 아빠 계란을 나눠줬잖아.

남편: 응, 근데 이현아. 지금 안 먹으면 내일 아빠가 귤 큰 거랑 블루베리랑 요거트에 넣어 줄게.

아이: 아니이~ 내가. 아빠 그 그 그 그(당황하면 말 못 함) 계란을 줬으니까 그렇지.

귤 하나로 꽤 오래 실랑이하다가 결국 먹겠다는 의지가 강한 아이의 승리. 그러더니 갑자기 신나서는 아빠랑 엄마한테 귤도 사주고, 옷도 사주고, 책도 사주고, 장난감도 사주고, 신발도 사주고, 로션도 사주고, 화장품도 사주고, 뽀로로도 사주고 다 사준단다. 그리고 엄마 목마도 태워주고 아빠도 목마 태워준다고. 너, 목 부러질 거 같은데? 이 말을 놓치지 않고 남편은 바로 아이에게 아빠 목마 태워달라고 하고, 또 아이는 그걸 해주고. 역시 아빠와 아이와의 놀이에 엄마는 관여를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놀다가 조금만 삐끗해도 바로 엄마 껌딱지로 돌변하니 말이다. 다행히 오늘은 더 격렬해지기 전에 멈췄다. 

자기 전, 남편은 그새 아이가 말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꽤 길게 혼자 말을 하는데 문장 완성도가 높고 사용하는 단어 수나 표현력도 디테일해졌다. 아이가 폭풍 성장하고 있다. 그걸 매일같이 마주하고 있다. 경이롭다. 지금 자기가 얼마나 반짝이는지 아이는 알까? 아이의 성장을 보는 즐거움이 이런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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