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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현 Apr 28. 2019

숨을 쉬고 있다면, 살아 있는 것이다

지지 않는다는 말, 김연수

'지지 않는다는 말'은 도서정가제를 시행 전인 2014년 저렴한 가격에 인터넷 서점을 통해 구입했습니다. 우연히 책장을 보던 어느 날, 이 책의 책등을 한참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5년 동안 이 책의 제목을 '지지 않는 말'로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저는 왜 이 책의 제목을 '지지 않는 말'이라고 읽었을까요? 아마도 '지지 않는'을 '사라지지 않는'이라고 해석했던 모양입니다. 그 시절 저는 무언가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내면의 생각이 반영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황정은 작가의 소설 '아무도 아닌'의 제목도 자꾸 '아무것도 아닌'으로 읽히는 것을 보면 제 안에 무언가가 고집스럽게 자리 잡고 멋대로 읽게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됩니다.



이 책은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김연수 작가의 소설보다 산문집에 더 손이 많이 갑니다. 김연수 작가의 산문집은 '사람 냄새'가 많이 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경험, 그 경험을 통해 느낀 감정을 수많은 단어와 문장으로 조합하여 사람의 마음을 툭, 건드리는 그의 문체가 참 좋습니다. 특히 이 책이 제 마음에 와 닿는 정확한 이유는 작가와 공통적으로 달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총 51개의 산문 중 절반(26개)이 넘는 글이 달리기와 관련된, 혹은 달리기를 비유로 든 산문입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표지에 빨간 코끼리가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것도 더 눈에 띄더라고요. 


숨 쉬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심장이 뛰는 일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말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뜻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통해 삶을 대하는 자세가 바뀌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반드시 이기는 하루를 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뛰는 가슴으로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거예요.


표지 드로잉, 요즘 그림 그리기에 재미를 붙였다


문장 기록

p 9

내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지지 않는다는 말이 반드시 이긴다는 걸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깨달음이었다. 지지 않는다는 건 결승점까지 가면 내게 환호를 보낼 수많은 사람이 있다는 걸 안다는 뜻이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건만, 나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다. 그 깨달음이 내 인생을 바꿨다.


p 128

오래 산 사람은 덜 산 사람처럼 호기심이 많고, 덜 산 사람은 오래 산 사람처럼 사려 깊은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p 139 

그렇게 해서 나는 달리기는 몸을 만드는 운동이 아니라 마음을 만드는 운동이라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p 154 

상한이 정해져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계속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게 최선일까? 나는 정말 이걸 원하나?


p 162

혼자서 고독하게 뭔가를 해내는 일은 멋지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은 결국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p 206

20대가 지난 뒤에야 나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해야만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제야 나는 최고의 작가가 아니라 최고의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기 시작했다. 


p 228

나 역시 소중하게 여기는 물품들의 목록들을 적어 본다. 양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도 남아서 바닥에 쌓여 있는 책들,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노래가 수두룩한 시디들, 세 개의 MP3, 오디오 세트, 간편하게 라디오를 듣기 위한 리시버, 쉴 때마다 연습하기 위해서 사놓은 두 대의 기타 ……. 그럼에도 내가 충분히 가지지 못한 건 바로 시간. 책을 읽을 시간, 음악을 들을 시간, 기타를 칠 시간, 달릴 시간.


p 247

예측할 수 없이 변하는 날씨처럼, 늘 살아서 뛰어다니는 짐승들처럼, 잠시도 쉬지 않고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처럼. 그처럼 단 한순간도 내가 아는 나로 살아가지 않기를, 그러니까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나를 사로잡는 것들이 있으면 그 언제라도 편안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p 297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열심히 일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대신에 나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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