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독립 운동가 주시경'
한 두해 전에, 아들과 함께 말모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다 보고 나서 아들이 영화관 로비에서 어찌나 대성통곡을 하던지... 현민아, 여기서 이러는 거 아니야... 농담까지 해가며 아들을 달래 보았지만, 영화 보러 온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쉽게 울음을 멈추지 못했던 아들 때문에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쩌다 보니 우리말이 있고 우리글이 있고, 태어나면서부터 그 말과 글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면서 작게는 나라는 한 사람의 생각, 넓게는 이 민족 전체의 생각을 담아낼 수 있는 말과 글이 있는 것이 마치 공기로 숨을 쉬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여겼던 중딩 아들이, 이 말과 글을 지켜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건 희생이 있었는지 그 사실을 직면한 순간(물론 사회 시간에 일제시대 강점기의 특징을 학습하기는 하였지만) 자기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정을 막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6학년 학생들 문학 통합 수업과 관련하여 좋은 책을 고르는 중에,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독립운동가, 주시경. 파랑새 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주시경이 한문으로 우리말을 적었던 시대에 태어나 어떤 계기로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우리말과 글이 우리 민족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어떤 것인지, 말과 글을 지키는 것이 왜 나라의 독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인지, 주시경이 우리말과 글을 지켜내기 위해 39세까지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았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일제의 침략과 압박이 극심했던 시대에 나고 자라서 그랬을까... 가난한 중에도 일과 학업을 병행하며 배움에 매진하느라 몸을 돌볼 새가 없어서 그랬을까... 우리말과 글을 지키고 가르치고, 보편화하는 일에 온 인생을 쏟아부어서 그랬을까... 너무 젊은 나이에, 그 생을 마감했다.
주시경은 서당 훈장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한문에 조예가 깊었다. 서울에 있는 큰아버지댁에 사촌 형들이 전염병으로 죽는 바람에 큰아버지댁에 양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서울에 가서도 양반댁 자제들이 글공부를 한다는 곳에서 열심히 한문을 배웠으나, 아무리 배워도 한문은 우리말을 담아내기가 어려운 구조임을 알고, 19세(1894년)에 한문 공부를 그만두고 새로운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공부를 위해 배재학당으로 들어간다.
호시탐탐 조선을 삼키려는 일본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의 개화파들은 정변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개화파 인사들은 일본이나 미국으로 망명해서 몸을 숨기며, 때를 고르고 있었다.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돌아온 서재필은 조선사람들에게 배움을 통해 나라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고 가르쳤고, 서재필에게 큰 자극과 도전을 받은 주시경은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이 담겨있는 우리말에 대한 연구와 보급이 너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이후 주시경은 서재필과 함께 독립신문을 만들어서 발간하고, 영어의 문법을 익히며 우리말을 모든 사람들이 일관성 있게 읽고 쓸 수 있게 연구하여 국어 문법을 완성했다.(1898년) 교회와 학교들의 요청에 따라 야학을 열어 우리말을 가르치며 우리말을 보다 체계 있게 연구하는 운동에 앞장섰다. 주시경이 우리말과 글을 연구하여 사람들을 계몽하고, 이것이 독립운동의 기틀이 되고 있음을 알고 있는 일본인들을 지속적으로 주시경을 잡으려 했고, 주시경은 일제에 맞서 싸우려면 좀 더 일본인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가서 연구와 사전 편찬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14년 가족들과 함께 만주로 떠나려고 계획 중에 있었던 주시경은, 사전 편찬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39세의 젊은 나이에 그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주시경의 숙원사업이었던 사전 편찬은 영화 말모이에서처럼 1945년 그의 제자들에 의해 완성이 되었다.
한글 창제는 세종대왕이 했지만, 이 과학적인 글자가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 한 것은 주시경이다. 한글소리를 체계화했을 뿐 아니라 문법 체계를 완성해서 한글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관성 있는 규칙에 의해 읽고 쓸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한 위인이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은, 몸을 던져 일제의 탄압에 맞섰지만 주시경은 부단한 연구로 일제에 저항했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으려는 일본이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창씨개명을 강요한 것은 말과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과 글을 가지지 못한 민족은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사그라들고, 생각할 힘을 잃어버리면 나라를 찾으려는 마음과 생각을 함께 공유할 수 없고, 마음과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민족은 영원히 독립할 수 없다는 무서운 선견지명을 가지고 조선인들을 탄압했던 것이다.
학생들의 수업을 위해 읽은 이 책이... 나에게도 새로운 도전을 준다. 비속어를 찰지게 사용하며 그것이 언어의 유희인 줄 착각하는 제자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우리의 일상생활을 차지한 근본 없는 인터넷 용어들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생명을 바치며 지켜 왔던 우리의 말과 글이 가지고 있는 힘을, 우리 스스로 제한하며 살고 있을 뿐 아니라, 무가치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이 생긴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 정신을 담아내려면 우리말과 글을 온전하게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지금 과연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염려들도 함께 다가온다. 수업을 하며 아이들과 하고픈 말이 백만 가지쯤 될 것 같다. 어느 것이든... 진지하게, 마음을 담아 함께 이야기하고, 우리말과 글에 대한 생각들을 진심으로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