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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ifferent way Nov 09. 2020

우리는 이대로 괜찮을 걸까?

"까대기" 서평



청주에 가면 꼭 찾아가는 서점이 있다. 동네서점 책방 tour 중에 알게 된 서점인데... 책을 사러 온 사람들을 배려한 책 진열과 소개, 서점 내부 곳곳에 책을 앉아서 읽어볼 수 있는 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어서 여행 중에 청주를 지나갈 일이 있으면 꼭 방문하게 되는 서점이다. 만화책 까대기도 그 서점에서 구입했던 책이었다.


까대기라... 이게 뭐지????


국어사전의 정의에 의하면 까대기란 "일정 근무 시간 동안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여 분류하는 일"이라고 한다. 원래는 "가대기"(창고나 부두 따위에서, 인부들이 쌀가마니 따위의 무거운 짐을 갈고리로 찍어 당겨서 어깨에 메고 나르는 일. 또는 그 짐)라는 말에서 시작되어, 요즘은 택배 상하차에 짐을 싣거나 내리는 일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책의 저자는 미대를 나왔지만 본격적인 만화가가 되기까지 수입이 일정치 않았기 때문에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가 필요했다. 몇 년 동안 저녁이나 밤 시간대에 만화를 그리고 낮에는 생계를 위해 까대기 알바를 했는데, 그때 경험했던 일들을 소재 삼아, 택배 노동자와 관련된 여러 직종의 사람들의 삶을 책 속에 그려 넣었다. 작가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까대기 만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나도 우연히 어디에선가... 책 속 작가가 그려낸 그 사람들을 어디에서 만난 적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우리 일상에 가까이 있는 평범한 이웃들의 삶이었다.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택배 직원들의 강도 높은 노동과 과로사로 숨지는 택배 기사의 안타까운 소식을 보도해왔기 때문에 택배 기사들의 살인적인 업무는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바다. 택배 기사들에게 갑질 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횡포(본인들의 필요에 의해서 택배를 이용함에도, 기사들이 아파트 내부를 돌아다니는 것은 못마땅하게 여겨 엘리베이터 이용이나 주차장 이용에도 제한을 두는)도 이들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든다. 까대기라는 이 만화를 읽기 전까지는, 택배기사들의 근무조건이나 환경이 참 열악하구나... 정도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택배기사들이 왜 과로사에 이르는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지, 그 구조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택배를 이용하는 소비자로서 매우 납득이 갔다. 


결국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얻어내기 위해, 만들어낸 구조였는데... 내가 저렴하게 내는 택배비가 결국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까지 하게 되는구나 싶어서, 스스로 부끄러워졌다. 얼마 전 뉴스에서 과로에 시달리는 택배 기사들을 위해, 지금보다 택배비를 더 올려도 부담할 마음이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택배 이용자인 내가, 택배회사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더라도, 한건의 택배가 기사에게 돌아가는 비용이 천원도 안 되는 현실 속에서 택배비를 아끼겠다고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싶어... 그렇게라도 해서 택배 기사들에게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작가가 까대기 일을 하면서 만났던 여러 사람들의 삶의 무게와 어려움들을 함께 그려냈다. 이들의 삶과 우리의 삶이 무관하지 않으며(실제로 현대인과 택배는 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이다) 서로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에 의하면 택배 지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1. 소비자가 물건을 구입하면 업체가 계약한 택배 회사의 기사가 택배를 실어서 지점으로 가져간다. 

2. 지점에 도착한 기사가 택배를 중앙 물류센터로 배달한다. 

3. 중앙 물류 센터에서 택배를 지역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밤새 한다. 

4. 분류된 택배는 지역 지점으로 갈 화물차에 실린다. 

5. 지역 지점으로 도착한 택배는 하차 작업을 한다. 

6. 택배 기사들은 자긴이 맡은 지역의 택배를 챙긴다. 

7. 택배 하차가 끝나면 택배 기사들이 배송을 나가게 되고, 비로소 소비자의 손에 택배가 들어가는 것이다. 


까대기는 5번에서 6번 사이에... 택배가 지점으로 왔을 때, 택배 기사들이 각 자신이 맡은 지역의 택배를 손쉽게 가져갈 수 있도록, 화물차에서 택배를 내려서 분류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지점에서는 이 까대기를 할 사람들을 알바로 고용하는데, 일은 고되고 처우는 형편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바뀔 뿐만 아니라, 까대기 알바가 없을 때는 택배 기사들이 이 까대기 업무까지 해야 하는 상황(당장 고객에게 물건을 전달해줘야 하는데 화물차에서 택배를 내려 분류할 사람들이 없다면 택배기사가 할 수밖에 없는... ㅜㅜ)인 것이다. 까대기 업무까지 해도, 늘 손에 들어오는 수입은 넉넉하지 않으니 택배를 중앙 물류센터에서 지점으로 배달해오는 운반 작업까지 하는 택배 기사들도 종종 있다고 한다. 보통은 화물차 기사들은, 새벽에 중앙 물류센터에서 택배를 싣고, 아침에 지점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쪽잠을 자고 일하는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 업무까지 택배기사들이 한다면... 새벽에 화물트럭을 운전하고 날이 밝으면 까대기 업무(택배 하차 작업)를 하고, 오전부터는 택배를 고객의 집에 운반해야 하니... 살인에 이르는 업무 강도라 할 수 있겠다. 


봄에는 햇양파 같은 농산물, 여름에는 매실, 옥수수, 수박, 가을에는 새로 수확한 쌀과 배추, 늦가을에는 절인 배추, 초겨울에는 김장김치까지 택배에는 우리의 1년 삶이 고스란히 녹아져 있다.  

매일 현관문 앞에 놓인 택배가, 내손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수고가 필요한 것인지, 까대기 만화책 속의 사람들의 삶을 마주하며 깨닫는다. 내가 지불한 택배비용은 과연 이들의 수고와 노동에 대한 충분한 대가인가? 과연 이런 구조로, 택배기사들은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까? 언제까지 나는 소비자이고 저들은 내가 낸 돈으로 응당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선을 그을 수 있을까? 


남편 유학으로 미국에 3년 반 정도 살 때, 익숙하지 않은 것 중에 하나가 delivery service였다. 한국은 많이 사면 배달료가 무료인데 미국은 물건을 많이 살 수록 물건의 가격이 비쌀수록 배달료도 높아진다. 생각해보면 물건을 많이 사면 당연히, 물건의 중량이 커지고 그러다 보면 노동의 강도도 올라가고, 비싼 물건일수록 취급을 주의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료가 비싸지는 것이 당연한데, 몇만 원 이상이면 택배비가 무료인 한국에서 살다 보니 미국의  delivery system이 참 이상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한인타운에서 한국 책을 택배로 받아보려고 하면 책을 많이 살수록 배달료가 비싸지는 것 때문에 참았다가... 시내 나가서 책을 구입한 적이 많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참 합리적인 방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는 가구들도 delivery비용이 비쌌기 때문에, 대부분 밴이나 트럭을 가지고 물건을 사는 사람들이 직접 싣고 가져와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다 보니... 소비자의 편리함 뒤에는 저비용으로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저자는 택배일을 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택배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고 한다. 가진 거라곤 자기 몸뚱어리와 택배 차가 전부인 택배기사들에게 마음이 갔다고 한다. 미련하게 정직하게 돈을 버는 이들에게 마음이 기울었을 것이다. 작가는 여전히~ 만화 속에 등장했던 사람들과 연락을 한다고 했다. 작가가 이웃의 삶을 생생히 그려낼 수 있었던 건 책 속 주인공들과 여전히 유의미한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두들 몸도 마음도 파손 주의입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이들의 고단한 삶을 이렇게나마 세상에 알릴 수 있도록 책으로 엮어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어느 누구의 노동도 손쉽게 가볍게 취급될 수 없다. 그 노동을 제공하는 이들이 우리의 이웃이며 인격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지만, 그럴 수 없다면 택배회사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라도 차즘 변화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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