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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ifferent way Jun 24. 2020

"나는 누구의 이웃인가"

청소년 성장 소설_완득이



'중딩이 된 아들이 책 읽기 띄엄띄엄해진 것 같아서, 재미있는 책을 찾아서 같이 읽어야겠다 싶어서 집어 든 책이다. 주변에서 책을 읽었다는 사람보다는 영화를 봤다는 사람이 더 많아서, 책을 읽고 나서 아들내미와 함께 영화도 봐야지... 했는데...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영화는 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나는 고집스럽게 소설이나 웹툰을 영화한 작품은 그 원작을 먼저 읽어야 한다 주의라서 책을 꼭 먼저 읽는 편인데 (그러다가 못 본 영화들이 있다... 82년생 김지영도 책 읽고 나니 영화가 극장에서 내려갔다. ㅜㅜ) 완득이는 영화가 워낙 사람들 입소문을 타고 유명했던지라... 살짝궁 기대를 했는데, 아쉬웠다. 책을 읽지 않고, 영화를 먼저 봤다면 영화도 뭐 나름 괜찮네 했을 수도 있는데... 작가인 김려령씨가 워낙 책에서 각 인물의 대사를 맛깔스럽게 표현해서 그런지... 책 속 주인공은 작가의 글 속에서 매우 입체적으로 살아있는 듯했는데(마치 작가가 완득이네 동네에서 완득이와 그 주변 인물을 보고 쓴 것처럼)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책에서 찡... 짠... 했던 부분들이 생략되면서(책에서 주요한 내용만 뽑아서 영화를 만들다 보니) 왠지 영화는 군데군데 비어있는 듯한... 혹은 이야기가 끊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영화 이야기는... 영화평에서 좀 더 자세히...^^


책 표지에 윤도현씨 추천사가 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윤도현씨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사실 장애인, 이주 노동자, 가난한 이웃들의 삶은 참 고단하고 막막하다.


장애인, 이주 노동자 문제 등
우리 사회의 편견에 대해,
이토록 유쾌하게 풀어낸 소설을 읽어본 적이 없다.


작은 아버님 작은 어머님께서 충북 괴산에 자리를 잡고, 다문화 가정 사역을 하고 계신데... 필리핀, 베트남, 몽골에서 결혼과 동시에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여성들의 삶은 참 팍팍하다... 한국어와 한국 정서를 잘 모르는 엄마와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의 삶도 참 쉽지 않다. 안쓰럽고 딱한 마음은 있지만 작은 아버님 내외가 하는 사역을 옆에서 지켜보니,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서 섣불리 도움을 주겠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다가 이 소설을 읽게 되었다.


"등장인물 소개"

완득이 아버지는 왜소증이다. 성인인데 키가 자라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카바레에서 춤을 추며 생계를 이어갔다. 완득이가 삼촌이라고 부르는 민구는 말을 더듬는다. 허우대는 멀쩡하고 잘생겼는데, 심하게 말을 더듬는다. 책 속에서 완득이가 민구 삼촌에 대해, 세상 사람들이 키가 작다고 무시하는 아버지를 유일하게 어른으로 대해주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지적으로 좀 부족하고, 말도 많이 더듬어서 사람 취급 못 받고 사는 민구 삼촌이지만, 완득이 눈에는 어떤 어른보다 민구 삼촌이 더 성숙해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민구 삼촌은 완득이 아버지에게 춤을 배우면서 가족같이 함께 살게 되었다.


완득이 책을 처음 열면, 완득이가 교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이 있는데, 교회에서 하는 기도답지 않게 제발 좀 누구 좀 죽여달라는 웃지 못할 기도를 한다. 그 인물이 누구인지 참 궁금했는데... 완득이 담임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그 담임을 "똥주"라고 불렀다. 아이들이 다 있는 앞에서 구호물품인 햇반을 완득이에게 대놓고 가져가라 하고, 구호물품으로 가져온 햇반을 자기 것인 양 완득이에게 당당하게 달라고 하고,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너는 성격은 나쁘고 머리는 좋으니 그런 애들 모이는 서울대에 가라고 하는 둥... 겉으로 뱉어내는 말들이 참 교사라고 하기에 뭔가 석연치가 않은데... 왠지 모르게 끌리고, 그 퉁명스럽고 괴팍한 성격 뒤에 뭔가 더 있을 것 같은 그런 알쏭달쏭한 캐릭터이다. 그 이외에도 여러 주변 인물들이 있지만, 완득이는 완득이네 가족과 괴짜 선생 "똥주"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회적 이슈_장애인, 이주 노동자"

완득이 아버지는 완득이가 열심히 공부해서 작가가 되기를 원하신다. 실제로 완득이가 학교에서 공부를 잘하는 것도, 글쓰기에 탁월한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완득이 아버지는 완득이와 전혀 연관성이 없는 문예창작과 진학과 글쓰기 작가로 완득이를 몰아세운다. 카바레가 문을 닫자, 민구 삼촌과 함께 지하철과 노상에서 물건을 팔겠다고 나갔던 아버지가 단속반에 쫓긴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와 민구 삼촌을 돕기 위해 단속반 사람들과 싸우게 되었는데, 싸움을 잘하는 완득이를 보고 아버지가 완득이에게 손찌검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부디 아들은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기를 바랐는데... 지나치게 잘 싸우는 그래서 동네 양아치나 깡패 같은 아들의 모습을 보고 아버지의 분노가 폭발한 장면이었다. 아버지를 도와주고 매를 맞아야 하는... 완득이로서는 참 억울한 장면이었겠지만... 완득이보다 더 모질고 험한 세상살이를 했던 아버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싶었다. 본인은 자식을 먹여 살리느라 사람들의 조롱과 비웃음 속에서도 춤을 췄지만(실제로 완득이 아버지가 춤추는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왜소증이 있는 아버지가 춤을 추면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곳은 카바레뿐이었다는 현실...) 아들만큼은 자기와는 다른 삶을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랬던 아버지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찡했다. 맞아서 억울한 완득이의 마음도, 완득이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도 모두 다 이해가 되는... 그저 이 두 부자를 둘러싼 사회적 편견과 현실이 원망스러울 뿐...


이야기 초반에 등장하지 않았던 완득이의 엄마가 "똥주"의 입에서 전해진다. 처음에 완득이도 엄마라는 존재를 아예 몰랐기 때문에, "똥주"의 말에 버럭 소리를 지르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더 확실한 증거를 들이밀자(완득이 어렸을 때 사진을 봤다... 교회에 연결된 해외 이주자 모임에서 만났다... 완득이를 보고 싶어 한다... 등) 혼란스러워졌다. 결국 "똥주"가 사랑의 오작교가 되어 완득이는 꿈에라도 생각지 못했던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모자가 상봉을 했는데,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고 아들을 아들이라 부르지 못하는 이 무슨 홍길동전 같은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너무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 존대를 하는 어머니나 어머니라는 호칭대친 저기요를 사용하는 아들이나... 어머니와 아들로 살지 못한 세월의 단절이 두 사람 모두에게 버거웠으리라... 그럼에도 완득이가 한 번도 불러본 적이 없었던 엄마라는 말을 어렵게 입 밖으로 꺼냈던 순간... 그 간의 세월이 무색해질 만큼 두 사람은 새롭게, 엄마와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다.


"10대, 사랑, 꿈"

완득이의 나이가 17세이다 보니, 아무래도 완득이를 포함한 고딩들의 꿈과 사랑도 책 속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쌈꾼인 줄만 알았던 완득이를 보고, 완득이네 반 1등인 윤하가 마음을 내어준다. 여고만 다녀서 잘은 모르겠는데... 남녀 공학에서는 그런 일도 일어나는 건가? 윤하를 성적으로 외설적으로 그린 만화가 완득이네 반에 돌아다니고, 그 만화를 친구들이 한 번 즘은 다 돌려봤다는 정황에 윤하는 큰 수치심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전교 1등인 윤하가 늘 아웃사이더 같아서 눈에 띄지 않았던 완득이에게 속풀이를 하게 되었다. 왠지, 그 외설스런 만화를 보지 않았을 것 같은 느낌(실은 완득이도 봤다. 윤하 앞에서 못 본 척...)... 그래서 자기 속내를 이야기하면 덜 부끄러울 것 같은 느낌... 그것이 계기가 되어 완득이와 윤하가 교회(줄기차게 똥주를 죽여달라고 기도했던 그 교회 ㅋ)에서 신세 한탄을 목적으로 만나게 되었고, 그 이후 서로 좋은 감정이 생겨 서로의 꿈을 응원해주는 관계로 만나게 되었다. 몰래 교회에서 뽀뽀하다가 똥주에게 들키는 장면이 어찌나 풋풋하던지 ㅋㅋㅋㅋㅋ 나중에는 완득이의 킥복싱 트레이너를 자처하며 완득이를 도와주려는 마음이 어찌나 예쁘던지...^^


완득이는 동주를 죽여달라고 기도했던 교회에서 핫산이라는 외국인 이주자를 만나게 되었다. 완득이를 보며 줄기차게 자매님이라고 부르는 ㅋㅋㅋㅋ 뭔가 2프로 부족한 한국어 ㅋㅋㅋㅋ 완득이는 핫산의 소개로 킥복싱을 시작하게 되었다. 무조건 싸움판에서 이기는 게 중요하다는 카바레 삼촌들의 가르침에 따라, 원칙과 방법을 무시하고, 상대를 때려눕혀 이기려고만 하는 완득이를 보며 킥복싱 관장님은 핫산에게 동네 깡패 같은 싸움꾼을 데려왔다고 버럭 화를 내신다. 관장님의 말에... 뭔가 자신이 삼류 인생이 된 것 같은 패배감이 몰려온다. 까짓 거 킥복싱 내가 꼭 잘하고야 말리라!!! 오기와 독기가 생겼다. 그렇게 시작한 킥복싱은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다. 고딩들 중에서 싸움 좀 잘하는 걸로 어쩌면 목에 힘이 잔뜩 들어갔을 수도 있었을 텐데... 전문 운동선수가 되는 일은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완득이가 이 책에서 킥복싱으로 꿈을 이루었다는... 동화 같은 마무리는 없었다. 연습 시합에서 계속 TKO(Technical Knockout)를 당하는 현실 속 완득이만 있을 뿐... 그럼에도 생전 처음 정복해야 하는 목표 앞에서 자신을 단련하며 꿈을 찾아가는 완득이를 보며 기특하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꼭 챔피언이 아니면 어떤가... 도전할 수 있어서 10대가 아닌가?



"책을 읽고 난 후에..."

동주 선생님은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해외 이주 노동자가 아버지의 사업체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며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고,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카바레가 문을 닫고, 살길이 막막하여 각 지역 마을 장을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는 완득이 아버지에게 똥주 선생은 자신의 전재산 털어서 산 교회 건물을 춤 교습소로 바꾸고, 그곳에서 완득이 아버지와 민구 삼촌이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건전하게 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제안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동주 선생의 도움으로 춤을 가르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 단번에 달라질 수는 없다. 시장에 가면 완득이 어머니를 보는 시선을 여전하다. 지나치게 현실적이라 끌리고, 현실을 우울하게 그려내지 않아 끌리고, 편견 없이 함께 살 수 있는 희망을 볼 수 있어서 끌리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과 삶의 이야기가 나와는 무관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고리로 연결된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이웃이라는 큰 고리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사회 구성원들 안에 단단하게 형성되어 있는 편견을 깨고,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볼 수 있는 것은 큰 용기가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며 아들이 물어본다. 엄마, 카바레가 뭐예요? 시대적인 언어이기도 하지만... 나와 내 아이가 사는 계층(?)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환경이기도 해서 물었을 것이다. 열심히 설명했는데, 왠지 아들이 잘 알아듣지 못한 듯했다. 그 장소를 설명하는 말은 알아들었을 수는 있지만 그 장소에 얽힌 복잡다단한 정서와 문화는 다 읽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영화 완득이가 그런 면에서는 좋았다. 백 마디 말로 카바레를 설명하는 것보다, 영화 속 한 장면이 훨씬 중딩 아들의 이해를 빠르게 도와주었다)


내 아들이, 완득이 같은 다문화 가정의 아이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생계를 위해 노상에서 물건을 팔고, 단속반에 쫓겨다니는 이웃들을 긍휼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겉으로는 거칠어 보이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진짜 어른 같은 "똥주"를 존경할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모인 내가, 내 아들의 눈을 가리지 않고, 편견 없이 세상과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성숙한 어른이 되었으면 좋겠다. 10대 청소년을 키우는 부모님과 세상 시름과 고민 한 아름 짊어지고 사는 중딩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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