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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ifferent way Jun 24. 2020

죽음도 결국 우리 생의 한 부분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서평


몇 해 전에, 교회에서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가 있었다. 강사로 오신 분은... 성함이 잘 기억나지 않는데...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하시면서 오랫동안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보셨다고 했다. 생과 사에서... 사로 넘어가는 지점에 있었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를 자신의 경험과 성경적 근거를 더해서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래전이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졌지만 그래도 분명히 기억나는 건, 과거 우리 어머니, 할머니 세대들처럼 죽음을 금기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죽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만 해도 어른들은 그런 소리 하지 말라며 손사례를 치셨던 기억이 나에게도 생생하다. 중요한 일 앞두고는 부정 탄다며 지인들 장례식에도 가지 말라고 하셨던 것도 굉장히 보편적인 일이었다. 죽음이라는 말을 꺼내면 마치, 죽음의 신이나 저승사자가 와서 우리의 생을 재촉이라도 하는 걸까... 입 밖으로 죽음을 일컫는 것 자체가 꺼려지는 문화 속에서 자라왔다.


그러나 그 세미나 강사는 급작스럽고 준비되지 못한 죽음은 남은 가족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나는 죽지만 남게 될 가족들을 위해 죽음을 미리 준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본인은 유서를 써서, 가슴에 늘 품고 다닌다고 했다. 혹시 익사로 죽을 가능성도 염두해 두어, 유서를 코팅해서 양복 주머니 안쪽에 넣어두었다고... 아침 출근길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늘 오늘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인사를 건네고, 저녁에 돌아와서 하나님이 생을 허락하시면 그 생에 대해서 하나님과 가족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하시면서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죽음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 죽음을 피해 갈 수도 없기에, 그렇다면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로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혜신 박사의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책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그 세미나가 생각이 났다. 지병으로 의사가 삶의 기한을 정해주었다면 자연스럽게 죽음을 생각하고, 죽고 난 이후에 남겨질 가족들을 염려하고, 주변 정리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겠지만... 우리 모두에게 다 그런 생이 허락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때로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원치 않겠지만...ㅜㅜ) 정혜신 박사의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는 그렇다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면서 나는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내 주변에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삶이 갈기갈기 찢어진 이들을 어떻게 보듬어야 할 것인가? 나에게 결국 죽음이 정해진 것이라면(모든 사람은 결국 언젠가 죽게 되기 마련...) 내가 살아있는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하는 책이다.


폭넓은 관점에서의 사회안전망을 생각합니다. 내 가족이나 친구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혹은 내게 그런 일이 생겼을 때 그 고통을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내용 중 일부>


본래 사회안전망이란 사회 보험이나 공공부조처럼 국민을 실업, 빈곤, 재해 같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우리 삶의 물리적 토대가 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말한다. 아무래도 사회 안전망은 선진국일수록, 안전에 대해 오래 고민하고 재해를 많이 겪어온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일수록, 촘촘히 잘 갖출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 뉴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외국 가수가 콘서트를 한 적이 있었는데... 광팬이었던 내 친구가 그 당시 10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티켓을 구입하고(지금도 10만 원이면 후덜덜한 돈이구만... ㅠ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렸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나는 전혀 관심이 없었지만, 외국가수가 내한하여 콘서트를 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이어서 그랬는지... 콘서트 현장을 취재한 뉴스들이 많았는데, 문제는 어느 회사에서 그 콘서트를 기획한 것인지... 정말 좌석도 없는 티켓을 팔아, 좌석과 좌석 사이 계단에도 아이들을 빼곡히 앉혔고, 안전 요원 숫자가 관객 숫자에 비해 적었던지... 공연장을 빠져나올 때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나오려다가 관객들이 밟히고 깔리고 하는 등의 난리가 났었다는 뉴스 보도가 있었다.


다음 등교일에 그 친구가 너무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 무사했고, 그 난리통인 콘서트 현장을 다시 들으면서 돈도 돈이지만(친구는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 제대로 된 좌석이 없다는 것에 분개했다.) 열광하는 소녀 팬들의 모습은 불 보듯 뻔한 일인데... 공연장에 최대 인원 기준을 넘겨서 입장시켰다면 사고는 예정된 일일텐데... 어떻게 그런 공연을 기획할 수 있는 것인지... 당시 중딩인 나도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는 정도인데... 결국 안전보다는 머릿수마다 매겨진 티켓값이 우선순위였음을 증명한 콘서트였다. 남편 유학으로 미국에 살 때, 남편이 한인 교포들로 구성된 공연팀의 촬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 대관을 할 때부터 정확한 관객수를 파악하고, 그보다 단 1명이 많아도 대관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을 보면서 안전에 대한 온도의 차이가 이렇게나 다른 것인가... 싶었다.


그러나 아무리 선진국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사회 안전망을 잘 갖추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죽음을 거스를 수 없고, 우리 삶에서 죽음을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정혜신 박사는 이 책에서 물리적 죽음이 정서적 죽음(누군가의 죽음이 완전히 잊히는 것)으로 이어질 때 죽음은 그 모습을 가장 생생하게 드러낸다고 했다.


이제 그만 잊어, 죽은 사람은 죽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울고 슬퍼할 거야...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남겨진 이를 위로한다고... 사람들이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들 하는 말이다. 하나 더 덧붙인다면... 이제 남은 oo이도 생각해야지... 이렇게 넋 놓고 있으면 oo이는 어떻게 할 거야... 정혜신 박사는 물리적 죽음으로 더는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서 지켜볼 수 없어도 그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하는 정서적 죽음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상실의 고통은 고름으로 덧나거나 남은 사람의 일상을 망가뜨리지 않는다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물리적 죽음으로 슬퍼한다면 그 슬픔 그대로를 수용하고 공감해주며, 그 사랑하는 이를 정서적으로 추억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생각해보면 죽은 이를 잊는 것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 같지만 그건 실상 잊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덮는 것이고, 덮어진 채로 곪고 썩는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살아가는 것 같지만, 그건 물리적으로 숨만 쉬고 사는 것이지 사실 정서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그랬던 것은 아닐까... 아무렇지도 않은 척, 괜찮은 척 있다가 결국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물리적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떠난 사람은 눈물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옵니다. 그래서 눈물을 막으면 목숨처럼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걸어 잠근 문 앞에서 들어오지 못하고 서성이게 됩니다.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어야 내 슬픔을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마음에서 다시 맞이하고 생생하게 기억함으로써 그 사람의 부재로 인한 공포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책 내용 중 일부>


죽은 이를 다시 추억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죽은 이를 추억하다가 살아있는 이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까 봐... 혹은 영영 그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봐... 가 아닐까?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슬픔도 고통도 각자에게 충분한 적정 기준이 있고 그 기준만큼 채워진 이후에는 다시 자연스럽게 삶의 균형을 찾아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아마도 인간을 창조한 조물주가,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인간에게 그 정도 균형감각은 허락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들이 2학년일 때 담임 선생님이 사고사로 생을 마감한 적이 있었다. 부모인 나도 충격적이었지만 내 충격은 뒤로 젖혀두고, 아이가 받을 충격이 염려가 되어 나를 포함한 반의 학부모들이 그 선생님의 죽음을 어디까지 아이들이 받아들이게 할 것이냐가 가장 큰 이슈였다. 여러 가지 논의가 있었고,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과 동료 교사들이 함께 모여 추모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서 국화를 헌화하고, 돌아가신 선생님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었다. 30대 젊은 아들을 잃은 부모님은, 자기 아들의 죽음을 이렇게 슬퍼해주어서 고맙다고... 9살 꼬맹이들을 일일이 안아주시면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추모 예배 끝자락에 돌아가신 선생님의 살아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마침 영상을 제작하는 일을 하고 있었던 남편이 추모 영상을 제작했고, 나와 남편은 영상이 제작되는 과정 중에 아들 몰래 수없이 많이 울었다. 추모예배 당일... 영상이 나오고... 예배 중간중간 훌쩍이던 아이들이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들 눈치를 보느라 숨죽여 울고 있었던 학부모들까지 영상 속에서 생생하게 웃고 있었던 선생님의 모습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나오자, 이 죽음이 현실인 것이 너무도 아파서... 다들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부모와 따로 떨어져 앉아 있었던 아이들이 통곡하기 시작하면서, 아이들은 부모님 옆으로 자리를 옮겼고 나도 아들을 품에 안은 채로 슬픔이 잦아들 때까지 함께 울었다.


나는... 아들이 그 선생님의 죽음을 잊지 않기를 바랐다. 그 선생님의 따뜻한 미소와 아름다운 추억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물리적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았지만 생전에 그 선생님과 함께 한 추억은 잊히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에, 장례식 이후에도 종종 아들과 함께 선생님과의 기억이나 추억을 간간히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삼키키도 했지만, 사랑했던 사람을 함께 떠올릴 수 있는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아이에게는 사랑하는 선생님이었고, 나에게는 함께 근무한 동료였기에 나는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작년에 누군가가 또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아들에게 자연스럽게 2학년 때 돌아가신 선생님의 이야기를 꺼냈다. 아들은... 그 선생님이 그림을 잘 그리셨다는 것, 그래서 자기 일기에 늘 그림과 함께 코멘트를 달아주셨던 것, 모르는 것을 질문했을 때 따뜻하게 대답해주셨다는 것 등... 6년이 지난 후에도 선생님의 따뜻함을 기억하고 있었다. 6년이 지나 중학생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나는 아들에게 그 선생님의 죽음의 사실(이유)을 알려주었다. 아... 그랬구나... 잠깐 멈춤의 시간이 있었고, 이내 말이 사라졌다. "네가 좀 크면 언젠가는 이야기해주려고 했어.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엄마는 지금이 그 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해줬는데... 괜찮아?"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말이 괜찮아서가 아니라 아이의 표정이 괜찮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안심이 되었다. 우리가 함께 슬퍼하고 함께 추억했던 시간이 우리 모두에게 그 선생님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키우게 했던 것은 아닐까...


슬픔이 넘쳐나는 경험에서 슬픔을 떼어내고 나면 뭐가 남나요? 감정을 배제했으니 정확한 사실 관계만 남는 걸까요? 아니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만 떼어가라는 주문이 불가능하듯 슬픔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슬픔을 소거하면 그 상황을 구성하던 사실의 절반 이상이 사라집니다. 상황에 묻어있는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 채 그 현실을 정확하게 감각하는 것을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현실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책 내용 중에서>


이 구절을 읽고 떠오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남편에게 이 구절을 읽어주고 나니... 아... 하는 탄식과 함께 그래서 그랬구나... 나도 남편도 같은 사람을 떠올렸던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보내고 겪었을 그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부모가 갑자기 생을 달리하는 상황은 남겨진 자녀에게 큰 상처와 고통이 되었을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정혜신 박사는 이 책에서 상처를 존중받고 아픔을 깊이 공감받는 과정을 통해 상처 입은 사람은 다른 상처의 치유자가 될 수도 있고, 공감받지 못해 덧난 상처를 품고 사는 사람은 그 상처가 칼이 되어 다른 사람을 찌르고 다니는 괴물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아무리 결혼하지 않았어도, 아무리 자식을 낳아본 경험이 없었어도 어떻게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1도 이해하지 못할 수가 있느냐고... 세월호 사건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전 국민의 비난과 질타를 받았다.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했던 것은 그 사람이 미혼이어서도, 자식이 없어서도 아니었다. 자신의 상처를 보이지 않게 꽁꽁 싸매어 누구와도 그 아픔과 슬픔을 나누지 않았고, 그것이 상처가 아닌 듯 오랜 세월 동안 스스로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살아왔던 그 아집이 결국은 스스로를 괴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조실부모했다고 해서 다 그렇게 괴물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세월호 가족들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다. 이 사람들의 분노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이 사람들의 분노와 투쟁이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의원이라는 공인들이 TV에 나와서 하는 말들이 참...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울 때가 있다. 부모가 생살을 찢는 고통으로 아이를 낳았고, 자기 목숨보다 더 귀하게 그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왜 아이가 죽었는지 그 이유조차 알지 못한 채로 근 6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그런데... 그만하라니... 자식 앞에서 시체팔이를 한다는 비아냥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 두껍을 쓴 괴물이 아닌가 싶다. 저자는 끝까지 분노할 수 있으면 마침내 가해자를 용서하는 일이 쉬워진다고 했다. 정당한 분노를 막으면서 가해자를 용서하라고 강요하는 것인 이미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무너진 사람을 다시 짓밟는 일이라고 했다. 밀양 영화 속 전도연이 연기한 자식 잃은 엄마가, 세월호 가족들이 사람들의 폭력에 짓밟혔다. 자식을 잃은 부모가 분노하는 일은 정당한 분노다. 이 분노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고, 분노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할 수 없다. 그 슬픔과 고통의 크기를 감히 가늠할 수조차 없는데... 누가 이 분노를 막아선단 말인가... 이들의 분노와 고통, 슬픔 앞에...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 죄스러울 뿐이다.


죽음에 대한 대비는 충분히 사랑하고 충분히 사랑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없다. 그것이 죽음에 대한 유일한 대비책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책 내용 중 일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국가적 재난 현장에, 고통과 슬픔에 허덕이는 피해자들 속에서... 정혜신 박사와 남편 이명신 박사가 깨닫게 된 사실이라고 했다. 죽음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비는... 생에서 충분히 사랑하고 사랑받았다는 확신이 들도록 살아가는 것. 이들 부부는 보험도 저축도 없다고 했다. 미래에 대한 어떤 대비가 자신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나의 생을 사랑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부부가 함께 그런 삶을 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쌍용자동차 해고 가족, 세월호 가족을 만나면서 그 수많은 죽음들을 한치도 외면하지 않고 부부가 함께 깊이 공유하고 이야기했던 경험이 자신의 죽음이나 남편의 죽음(실제로 이명신 박사가 심정지가 온 순간에...)을 마주하고도 혼란에 빠지지 않게 만든 것 같다고 고백했다. 이미 떠나간 가족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고, 후회하고,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며 정혜신 박사는 스스로 나에게 주어진 이 생을, 나와 함께 하는 가족을 죽도록 사랑하는 것 외에는 죽음에 대한 다른 대비는 없구나... 깨달았을 것이다.


당신이 옮다,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두 권의 책을 읽고 이들 부부의 삶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면서도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을 놓치지 않고 삶의 경주를 이어가는 이들 부부의 삶이 존경스럽다. 존경이라는 말로는 그 마음을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죽음을 위해 그 어떤 대단한 준비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을 사랑하고, 내 주변에 사랑하는 이들을 더 뜨겁게 후회 없이 사랑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더 쏟아낼 수 없어서... 이 정도에서 서평을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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