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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ifferent way Jun 24. 2020

당신이 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은
언제나 옳다

적정 심리학 당신이 옳다 서평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가족들과 함께, 상처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다정한 전사 "정혜신" 박사의 책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서 봤다.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며 남편이 구입했는데, 남편은 정작 얼마 읽지도 못하고, 소박한 책모임 멤버들과 내가 먼저 읽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어느 집에나 가면, 꽂혀있는 책이 있다. 하정훈 박사의 삐뽀삐뽀 119. 우리 집에도 있었는데 몇 년 전에 아이를 임신한 학교 선생님께 선물로 드렸다. 이제는 그 책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아이들이 크고 단단하게 여물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플 때, 병원을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병원을 가지 못한다면 집에서 어떤 처치를 해야 하나... 초보 엄마가 알아야 할 갖가지 질병의 유형과 처치 방법에 대해 자세히 나와 있는 책이다. 두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 까지는, 정말 가까운데 두고, 수시로 들쳐보며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추천한 이명신 박사(정혜신 박사의 남편)는 독자들에게 [당신이 옳다]가 삐뽀삐뽀 119처럼 상비 치유 지침서가 될 것이라고 했다. 필요할 때마다 펼쳐 읽고, 되새김질하면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서, 심리적으로 압박을 받는 일이 두어 차례 있었는데... 참 신기하게, 감정이 폭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나를 압박하는 사람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읽는 동안... 적어도 나에게는 마법 같은 책이었다. 책을 함께 읽었던 책모임의 지인들은... 펜을 들고 줄을 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모든 구절들이 주옥같았고, 매번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그래서 그랬구나가 절로 나오는 문장들이 넘쳐났다. 줄을 긋기 시작하면 책 전체를 다 줄을 그어야 할 판이라며, 읽는 것 자체가 내적 치유의 시작이라며 극찬을 했다.


내 가치관이나 신념, 견해라는 것은 알고 보면 내 부모의 가치관이나 책에서 본 신념, 내 스승의 견해일 수 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오로지 나다. 그래서 감정이 소거된 존재는 내가 아니다. 희로애락이 차단된 삶이란 이미 나에게서 많이 멀어진 삶이다. "당신이 옳다" 중에서...


누구에게나 감정이 있고, 그 순간 그 사람이 느꼈던 그 감정은 언제나 옳다. 그 감정 뒤에 나타나는 행동들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지만, 내가 느꼈던 감정은 그 어느 누구에게서도 평가되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나 자신인 것이다. 정혜신 박사는 내 느낌이나 감정은 내 존재로 들어가는 문이라고 했다. 느낌을 통해 사람은 진솔한 자기 존재를 만날 수 있으며 자기 존재에 밀착할 수 있다고 했다. 느낌에 민감해지면 액세서리나 스펙 차원의 '나'가 아니라 존재 차원의 '나'를 수월하게 만날 수 있다고 했다. 때로 나 자신조차도 나를 둘러싼 내 환경이 나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내 마음이 바닥을 치고 고꾸라지는 순간에도, 내 감정은 철저하게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진짜 나를 속이며 살 때 내 존재가 소멸되는 것이다. 내 존재가 소멸되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이 생을 마감했던 사람들이 2019년에도 얼마나 많았던가...


존재가 소멸되는 느낌이 들 때 가장 빠르게 지기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 폭력이다. 폭력은 자기 존재감을 극대화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누군가에게 폭력적인 존재가 되는 순간 사람은 상대의 극단적인 두려움 속에서 자기 존재감이 폭발적으로 증폭되는 걸 느낀다. "당신이 옳다" 중에서...


이 부분을 읽으면서 책모임 멤버들은 저마다 가족 중 누군가를 떠올렸다. 나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모두들 그 폭력적인 누군가를 증오하기도 하고, 떠올릴 때마다 치를 떨기도 하고, 내 기억 속에서 덜어내거나 숭덩 잘라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 폭력을 휘두른 누군가가 그 사람 자체로 이해가 되었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폭력성을 드러냈구나... 그 폭력적인 행동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그 사람을 폭력으로 몰고 갔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여전히 그 기억은 끔찍하고, 떠올릴 때마다 덜 아무튼 상처가 나를 아프게 하지만, 그래도 이 책 덕분에 그 사람을 마냥 증오만 하지는 않게 되었다.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존재에 대한 이해는 나를 성숙하게 만든다.


한 존재가 또 다른 존재가 처한 상황과 상처에 대해 알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 존재 자체에 대해 갖게 되는 통합적 정서와 사려 깊은 이해의 어울림이 공감이다. 그러므로 공감은 타고난 감각이나 능력이 아니다. 학습이 필요한 일이다. "당신이 옳다" 중에서...


저자에 의하면 적정 심리학의 핵심은 "공감"이다. 그러나 정혜신 박사는 감정적 반응, 그 자체가 공감은 아니라고 했다. 공감 능력이 타고나는 것은 더더욱 아니며 학습에 의해 타인의 감정을 더 잘 공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공감은 상처를 더 드러내게 만들 수 있도록 상처 위에 녹아드는 연고이며, 정확하고 집중력 있는 공감은 문제 해결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책임지는 강력한 치유제라고 했다. 다만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공감이 주는 유익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든지 타인을 공감해 야한다 된다는 부담은 오히려 공감자의 내적 건강을 해 칠 수 있다고 했다. 심리적 갑을 관계에서 공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며, 그 갑을 관계가 설령 부모라 할지라도 내가 살기 위해서는 그 관계를 끊어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 의하면 자신의 경계가 뚫려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왜 아픈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경계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정혜신 박사는 공감을 주고받을 때,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서부터 너인지 경계를 인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너를 공감해야 할 순간인지, 내가 먼저 공감을 받아야 하는 건지를 잘 알아야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감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공감이라는 것이, 철저하게 상대 중심적으로 나는 너덜너덜해지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해야 하는 치료약이 아니라, 내가 안전한 지에 대한 자각에서부터 공감이 시작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책을 읽은 지 한 달... 적어놓은 메모들을 보니, 다시금 그때 회복되었던 기억들이 함께 살아난다. 정말 두고두고 되새김질을 하며 나를 치유하는 책이다. 처음 읽었던 그때와는 다르게, 다른 문장들... 다른 구절들에 다시금 눈길이 간다. 아마 처음 책을 읽을 때와는 또 다른 마음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 때문일 것이다. 나를 이해하고 남을 이해할 수 있는 건강한 심리적 CPR을 필요로 하는 모든 이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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