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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different way Jun 24. 2020

일상의 기적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고...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다른 소설들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왜 이 사람이 베스트셀러 작가인지는... 이 책 한 권으로도 충분히 납득이 될 만하다. 너무 따뜻했고, 큰 위로를 받았다. 한 시대를 주름잡는 영웅이나 역사적 위인들이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이웃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서부터 기적이 시작된다. 기적이 내 삶과는 한참 동떨어진, 운이 끗발 나게 좋은 어떤 먼 나라 이웃에게만 일어나는 매우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매 순간 나와 내 이웃의 소소한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우쳐준 책이다.

이야기의 초반부에는 등장인물들이 일본 어느 시대, 어느 마을에서 각각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매우 독립적인 캐릭터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중반부를 넘어서게 되면 책 속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교묘하게 비슷한 시대와 장소(심지어 같은 장소)에서 삶을 공유했던 얽히고설킨 이웃이라는 것이 차츰차츰 드러난다. 소름... 소름... 그래서 한번 책을 잡으면 끝날 때까지 놓칠 수가 없다. 그래서 책 내용에 점점 몰입할수록, 주인공들과 관련된 물건이나 주인공들이 방문했던 장소, 주인공이 스쳐 지나가듯 했던 말 한마디를 그냥저냥 버릴 수가 없다. 그 뒤에 다른 인물들의 사건과 연결시켜주는 고리가 되거나 사건을 해결해주는 실마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환관원이라는 아동복지시설에서 자란 세명의 좀도둑이 오래된 잡화점(폐가 수준)에 숨어들었다가 그 잡화점에 들어오는 고민 상담 편지들의 답장(나름 고민 해결)을 해주면서 시작이 된다. 고민 상담을 해주다 보니... 잡화점에 편지를 두고 가는 사람들이 대략 30-40년 전의 과거의 사람들이라는 점, 나미야 잡화점 안에서는 시간은 바깥의 시간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는 점, 나미야씨처럼 고민에 대한 답장을 써주는 세 명의 좀도둑도 사실은... 고민 상담을 하는 과거의 인물들과 교묘하게 얽혀있다는 점이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서서히 밝혀진다. 결국 나미야 잡화점은 시간을 초월하여 환관원이라는 아동복지시설과 그 주변의 인물들의 삶에 어떤 모양으로든지 깊숙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처음에는 나미야씨가 잡화점 근처에 사는 이웃들의 고민을 상담해주는 듯 하지만 결국에는 이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의 삶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며 함께 살아오고 있었다는 것이 이야기 말미에 드러난다.


나미야 잡화점에 들어오는 고민 상담들은... 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우리네 삶과 많이 닮아있다. 올림픽 선수로서 올림픽 경기에 나가야 할 것이냐 시한부 인생을 사는 애인의 곁을 지킬 것이냐... 크게 재능이 없어 보이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할 것이냐 연로하신 부모님의 생선가게를 물려받을 것이냐... 회사가 엄청난 빚더미에 앉게 되어 야반도주를 하는 부모를 따라갈 것이냐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인생을 시작할 것이냐...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무실에서 다른 직원들 뒤치다꺼리를 하며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살 것이냐 월급을 많이 주는 호스티스로 살며 연로하신 조부모를 모시고 살 것이냐... 우리네 인생에 정답을 찾기가 너무 어렵다는 것을 책 속 인물들이 말해주고 있다.


나미야씨는 잡화점 본연의 임무보다 이웃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상담을 해주는 이 일을 놓칠 수가 없어서 죽는 순간까지 이웃들의 편지에 답장을 해주겠다며 잡화점으로 돌아가는데(병이 들어 아들이 사는 도쿄에서 살다가...) 꿈에서 보았던 믿기지 않은 환상들을 아들에게 이야기해주며(고민상담을 해주었던 사람들의 미래) 자신이 죽은 뒤에 33번째 기일이 되면 나미야 잡화점을 0시부터 동이 트는 새벽까지만 운영한다는 광고를 내달라는 유언을 남긴다. 이 유언은 나미야씨의 아들을 거쳐, 증손자대에 이르러(인터넷 보급이 일반화되는 시기...) 실현이 되고, 30-40년 전에 나미야 잡화점에 고민상담을 했던 과거의 인물들이 성장하여 다시금 나미야 잡화점을 찾게 된다. 기적같이 열린 나미야씨의 상담창구(나미야씨의 33번째 기일)를 통해 인물들의 과거의 삶과 현재의 삶이 오버랩되고, 막막했던 과거의 그 어느 시점을 되돌아보며 현재의 삶을 감사하는 인물들의 삶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수준이 천재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시간과 공간을 교묘하게 교차시키고, 맞물리게 하면서 끊임없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이 사람의 삶은 저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고, 또 저 사람의 삶은 또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내 삶이 결국은 내 이웃들의 삶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나의 선택과 결정이 내 주변을 둘러싼 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는... 삶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듯하다.


그러나 책 속 인물들이 모두 단단하게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낼 수 있도록 힘을 주었던 건... 오랜 시간 동안 한자리를 지키며 잡화점을 운영하며 이웃들의 삶을 면밀하게 살폈던 나미야씨의 넉넉하고 따뜻한 마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도움이 되겠어...라고 말했지만, 편지 속 인물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 정말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밤이 맞도록 고민하고, 고민의 흔적을 편지로 남겼던 나미야씨의 마음이 고민을 상담했던 사람들의 마음과 맞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이 주는 촘촘한 짜임새에 놀라고, 작가가 주는 메시지에 다시 한번 감동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책들도 탐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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