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의 평화
해마다 여름이 되면 늘상 찾는 평창의 한 캠핑장으로 여행을 갔다. 카작에서 잠시 안식월로 온 친구 가정과 함께 간신히 일정을 맞추어 짬을 낸 1박 여행이었다. 텐트를 치는 게 늦어지면서,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고기를 구워 먹고 있는데 옆 사이트에 젊은 청년 한 명이 오더니 식사를 마치면 족구를 한 판 하자고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저런 구성도 쉽지 않은데, 남자 청년 4명이 함께 캠핑을 온 모양이다. 하하… 이런… 우리가 너무 만만해 보였나???? 딱 보기에도 우리 남편들이 40대 아저씨들이라, 20대 청년들 눈에 그래도 한판 붙어보면 이길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었나 보다. 아… 슬프다… 우리에게도 20대 시절이 있었다구!!!
고기를 집어 먹는 남편과 친구 남편의 젓가락 속도가 갑자기 느려진다.
“많이 먹으면 안 되겠는데…”
“몸이 무거워서 뛰기가 어렵겠어.”
“우리 애들 족구는 좀 해봤나?” (중3 아들과 중1 아들)
“걔네들은 학교에서 축구만 해봤을 텐데…”
“금방 가르치면 어케 되지 않을까요?”
세상에… 이게 뭐라고… 갑자기 고기 먹다가 족구 경기를 위한 회의라니… 고기 먹다가 시작된 회의는 흡사 도쿄올림픽에 출전한 국대들의 모양새였다. 무튼, 승부의 세계란 고기 맛도 떨어뜨린다 ㅋㅋㅋ
무튼 중3 아들은 본인은 발로 하는 건 정말! 못한다고 빠진다 했고, 중1 아들은 이렇게 저렇게 꼬셔서(원래 처음 해보는 건 어려운 거다, 그래도 아빠들이 있을 때 족구라는 걸 배워보면 안전하지 않겠냐, 응원은 우리가 목청껏 할 테니 기죽지 마라, 해 보면 또 해볼 만할 수도 있다…) 아빠들 팀에 욱여넣었다. 상대편 청년들도 우리 팀 인원수에 맞추어 3명으로 해주었다. (나중에 초딩 6학년 딸램이 합류해서 4인으로 할 때는, 초딩 딸램은 발과 손을 다 사용할 수 있도록 청년들이 먼저 제안해주었다. 대. 인. 배. 클. 라. 스!!!!)
그런데 우리 팀에 비밀(?) 병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친구 남편! 근 20년을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체육을 가르치며 체육과 함께 살아온 현장감 넘치는 체육 교사다. 음하하하하하… 축구, 농구, 배드민턴… 운동이란 모든 운동에 넘사벽인 친구 남편이 있으니, 사실 크게 걱정이 되지는 않았다. 우리 남편은 세월의 흔적으로 인격의 둘레가 넓어지긴 했으나 과거에 운동으로 한 자락 하던 아저씨였고. 중1인 친구 아들은,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왠간한 운동은 일반인보다 월등히 잘하는 운동 천재였으니… 제아무리 20대 청년들이라 해도, 오합지졸같이 보이는(40대 아저씨 둘, 그중 한 명은 인격이 심히 넉넉함, 난생처음 족구 해보는 족구 꿈나무 중1) 우리 팀을 이기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이 청년들… 하면 할수록 웃기는 청년들이었다. 지면서도 어찌나 좋아하던지… 최선을 다해 경기에 참여했지만, 잘 안돼도 즐길 줄 아는 참 멋진 청년들이었다. 족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운동이었던가… 지켜보다가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4명 중에 족구를 좀 한다는 청년은 2명 정도 있었고, 한 명은 그야말로 입으로 족구를 하는… 허세 대마왕이었다. 그런데 그 허세가 어찌가 웃기고 귀여운지… ㅋㅋㅋ 본인들도 허세 대마왕의 허세에 웃느라 공을 놓치는 것이 아닌가? 놓치고 나서 자기네들끼리도 한바탕 웃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덩달아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한 편의 시트콤 같은 족구를 마치고, 땀을 비처럼 흘린 양쪽 족구팀을 위해 부리나케 시원한 수박을 잘라 대령했다. 수박 한 접시에도 깍듯이 인사를 하고 감사를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요즘 세상에 참 보기 드문 예의 바른 청년들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박 먹고 나서는 농구도 한판 했다. 설렁설렁할 줄 알았는데 40대 아저씨들, 족구를 이기더니 승부욕이 치솟았나… 부상이 염려될 정도로 열심히 하더니만 결국 농구도 오합지졸팀이 이겼다. ㅋㅋㅋㅋ 끝내 비밀병기의 직업은 말해주지 않았다. ㅋㅋㅋ
집을 지었다가 해체하는 캠핑은 적어도 한 3박 4일은 해야 하는데 친구 가정의 일정이 빠듯해서 하루 만에 텐트를 접어야 했다. 그런데 어제 그 청년들… 아무래도 텐트를 처음 처 본 모양이다. 그중 한 명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근데 이거 어떻게 접는 거야?”
아이고… 녀석들… 구엽네 ㅋㅋㅋ 호기롭게 텐트를 빌려와서 치기는 했지만, 접는 일이 만만치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 텐트 다 걷고 나서 도와주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 때 즘(사실 우리도 텐트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캠핑장 관리인이 청년들 사이트에 가서, 분리되지 않은 쓰레기들을 치우시며 한마디 하신다.
“빨리빨리 정리해야지. 또 예약자들이 있어서 얼른 정리해야 돼.”
“아, 네 하는 중이에요.”
쓰레기를 분리하는 관리인을 보고 청년들이
“저희가 할게요. 저희가 하면 돼요. 그냥 두세요.” 했지만
“아니야, 이러다가 다 그냥 분리하지 않고 버리려고. 그러면 안돼. 내가 해야지.”
캠핑 사이트를 찾았던 그간의 젊은 사람들이, 쓰레기를 분리하지 않았던 과거지사가 있었다한들… 지금 눈 앞에 보는 청년들이 꼭 같으리라는 법은 없는데… 왜 처음부터 전제가 청년들이 쓰레기 분리를 안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지? 당사자도 아닌데, 나를 향한 질책처럼 괜시리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겨우 하루 저녁 같이 운동한 사이지만, 그 청년들 그런 청년들 아닌 것 같은데… 관리인 아저씨 좀 말씀이 살짝 경계를 넘으시네… 하는생각이 들었다.
다시 우리 텐트 치느라 정신없는 사이에, 관리인 아저씨가 청년들에게 또 잔소리를 하신다.
“빨리 치워야 돼. 어젯밤에도 늦게까지 시끄럽게 놀아서, 내가 다른 손님들한테 컴플레인 들었잖아. 그래도 내가 아무 말 안 했는데…(어쩌구 저쩌구…)”
음… 어제 친구네 가정과 늦게까지 불멍(캠핑의 백미는 역쉬 불멍)을 했는데, 청년들 수다가 좀 시끄럽기는 했다. 텐트는 아파트 담벼락은 아니니, 사실 소리가 크게 들릴 수 있는데(티비 소리 같은 생활소음도 거의 없는 산속이니 더 크게) 악의가 있다기보다는, 본인들 소리가 어느 정도 크기인지 감이 없는 듯 보였다. (사실 밤늦게 우리 아들들도 큰 소리로 엄마 아빠를 불러서 주의를 주기도 했었다.) 관리인이 와서 따로 주의를 주지 않으니 우리도 따로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분명했던 건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하는 중에, 관리인 아저씨가 청년들에게 와서 주의를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청년들을 배려해서(어쩌다 캠핑 와서 노는데 시끄럽게 떠들 수도 있지) 오시지 않은 것인지, 밤에 관리하기가 귀찮아서 오시지 않은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사실 나는 후자에 무게를 두기는 했다) 전날 밤 소음에 대해 관리인으로서 본인의 역할은 다 하지 않았으면서, 아침에 텐트 철거하는 청년들에게 때 아닌, 잔소리 폭탄을 날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손님들의 컴플레인으로 곤란했던 자신의 불편함을 지금, 이 청년들에게 투영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과 발은 우리 텐트와 짐을 정리하면서도 관리인 아저씨가 청년들에게 또 화를 내는 건 아닌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마냥, 관리인 아저씨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이 곤두섰다. 친구네 큰 딸은 18살, 우리집 큰 아들은 16살, 둘째들은 15살, 13살… 사실, 우리 아이들과 비슷한 나이의 청년들이라 그랬는지… 우리도 모르게, 청년들의 부모가 된 것처럼 마음이 불편해졌다. 유교의 장유유서가 중요하고, 나이가 어리면 어른보다 못한 존재, 혹은 어른에게 속해있는 존재로 생각하는 한국 어른들의 문화가 늘 불편했기 때문에 관리인 아저씨의 태도가 그냥 저냥 곱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도 부모없이 여행이라도 가면, 저런 대우를 받는 건은 아닌가… 부모의 감정이입이 더 많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복잡하던 바로 그 순간에 다시 들리는, 관리인 아저씨의 분노 폭발의 음성이 다시 귀에 꽂힌다. 우이띠…
“빨리빨리 치우라고. 아까도 여러 번 이야기했잖아.”
“아… 저희가 텐트가 처음이라 익숙지 않아서요. 하고 있는 중이에요.”
노는 것도 아닌데… 왜 청년들에게 자꾸 와서 잔소리를 하는지… 그러다가 결국 청년들의 속도(관리인 아저씨의 속도에 맞추지 못한)에 관리인 아저씨의 짜증과 분노가 말도 안되는 모양새로 청년들에게 쏟아졌다.
“아니, 내가 예전에는 선생질했던 사람이야. 여기서 이런 일 할 사람이 아니라고. 빨리 정리하라고 했으면 해야지. 빨리 정리해야 또 소독하고 그러는데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해.”
예의 바르게 대답하던 청년들도 관리인 아저씨의 짜증 폭발에 결국 입을 닫았다. (사실 내가 그 청년들 같으면 말로 따박 따박 아저씨의 불합리성을 따졌을 것 같은데… ㅜㅜ 청년들의 인내심에 박수를… ㅜㅜ)
이게 지금… 뭐 하는 건지… 캠핑장도 원칙적으로는 펜션들처럼 3시에 들어오고 오전 11시까지는 짐을 빼야 핸다. 다만, 펜션들처럼 청소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니까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기는 하다. 우리도 전날 2시에 들어왔고(전 팀들은 보통 오전에 나가니까) 비워주는 것도 보통 12시 이전에만 비워주면 크게 문제가 없긴 하다. 그리고, 옆 사이트 청년들처럼 우리 사이트도 아침 식사가 늦어서, 정리가 전체적으로 늦어지기는 했다. 10시에 아침을 먹는 우리 팀에 와서, 관리인 아저씨가 정중히 아침이 늦었다며 부지런히 정리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시기는 했다. 옆 사이트 청년들은 사실 우리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텐트 정리를 시작했고,. (아침도 먹지 않고 ㅠㅠ) 우리는 늦은 아침을 먹고 정리를 했는데 거의 마지막 정리 시간은 11시 30분 정도로 시간은 비슷했다. 우리도 30분 정도 늦게 정리가 되었는데 우리 사이트에 와서는 아무 말도 안 하시던 관리인 아저씨가 본인의 업에 대한 불만과 분노를 20살 청년들에게 쏟아놓는 모습이 언짢았다. 나이가 어리고 본인보다 약하다고 생각해서, 저런 고압적인 태도로 대하시는 건가? 한 번만 더 청년들에게 뭐라고 하면 나도 참지 말아야지!!! (마치 그 청년들의 보호자가 된 것처럼)했는데, 다행히 관리인 아저씨의 감정 폭발은 그 정도에서 끝이 났다. 어른으로서 마음이 무거웠다. 30분 정도 늦은 정리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저 청년들이 불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예의 없이, 행동한 것도 아닌데… 이 청년들이 아직 어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관리인 아저씨의 감정의 하수구가 된 것 같아 내내 내 마음이 불편했다.
“여보, 쟤네들 짐 넣는 것 좀 도와줘,. 테트리스로 쌓아야 하는데, 아이스박스 다 못 넣겠어. 또 아저씨 와서 뭐라고 하면 어떻게 해.”
“이제 뭐 거의 다 넣은 것 같은데?”
“그래도 좀 가서 도와줄 것 있냐고 물어봐. 트렁크 다 찼는데 아이스박스 나와있잖아.”
내 재촉에 못 이겨 남편과 친구 남편이 가서, 청년들에게 말을 건넨다.
“정리는 다 했어요? 뭐 같이 도와줄까요? 아이스박스를 못 실은 것 같은데…”
관리인 아저씨가 짜증 한바탕 내고 갔어도, 청년들은 해맑해맑하기만 하다.
“다 했어요. 아이스박스는 앞좌석 바닥에 넣으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제, 즐거웠어요. 조심히 올라가요.” 마지막 인사를 건네자… 청년 넷이 약속이나 한 듯이, 차에 타기 전에 모두 90도씩 허리를 굽혀,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인사를 하고 차에 탄다.
어제 족구를 하면서 어떤 관계인지 신상털이(?)를 하다 보니 지금 스무 살 청년들은 초등 동창들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친구 넷이서 캠핑을 온 모양이다. 청년들이 주고받는 대화나 행동에서 서로 한 두해 아는 사이는 아닌 것 같았는데, 내 아들도 아닌데 초등 친구들과 오랜 우정을 쌓고 여름휴가도 함께 온 청년들이 참 기특하고 대견해 보였다.
정리를 마치고, 운전해서 캠핑장 입구를 빠져나가는데, 멀찍이 관리인 아저씨가 보인다. 두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우리가 사는 용인보다 10도가량 기온이 낮아 시원했지만 피서를 목적으로 쉬어가는 여행객들과는 다르게 하루 종일 캠핑 사이트와 펜션을 관리하는 위해 몸을 바지런히 움직여야 하시니, 일이 고되고 힘이 드실 수도 있겠다 싶다. 그래도… 그렇지… 어른인데… 비겁하게 본인보다 어린 청년들에게 본인의 불편한 감정을 쏟아놓다니… 캠핑장 입구에서 관리인 아저씨가 건네는 인사에 나는 고개만 숙이고 아무런 대꾸는 하지 않았다. (운전석에 있는 남편은 인사말도 건넸지만) 나 나름의 소심한 복수랄까…
한두 달 전에 아파트 단지 안에서 오래도록 내 시선을 머물게 했던 아저씨 한분이 계셨다. (캠핑장 관리인 아저씨와 비슷한 연배의…) 내가 사는 아파트는 오르막길이 있는데, 위쪽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엘리베이터의 위치가 좀 생뚱맞긴 한데, 아파트 도서관에서 타면 2-3층 정도의 높이로 올라갈 수 있어서 높은 위치에 있는 아파트로 가는 걸음을 좀 수월하게 해 준다. 간만에 집 근처 스벅을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그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중년의 아저씨 두 분이 함께 타게 되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문 틈새로 어린이용 세발자전거를 끌고 아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부자가 보였다. 같이 탄 아저씨 한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어서 타요.” 했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것이 아닌가? “어, 이게 왜 이러지? 이게 아닌가?” 하면서 옆에 버튼을 눌렀는데 문이 완전히 닫히고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짧은 2-3층을 올라가는 동안에, 버튼을 눌렀던 아저씨는 “아니 열림을 눌렀는데 왜 문이 닫혔지? 밖에 있던 사람들에게 미안해서 어쩌지? 내가 뭘 잘 못 눌렀나?” 하시면서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짐작해보건대… (사실 아저씨의 행동을 눈여겨보고 있기도 했었고) 처음에 열림 버튼을 누르셨는데 잘 안 눌러진 듯 싶고, 그래서 문이 닫히려고 하자 당황한 아저씨가 옆에 버튼(닫힘 버튼)을 열심히 빠르게 누르시면서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힌 상황이 되어버렸다. 의도적인 행동도 아닌데도 어린 아들과 젊은 아빠가 자신 때문에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한 게 못내 마음에 걸리셨는지…”아기 아빠에게 미안해서 어쩌지…”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다들 내려서 각자 갈길을 가는데, 엘리베이터를 못 탄 부자에게 미안해하던 그 아저씨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서 계셨다. 같이 탄 일행이었던 다른 아저씨가 “왜? 안가? 뭐하려고?” 하자, “미안해서, 말이라고 하고 가려고.”하신다.
위쪽 아파트 단지로 걸어 올라가면서 나는 자주 뒤를 돌아보며 엘리베이터 문 앞에 있는 그 아저씨를 확인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래로 내려갔던 엘리베이터가 다시 올라오기를 기다렸다가 자신의 실수로 못 탔던 젊은 아빠에게 사과를 건네시는 듯했다. 멀리 있어서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 수 없지만, 서로의 제스처가 사과를 하고 괜찮다는 모양새 같아 보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자기 갈길로 가는 그 아저씨를 보니 단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따뜻한 인사를 건네며 가시는 것이 아닌가… 근래에 보기 드문 용기 있는,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실수로 누군가가 불편할까 염려되어 갈길을 멈추고 기다렸다가 사과를 하는 그 아저씨의 용기와 마음 씀씀이가 내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다. 진짜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오롯이 나 자체이다. 기쁨도 슬픔도 분노도 미안함도 온전히 내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다양한 감정을 주셨고, 이런 감정들을 통해 나를 돌아보고, 나와 함께 하는 타인들도 돌아보게 만드셨다. 다만 이 감정이 나에게는 정당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내 감정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늘 정당할 수 있는 것인가? 에 대해서는 미지수이다. 캠핑장 관리인 아저씨가, 자신의 일의 무게가 버겁고 힘들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했다면 그 어려운 마음에 대해서는 함께 공감해줄 수 있지만, (아저씨의 감정이 정당할 수 있지만) 타인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분노와 짜증을 쏟아놓은 태도는 정당화될 수 없다. 나보다 약한 대상이 감정의 하수구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에 더 존중해야 하고 살뜰히 살펴야 하는 섬세함과 배려가 우리 어른들에게 더 필요했던 것인데… 평화는 어쩌면, 내 감정을 잘 들여다 보고, 이 감정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어디에서 매듭을 지어야 하는지를 알고 실천하는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자신의 미안한 마음을 용기있게 건냈던 그 날의 아저씨의 모습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