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통합 교육을 그리다 서평
대학 시절, 교양으로 특수 교육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께서 여러분이 학교 현장에 나갔을 때 특수 교육적인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만날 수도 있으니, 이 특수 교육 개론이 여러분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으로 강의를 시작하셨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현장에서 이 수업이 정말 도움이 되겠다는 기대보다는... 교양 선택 중에서 그래도... 교육이 들어간 강의이니 제일 무난하게 쉽게 학점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바람으로 이 강의를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싶었다. 나는 초등 교사가 될 건데,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내가 가르칠 일이 있나? 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특수 학교에서, 특수 교육을 전공한 교사가 가르치겠지... 내가 정말 현장에서 특수 교육이 필요한 학생을 만날 일이 정말 있기는 할까...?라는 마음으로 그 강의를 들었는데... 나는 어느덧 교실에서 장애가 있는 학생을 비장애 학생과 함께 가르치는 통합 학급 담임 14년 차가 되었다.
내가 근무하는 사립학교는 한 학급에 한 명 혹은 두 명씩 통합이 가능한 장애학생이 비장애 학생들과 같은 교실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른바 통합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학교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장애 학생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학기 초에 체육관에 모여서, 시업식 안내 사항을 전달하고 있는데... 갑자기 엄청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보니, 남학생 한 명이 자기 머리를 자기 주먹으로 세게 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 머리를 때리는 것도 아닌데, 너무 세게 때리는 모습을 보니 내가 맞는 것처럼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때리는 시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퍽, 퍽 큰 소리가 나도록 아프게 때리고 있었다. 저렇게 계속 때리게 놔두어도 될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그 학생을 쳐다보는데, 조용히 한 선생님이 그 친구 앞으로 가서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시니... 학생의 자해 행동이 멈춰졌다. 아... 이렇게 놀라운 일이... 신기방기... (교대 막 졸업한 새내기 교사 눈에는 마치 마법 같아 보였다^^)
시업식 전체 모임을 마치고, 교실로 들어와서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복도에서 우당탕 당... 쿠당탕... 물건이 부서지고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화들짝 놀라서, 나가보니 한 남학생이 복도에 있는 파란색 쓰레기통을 던져서 플라스틱 복도 바닥에 깨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이번에는 또 다른 선생님이 그 학생 앞으로 가서 어쩌고저쩌고하시니... 다시 그 소란이 멈춰졌다. 와... 진기 명기... 덩치는 거의 선생님보다 큰 남학생들인데...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셨길래... 갑자기 저렇게 온순한 양들이 된단 말인가...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두 학생 모두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었고, 새롭게 학년이 바뀌면서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불안이 증폭되어 하는 나타나는 행동들이었다. 애써 학생들 앞에 티 내지 않았지만 속으로 긴장했다가 어벤저스 히어로같이 등장하여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는 선생님들의 한방(?)이 참 멋있고 존경스러웠다. 그런데 참 신기했던 것은, 시업식 첫날 이런 소란을 속으로 나만 화들짝 놀랄 뿐... 정작 아이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얘네들은 다 강심장들인가... 어째 이렇게 다들 태연하대...???
모두를 위한 통합 교육을 그리다
이 책은, 나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동료 선생님이 쓰신 책이다. 오랫동안 통합교육을 지원하는 지원실(우리 학교에서는 장애 학생의 통합 교육을 지원하는 시스템_교사, 프로그램, 공간 등_을 통칭하여 지원실이라고 부른다)의 팀장으로서, 통합교육이 왜 우리에게 중요한지, 왜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지향해야 하는지 선생님의 25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쓰신 책이다. 선생님과 함께 근무해왔고, 통합학급의 담임으로 긴 시간, 협력하며 일해왔기 때문에 굳이 책을 읽어보지 않아도 나는 대부분 아는 내용 일 텐데...라는 생각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대부분의 일화나 우리 학교 전반에 걸친 통합교육의 내용은 익숙한 내용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컥거림에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전반적으로 다 알고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이유는 책의 저자인 선생님이 그간 어떤 마음으로 장애 학생들을 가르쳐왔는지... 통합교육을 지원하는 일이 평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이 끈을 놓치지 않고 줄기차게 통합교육을 위해 애쓰신 이유가 무엇인지, 통합교육을 통해 선생님이 꿈꾸시는 일이 무엇인지, 책 속에서 선생님의 청사진을 다시금 확인하면서 정말 그런 사회를 위해 부단히 애쓰셨구나 싶은 마음에, 선생님의 그 진심에 가슴이 먹먹해졌던 것 같다.
처음 학교에 왔던 1999년만 해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긍정적이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는 비교적 안전했지만,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면 장애 학생들과 관련된 각종 사건사고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대중교통 버스를 타고 가다가, 성추행범으로 오인받아 경찰서에 끌려간 일도 종종 있었고,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평범하지 않은 행동은 언제 어디서나 불편한 눈길과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영화 말아톤을 보다가, 극중 주인공이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는 순간에 자기를 두고, 엄마가 늘 했던 말..."우리 아이는 장애가 있어요."라는 말을 따라 말하는 장면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교실에서 해맑게 생활했던 우리 아이들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면 저런 상황을 마주하게 되겠구나 싶어서 영화 속 장면들이 쉽게 지나쳐지지가 않았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감사하게도 사회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내가 버스 승객들의 시선을 안타까워하고 있던 그때,
내 뒷자리에 앉은 고등학생 두 명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냥 놔두면 되는데... 저 사람 지금 '대중교육 이용하기'
연습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 학생들 말이 맞다. 청년은 그동안 혼자 버스 타기 연습을 많이 했을 것이다.
지금은 독립적으로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모두를 위한 통합 교육을 그리다 중에서...
버스에 오른 자폐성 장애 청년을 보고, 어른들은 장애인=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다가 실패(비난하는 것보다 그래도 도움을 주려고 시도하는 편이 백 번은 낫지만) 했다. 그런데 세대가 다른 고등학생들이 자폐성 장애가 있는 청년을 보고,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통합교육의 힘이다!!! 학교에서 장애 특성 이해 교육을 이미 받았던 고등학생들은 자폐성 장애의 특징, 그리고 자폐성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 적응을 위해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를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이 묘사한 이 장면을 보고, 와... 정말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구나 싶어서 너무 마음이 뿌듯했다.
장애인을 보고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가? 동정심은 누군가가 나보다 못한 사람으로 여기는 데서 싹튼다. 장애인을 비장애인보다 열등하다고 보고 불쌍하게 혹은 특이하게 여기는 것을 비장애 중심주의(ableism)라고 한다. 비장애 중심주의 관점에서는 장애가 곧 결함이므로 장애인을 열등하다고 여기게 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장애인을 무조건적으로 경멸하거나 비난하는 시선보다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라는 마음가짐이 훨씬 더 바람직하지만, 도움을 줘야 한다는 생각의 기초와 뿌리가 열등하다, 혹은 불쌍하다 라면 그것 또한 장애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책의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혹은 '장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열등하다, 기능적으로 결함이 있다, 그래서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주어야 한다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고 정의했다
장애인을 거리감 있게 바라보거나 비장애인과 구분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장애인 주차장'이나 '장애인 화장실' 등은 특별한 지원이 필요한 사람을 판별하고 적절하게 지워하기 위해서 필요한 용어이다.
교실에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있지만, 아무도 그 친구를 장애가 있는 학생으로 구분 짓지 않는다. 특수 교육을 전공한 지원실 선생님들이 가끔 개별 수업을 위해(장애 특성에 맞는) 그 친구를 교실에서 지원실로 데려가는 일이 있지만, 아무도 그 친구를 지원실 소속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 친구는 나와 같은 우리 반 친구이다. 장애가 있기 때문에 장애적 특성을 이해하고, 때로 도움을 필요로 하지만, 비장애 학생이라고 해서 다른 친구들과 교사의 도움이 언제든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것 자체가 장애를 구분 짓지는 않는다. 통합교육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장애가 있는 학생 때문에 비장애 학생들이 큰 불편함을 겪거나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책의 저자 또한 오랜 시간의 통합 교육을 통해서 비장애 학생들이 장애학생과 함께 생활하면서 얻는 유익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장애 학생과 함께 생활하고 함께 하는 기술을 배우고 터득하면서
비장애 학생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능력을 키운다.
그 과정에서 자존감이 높아지고 정서와 감정이 풍부해진다.
누군가를 도와주면서 자기 실력 역시 향상되는 경험을 한다.
성장은 물론 성숙이라는 결과까지 덤으로 얻는다.
나는 학교 현장에서 수도 없이 이런 장면을 목격했다. 함께함이 유익이요 기쁨인 것을 온몸으로 경험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익숙해질 때까지 당연히 버퍼링이 있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오히려 교사보다도 더 장애 특성을 잘 이해하고(또래들의 눈높이가 참 정확하고 무섭다) 친구로서 어떻게 장애학생의 인격을 존중하면서도 필요 적절하게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 웬만한 교사들보다 훨씬 더 전문가가 된다.
우리 반 자폐성 장애 친구는, 곰돌이와 꽃을 사랑하고,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예뻐요를 매일 말하는 친구이다. 학기 초에 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가는 날에는, 하루 수십 번 선생님 예뻐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수업 시간에는 수업 방해가 되기 때문에 주의를 주지만 쉬는 시간에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선생님 예뻐요를 들을 수 있다. 자존감이 팍팍 높아진다. 언젠가 한번, 곰돌이 자수가 있는 재킷을 입고 갔는데... 앞주머니에 너무 작게 수놓아져 있어서 사실, 내 옷에 그런 자수가 있는지조차 나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친구가 등교하자마자 나를 보고 인사하더니 첫마디가, "선생님 옷에 곰돌이 너무 예뻐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 나서 우리 반 아이들이 다 달려들어... "어디 어디? 선생님 옷 어디에 곰돌이가 있어?"라고 매의 눈으로 내 옷에서 곰돌이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찾은 곰돌이를 보고 비장애 친구들이 보이는 반응은... "와!!! oo 완전 눈썰미 좋다!!! 천재 천재!!! 나는 발견하지 못했는데..." 혹은..."선생님 oo가 선생님 진짜 좋아하나 봐요. 우리는 잘 못 찾았는데 한 번에 곰돌이를 찾았어요. 와... 부럽다... 우린 교복이라 곰돌이 옷 못 입고 오는데..."
사실 oo가 곰돌이를 쉽게 찾은 이유는 자폐적 성향 때문이다. 꽃과 곰돌이에 집착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보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어른은 oo가 자폐성 장애가 있기 때문에 꽃과 곰돌이를 잘 찾는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oo가 가지고 있는 그 능력(?)을 높게 평가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해 준다. 자폐적 특성도 그 아이의 장점으로 여겨준다. 이것이 바로 통합교육의 힘이다!!!
장애학생과 함께 공부하고 지내온 비장애학생은
사회에 나가서도 많은 장애인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사업체를 연다면 장애인을 고용할 것이고,
건물을 짓거나 시설을 운영한다면 장애인이 불편하지 않도록 배려할 것이다.
장애 학생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하며든든한 동행자의 역할을 할 것이다.
코로나 이전, 학생들을 데리고 현장학습을 가면 학교에서와는 다른 불편한 상황들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 학교는 약 70-80여 명의 장애학생이 있기 때문에(유치원부터 중학교까지 한 반에 한두 명) 처음부터 장애학생들을 고려하여 건물을 디자인했다. 학교의 구석구석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가 있고 건물 안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 그런데 학교 밖은 좀 다르다.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곳곳에 경사로 없이 계단만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턱이 있어서 휠체어 통행이 불가한 곳도 많이 있다. 의례 그런 상황이 되면 교사들이 장애학생을 업거나, 휠체어 상태로 들어서 옮기거나 하는데 그때마다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불만들이 있다.
"선생님, 왜 여기에는 계단만 있어요? 이러면 oo가 다닐 수가 없잖아요. 당연히 경사로가 있어야죠."
"아니, 이런 공공시설에 장애인을 위한 이런 배려가 없다는 게 말이 돼요? 너무 이상하잖아요."
장애가 있는 친구와 오랫동안 함께 생활한, 비장애 학생들의 세계에는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에 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이미 들어와 있다. 장애가 있는 친구들의 이동권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에 진심으로 분노한다. 나는 의롭게 분노하는 학생들을 통해 세상이 변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TV에서 가끔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뉴스가 나온다. 투표를 해야 하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는 2층에 투표소가 마련되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투표권을 보장해달라는 시위를 하는 모습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TV 속 장애인이 나와 상관없는 타자라고 생각하면, 그저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들겠지만, 그 장애인이 내 친구라고 하면 단순히 안타까워하는 마음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내 친구의 편리한 이동권, 소중한 투표권을 위해 함께 학교에서 생활했던 비장애 친구들의 연대와 움직임이 시작될 것이다.
책의 저자는, 이 통합 교육이 결국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날을 위해, 통합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고 또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디고 느렸지만 분명 지난 20년 동안 장애인에 대한 시선은 달라졌고, 지금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여전히 특수 학교 설립을 위해 장애가 있는 자녀들의 부모가 무릎까지 꿇어야 하는 현실에 목이 메지만, 그래도 장애인과 함께 삶을 공유한 이들을 통해 세상은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중이다.
가끔 교실에서, 장애가 있는 친구가 자신의 베프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제 교사 경력 14년 차... 내 아이들을 위해 8년 휴직하기는 했지만, 이 학교에 몸담은지 20년이 넘었다. 그 말이 진심인지, 그냥저냥 하는 말인지, 혹은 교사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말인지 정도는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교사이지만, 나도 가끔... 장애가 있는 학생과 장애가 없는 학생이 정말 친구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다. (바람직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가끔 장애가 있는 친구를 동생 대하듯 대하는 친구들도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 나는 실제로 장애가 있는 친구들과 베프가 된 학생들을 종종 발견한다. 장애가 그 관계 안에서는 큰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 장애를 의식하지 않고 농담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생일에는 진심이 담긴 편지를 건네준다. 장애적 특성을, 그 친구가 가진 멋진 능력이라고 추켜 세워준다. 눈빛과 표정이, 그들의 대화가... 그 친구가 자신의 베프임을 증명해 준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내 제자들 앞에서 부끄럽다. 저 아이들만큼... 나는 장애가 있는 학생을 인간 대 인간으로 보지 못할 때가 많이 있다. 아이보다는 장애적 특성을 먼저 고려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기도 하고, 나는 어린 시절 장애가 있는 학생과 친구로 지낸 경험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그런 경험이 없어서, 나는 오히려 장애가 있는 학생을 인격 대 인격으로 대하기에 부족하고 서툰 모습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 제자들에게는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다.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변화할 수만 있다면 앞으로도 이 교육 현장에서 더더욱 최선을 다하고 싶다.
모두를 위한 통합교육을 그리다 책을 읽으며 나도 함께 꿈꾸어 본다. 학교 안 통합 교육이 세상 속 통합교육이 되는 그날을...
송명숙 선생님~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현실이 녹록지 않지만 이 책을 통해 보여주신 그런 세상을 함께 꿈꾸어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