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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Oct 19. 2020

한 해의 끝자락, 다시 순천만에서

세계의 정원이자 생태수도, 순천

  흔히 나이와 시간은 비례한다고 한다. 어려서는 시간의 속도가 더디게 흐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시간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속도가 바뀌는 건 아니고 그렇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간은 눈이 하나라고 한다. 결코 뒤돌아보는 법 없이 앞만 보고 달린다는 것이다. 그런 시간이 빛의 속도로 흘러 다시 저물녘이 되었다. 문득 착잡해지는 마음, 어디서 위로받을까?


세계의 정원이 마음을 덥히다

  한 해가 저무는 게 못내 섭섭한 이들이 있다면 순천만 대대포구에 가보라 권하고 싶다. 왜 그렇지 않은가. 외롭고 쓸쓸할 때 친구를 만나면 좀 위로가 되지 않던가. 친구네 집에 방문해 아름답고 포근한 정원에서 정담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이보다 큰 위로도 없을 것이 아닌가. 

  2013년 순천만 대대포구에선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렸다. 같은 해 10월 중순 박람회는 종료되었지만 기왕에 조성된 정원은 학생 체험학습장으로 고스란히 남아 여행객들을 반겨주고 있다. 2009년 9월 AIPH(국제원예생산자협회)의 승인을 받아 열린 박람회에는 세계 23개국에서 참가하여 무려 83개의 정원을 구성했는데, 공식 행사 종료 후에도 다양한 볼거리와 따뜻한 분위기로 관람객들을 맞아 마음을 덥혀준다. 서둘러 달려가 안길 만하지 않은가.

  정원박람회가 아니더라도 순천만은 위로가 된다. 대대포구 앞을 흐르는 동천을 가로지른 나무다리를 건너 갈대밭 탐방로를 지나면 소나무가 무성한 낮은 언덕이 웅크리고 있다. 나무계단으로 된 등산로를 올라 20여분 정도 능선을 타고 걸으면 갑자기 사방이 탁 트인 용산전망대가 나타난다.


황홀한 일몰이 마음의 때를 씻다

  용산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은 천하제일 경이다. 끝도 없이 펼쳐진 갯벌, 그 사이로 역(逆) S자를 그리며 유연하게 흐르는 수로, 광활한 갯벌 위에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군락을 이룬 갈대, 그리고 아쉽게 저물어가는 한 해를 보내면서, 다시 새로운 희망을 기약하게 만드는 황홀한 일몰. 도시에서 묻은 마음의 때와 스트레스까지 깨끗하게 씻어준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의 배경이기도 했던 순천만은 이렇게 갯벌과 갈대밭과 노을이 아름다운 천혜의 관광지다. 하지만 몇 해 전만 해도 순천만을 찾는 발길은 많지 않았다. 여행객을 맞을 채비도 많이 부족한 편이었다. 대대포구에서 이어지는 강변 둑을 따라 작은 음식점 몇 곳이 문을 열고 있을 뿐, 주차장이나 숙박업체 등 편의시설이 턱없이 모자랐다. 

 

 그러나 2008년 열린 제10회 람사르협약 당사자 총회로 인해 순천만 일대가 재정비되었고, 2013년 정원박람회가 열리면서 찾는 발길이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박람회가 끝난 후에도 여행객들의 발길은 전혀 줄지 않고 있다. 황홀한 일몰을 보며 한 해를 정리하기 위해, 지구촌 생태수도를 표방하고 있는 순천만에 날아드는 겨울 철새를 보기 위해 찾아드는 여행객들 덕분이다. 


철새들의 낙원에서 새 희망을 품다

  나이를 먹을수록 흐르는 시간이 아쉬운 법이니 한 해를 보내는 것이 어찌 마냥 즐거울까. 그러나 시간은 눈이 하나지만 동전은 양면인 것처럼 아쉬움 뒤엔 일말의 즐거움도 있는 법이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 새로운 희망을 꿈꿀 수 있으니까. 

  무엇보다 위안이 되는 것은 세계의 생태수도를 자처하는 순천만 일대가 한때 버려졌던 땅에서 자랑스러운 청정 갯벌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동천 일대는 순천시에서 배출한 각종 생활하수가 흘러드는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였다. 개발론자들이 갯벌을 매립해 택지를 조성하자고 주장했지만 시에서 이를 무시하고 50여만 평의 갯벌에 15만 평의 갈대숲을 조성하였다.

  그러자 버려졌던 순천만에 흑두루미, 저어새, 검은 머리 갈매기, 노랑부리 백로 등 11종의 천연기념물을 비롯해 많은 철새들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철새를 보려고 사람들이 찾아오고, 이들을 위해 순천만 일대가 정비되고, 깨끗한 환경과 풍부한 먹이에 다시 철새가 날아들고, 람사르총회가 개최되고 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송년 여행의 최고 명소가 되고. 그런 희망으로 아쉬움을 달래고 다시 힘차게 삶의 터전으로 달려갈 수 있는 곳, 순천만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여행 Tip

  중부 이북에서는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완주순천고속도로를 갈아타고 가는 게 빠르다. 선암사를 먼저 둘러보려면 호남고속도로 승주 I.C에서 빠져나가는 게 편하다. 선암사를 둘러본 후 857번 지방도로를 타고 낙안읍성마을을 구경한 뒤 순천으로 이어지는 우회도로를 타고 10여 분 정도 달리면 순천시내로 접어드는 2번 국도와 만나는데, 여기서 좌회전한 후 조금 달리다 이정표를 보고 우회전하면 순천만이 나온다. 

(관광문의: 순천만관광안내소 061-749-3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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