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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Oct 19. 2020

알록달록 계절을 물들이는 산

국내 최고의 단풍 명소, 내장산

  내장산 국립공원은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이름부터가 그렇다. 안(內)에 뭔가를 잔뜩 감춰둔(藏) 산(山)이라지 않은가. 숨겨둔 보물이 무엇일까? 단풍이다. 산이며 호수며 길이며 여행객의 마음까지 알록달록 물들이는 계절의 선물. 속절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 문득 찬바람이 어깨를 칠 때, 내장산은 꼭꼭 숨겨두었던 보물을 꺼내 펼친다. 아름다운 색채의 향연에 절로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문득 계절이 멈춰 서다

  어머, 아, 우아, 야~ 주봉인 신선봉을 필두로 연자봉, 장군봉, 서래봉, 불출봉 등이 거대한 말발굽 형태로 내장산이 둘러싸고 있는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를 들어서면서 여행객들이 너나없이 내뱉는 감탄사다. 아무리 무딘 사람도, 스스로 감성이 메말랐다 생각하는 이들도, 심장에 털 났다는 무뢰한일지라도 여지없다. 누구나 한 마디씩 탄성을 터뜨린다. 

  그만큼 아름답기 때문이다. 붉고 노란 물감으로 그린 선경이라고 할까. 차마 필설로 온전히 묘사할 수 없어 차라리 가슴이 답답한, 파노라마로 전개되는 계절의 극치를 무심하게 지나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낮게나마, 아니 부끄러움이 많은 이들이라면 속으로라도 끝내 환호성을 터뜨리고 마는 것이다.

  호수를 지나 내장사로 향하는 길목에선 마치 계절이 멈춰 선 것 같은 황홀경에 빠지기도 한다. 어딜 가나 바지런한 발길로 쉴 새 없이 움직이기로 유명한 국민성도 이곳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저기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단풍구경에 정신을 뺏긴 이들이 부지기수다. 

  공원 입구에서 내장사까지 이어지는 2km 구간의 단풍터널은 그래서 길기만 하다. 단풍구경에 나선 여행객들로 붐비는 터에 단풍에 넋을 놓은 이들이 자주 길을 막아서는 까닭이다. 그럼에도 조급해하거나 짜증을 내는 이들도 드물다. 그 눈이 내 눈이고 그 마음이 내 맘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풍은 계절을 완성시키고 사람들을 위로한다. 천지를 물들이는 단풍이 없었다면 어떻게 가을을 실감할까. 턱없이 바빠지는 마음 추슬러 안고 서둘러 다가오는 겨울에 대비할 수 있었을까. 단풍은 이렇게 계절의 전령사, 시간의 길잡이다. 그래서 계절을 놓치지 않으려는 여행객들의 복장 또한 단풍처럼 곱기만 하다.


단풍이 가을을 완성하다

  매년 단풍으로 가을을 완성하는 내장산은 본래 이곳에 있던 고찰 영은사에서 이름을 빌어 영은산이라 불렸었다. 그러다가 산의 계곡이 마치 양의 내장(內臟)처럼 굴곡이 심하고, 그렇게 굽이굽이 이어지는 계곡을 따라 마치 보물처럼 소중한 단풍나무를 숨겨두었다 하여 내장(內藏)산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도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창고 같다는 의미도 품고 있다고 한다.

  산이 아름답고 계곡이 깊어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기도 하는 내장산은 예로부터 조선 8경의 하나로도 유명하였다. 동국여지승람에는 남원 지리산, 영암 월출산, 장흥 천관산, 부안 능가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표기하고 있기도 하다.

  1969년 1월 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1971년 11월에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단풍 성수기에는 하루 10만의 인파가 단풍을 보기 위해 내장산을 찾지만, 그렇다고 가을에만 여행객들이 많은 건 아니다. 매년 100만 이상의 관광객이 내장산을 찾을 정도로 유명한 4계절 관광명소인 것이다.

  내장산 단풍구경이 시작되는 건 공원 입구에서부터다. 공원 입구부터 길을 따라 멋진 단풍나무들이 병사처럼 도열해 여행객들을 맞는다. 천천히 걸으며 단풍에 넋을 뺏길 무렵,  문득 너른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옆에는 계곡물을 막아 만든 인공호수가 눈을 시원하게 씻어준다. 

  광장 중앙에는 작은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연못 주위 감나무들이 파란 하늘 가득 진홍빛 감을 달고 서서 내방객들을 맞이한다. 그 모습이 너무도 정겨워 마치 고향을 찾아온 듯하다.

  호수 주변에 꽃보다 아름답게 핀 단풍을 구경하고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아름드리 단풍나무 사이 백제 무왕 때 영은조사가 창건한 내장사가 보인다. 본래는 50여 동의 건물이 들어선 큰절이었으나 모두 불에 타버렸고 지금은 1975년에 중건한 건물들만 남아 있다. 하지만 유형문화재 49호로 지정된 이조동종과 기념물 63호인 영은사지 터는 변함없이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능선 걸으며 신선이 되다

  아름답기로 천하제일이라고 정평이 난 내장산 단풍은 다양한 수종의 단풍나무가 한데 어울려 자라기 때문이다. 키가 10미터 이상 자라는 내장산 단풍나무와 털단풍, 아기단풍 등은 다양한 색채와 형상으로 멋진 조화를 이루며 보는 이의 넋을 빼앗곤 한다.

  내장산의 아홉 봉우리는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등산로로도 유명하다. 따라서 단품 구경과 함께 산행을 즐기는 것도 좋다. 산이 높지 않아 초보자도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대부분 암봉으로 되어 있어 설사 단풍이 없는 계절에도 그 모습이 장엄하고 아름답다. 덕분에 사시사철 등산객들이 붐빈다. 

  그중 으뜸은 장군봉의 듬직하고 늠름한 모습이다. 신선봉의 주봉다운 무던한 모습과 널찍한 금선대도 보기 좋다. 까치봉, 연지봉, 망해봉은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고 신선봉과 까치봉 사이 금선계곡 막바지의 만장바위 낭떠러지도 볼만하다. 

  서래봉 아래 옛 내장의 벽련암(백련사의 터)에는 희묵대사와 그의 제자 희천대사가 마시고 장사가 되었다는 장군수가 있다. 불출암 아래에 있는 원적암은 절터도 좋고 그 일대의 비자나무가 살아있는 보물이다. 40여 그루의 거목은 500년 수령에도 사철 푸른 잎을 뽐내면서 단풍과 조화를 이룬다.

  내장산을 둘러본 후에는 인근 백양사에 반드시 들러야 후회를 안 한다.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에서 곧바로 연결되는 우회도로를 타고 조금만 가면 나타나는 백양사는 내장사와 마찬가지로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절인데, 국보급 문화재는 없으나 극보전과 사천왕문, 소요대사부도 등 지방유형문화재가 많고 주변 경관이 매우 아름답기 때문이다.


여행 Tip

호남고속도로 정읍 I.C를 빠져나와 내장산으로 뚫린 천변로를 타면 20분 안에 내장산 국립공원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단풍철에는 정읍은 물론 내장산까지 곧바로 연결되는 고속버스가 20분 간격으로 여행객들을 실어 나른다. 성수기에는 인파와 차량이 새벽부터 밀리므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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