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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Oct 19. 2020

흰머리 소년들의 시간여행

추억의 수학여행, 경주가 답이다

  옛날 얘기하는 것도 쉽지 않은 시대다. 뻑 하면 라테 아니냐고 치부하는 세상이니까. 마시는 음료 말고 ‘나 때는 말이야’를 입에 달고 사는 어른들의 꼰대 문화를 비꼬아 부르는, 그 라테 말이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뭐니 뭐니 해도 수학여행하면 경주였다. 지구는 둥글다, 바닷물은 짜다, 수학여행은 경주다. 불변의 진리였다. 1970년대 중후반, 고등학교 시절, 나 때는 말이다. 

  1968년 12월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주는 중앙선과 동해선 철도, 경부고속도로가 지나는 교통 요지에 있고, 불국사를 비롯해 석굴암, 첨성대, 안압지 등 문화유산과 볼거리가 풍성하다. 불국사 숙박단지는 단체 여행객들이 묵어가기 좋은 시설로 개발되었다. 가히 공부와 여행을 겸하는 최적의 수학여행지 아닌가. 

  정작 나는 경주 수학여행을 다녀오지 못했다. 나 말고도 여럿 있었다. 예비고사 준비를 핑계 대거나 개인 사정을 내세우기도 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이 진짜 이유였다. 안 간 게 아니라 못 간 거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0년 되는 해에 모교를 방문하는 홈커밍데이(Home Coming Day)라는 행사가 있다. 과문(寡聞)해서 타교 사정은 잘 모르지만 모교에서는 동기회를 중심으로 매년 열고 있다.

  지난 2009년 우리 기수 차례가 되어 우여곡절 끝에 행사를 마쳤는데, 이후 등산모임을 필두로 각자 형편과 취향에 따른 소모임이 활발해졌고 술자리도 잦아졌다. 한 번은 술자리에서 수학여행이 화제에 올랐다. 다들 30여 년 전 다녀온 경주 수학여행을 떠올리며 신이 난 가운데, 한 친구가 제안했다. 

  “우리 추억의 수학여행 한 번 다녀올까? 사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못 갔었는데.” 

  너도 나도 가자고 난리법석이었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모두들 나를 쳐다봤다. 동기회 총무를 맡고 있던 내게 책임지고 여행을 추진해보라는 눈빛이었다. 수학여행을 못 갔던 나로서는 불감청(不敢請) 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 아닐 수 없었다. 

  동참할 친구들을 모으는 동시에 일정을 짜고 버스 대절과 숙소 예약을 병행했다. 여행지는 물론 경주였다. 수학여행 필수코스인 불국사 답사와 토함산 일출 감상을 위해 숙소도 불국사 숙박단지로 정했다. 

  한글날이지만 공휴일은 아니었던 2010년 10월 9일 토요일.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종합운동장역에 하나 둘 모습을 보이더니 대절한 버스가 도착하기도 전에 동기들이 모두 모였다. 슬슬 새벽잠이 없어질 나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기대가 컸던 모양이었다. 

  동창회에 나가면 과거로 돌아간다더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동창회는 초등학생으로, 중학교는 중학생 수준으로. 추억의 수학여행이 딱 그랬다. 딱 고등학생 수준의 농담에, 하는 짓 또한 딱 그랬다. 엄중하게 생명을 다루는 의사, 인권을 위해 헌신하는 변호사, 나라 경제를 걱정하는 금융인과 대기업 간부. 다들 어디 가고 딱 그 수준의 까까머리 소년들뿐이라니. 

  그렇게 웃고 떠들면서 여행은 시작되었다. 미리 신청했던 포항제철 견학을 마지고 호미곶 광장으로 이동해 바다 한가운데 선 상생의 손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해보고, 귀하다지만 내 입맛엔 맞지 않았던 고래 고기 회에서 날 것 그대로의 여행을 만끽하고. 그렇게 어두워져 도착한 숙소에서 다시 부어라 마셔라. 

  그리고 술에 취해 잠들었다가 일찍 깨어난 새벽. 조금 외설스럽지만 빳빳해진 팬티 속에서 나는 학창 시절 그랬을, 딱 그 수준의 진짜 수학여행과 맞닥뜨렸다. 먼저 잠든 내 팬티 안에 누군가 치약을 짜 놓은 것이었다. 그것도 거의 한 통 분량을. 화가 나는 대신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 이런 게 수학여행이지.

  서둘러 씻은 후 대기하고 있던 버스에 올랐다. 토함산 정상 주차장은 아직 어둡고 제법 쌀쌀했다. 석굴사 앞에서 잔뜩 어깨를 웅크리고 일출을 기다렸다. 멀리 캄캄한 바다에서 조업하는 어선들의 전등 불빛이 별처럼 반짝였다. 잠시 후 빛이 잦아들더니 낮게 깔린 구름 뒤로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침 식사 후 일정에 따라 불국사를 찾았다. 느낌이 새로웠다. 문화유산 하나하나가 사진으로 보았을 때와는 격이 달랐다. 그냥 눈으로 보여지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체득되었다. 물아일체(物我一體)까진 아니더라도 잘 익은 포도주를 마실 때처럼 그윽했다고 할까. 정겨운 벗들과 함께한 덕분이리라. 

  불국사를 돌아본 후 계림 경주역사유적지구로 이동해 문화관광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다양한 문화재를 들러보았다. 해설사의 친절한 목소리를 통해 신라인의 지혜와 천년 경주의 가치가 새롭게 다가들었다. 그렇게 답사가 끝나고 여행도 마무리되었다. 이제 귀로에 오를 시간. 

  이틀 동안의 강행군에도 누구 하나 지친 기색이 없었다. 산삼이라도 먹은 듯 싱싱했다. 싱거운 아재 개그에도 박장대소가 이어지고, 다소 거친 장난에도 웃음꽃이 만발했다. 서서히 길이 막히기 시작했지만 짜증은커녕 흐르는 시간이 아쉽기만 했다. 술과 벗은 오래 묵을수록 좋다더니, 버스 안이 잘 익은 우정의 향기로 그득했다. 

  귀경 후에도 그 향기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짙어졌다. 결국 다시 추억의 수학여행이 기획되었고 이후 새로운 친구들이 동참하는 가운데 여러 차례 경주여행이 이어졌다. 


  그리고 2020년 환갑을 맞은 기념으로 또 한 번의 추억여행이 기획되었다. 이번에는 부부동반으로 추억의 신혼여행을 겸하기로 했다. 경주는 한때 최고의 신혼여행지 아니었던가. 봄꽃도 구경할 겸 3월 출발을 목표로 여행을 준비하던 중 갑자기 코로나 19 사태가 불거졌다. 여행은 무한 연기되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미룰 수도 없었다. 환갑 기념 여행이니 환갑을 맞은 해에 떠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의견이 팽배한 가운데 급박했던 코로나 19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는 기미를 보이자 우리는 마침내 떠나기로 결정했다. 다가오는 10월 24일 일박이일 일정으로, 물론 경주로.

  귀가 순해진다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번 여행은 덜 시끄럽고 장난도 덜 치려나? 결코 그럴 리 없다. 그래서 더욱 기대가 된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라지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 것처럼, 우정도 그대로고 즐거움도 그대로일 테니까. 수많은 여행지가 있지만 추억의 수학여행하면, 아니 여행하면 항상 경주가 답인 것처럼.


*** 이 글을 쓰던 8월 초까지만 해도 10월 환갑여행은 확정적이었으나 8.15 광복절 이후 확진자가 급증하고 정부가 거리두기 2.5단계를 실시함에 따라 여행을 취소했다. 대신 하루빨리 사태가 종식되고,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는 날 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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