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민석의 책 읽어드립니다」를 읽고
성찰이 필요한 시대다.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졌고, 향후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지, 지금 당장 필요한 건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대비해 나가야 할 것인지. 성찰과 반성, 정확한 진단과 개선방향 정립, 그리고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느닷없이 나타나 우리네 일상을 온통 집어삼킨 코로나 19 사태에 대해서 말이다.
다행히 사태가 발발하자마자 세계 각국은 빠른 대응에 들어갔다. 각기 역량을 갖춘 집단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각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덕분에 오점과 오류 투성이면서도 심각한 위기 국면에서 놀라운 위기 대처능력을 발휘했던 인류의 현명한 판단에 다시 한번 기대를 걸 수 있게 되었다.
한국사 강사로, 방송인으로 유명세를 탄 설민석 작가의 신작 「설민석의 책 읽어드립니다」 역시 시국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이지 싶다. tvN을 통해 방영된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강독했던 책들 중에서 다섯 권을 선정, 독자들이 알기 쉽게 풀어쓴 독후감 형식의 신작이 가리키는 방향부터 그렇게 읽힌다.
작가가 선정한 책들의 주제며 내용도 그렇다. 리처드 도킨스가 쓴 「이기적 유전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알베르 카뮈 「페스트」, 혜경궁 홍 씨 「한중록」, 그리고 제러미 리프킨의 「노동의 종말」.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작가들이 한 결 같이 지금 시대를 예견하고 쓴 것 같은, 예언서 같은 작품들 아닌가.
서문을 대신하고 있는 소설가 장강명 씨와의 대담에서도 이를 밝히고 있다. 코로나 19 대유행으로 인해 세계가 정지된 지금 당장 필요한 성찰과 교훈을 얻는데 적합한 책들이라고. 그래서 인류 성장의 토대인 땅과, 존재 자체로 더불어 살아가게 만드는 사람들을 주제로 삼은 책 다섯 권을 선정했다고. 이 책들을 바탕으로 현재를 성찰해보고, 그 결과를 토대로 향후 인류가 나갈 길을 모색해보고자 했다고.
이어 보다 구체적으로 책의 큰 주제인 땅과 관련해서는 생명이 태동해 유유히 흐르는 원리를 담은 「이기적 유전자」를, 또 하나의 주제인 사람에 대해서는 앞으로 우리 인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살펴보는 「사피엔스」를 선정했다고 밝힌다.
급변하는 시대에 전염병과 맞서 싸우는 인간군상을 「페스트」를 통해 만나고자 했으며 「한중록」의 절절한 사연을 통해 우리 미래의 근간을 이루는 진짜 교육에 대해 생각해 봤다고 한다. 아울러 현재 세대가 겪고 있으며 다음 세대 역시 겪게 될 미래사회에 대한 토론의 장으로서 「노동의 종말」을 선정했다고 덧붙인다.
한편 작가 스스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대한민국의 전기수, 설민석의 독후감’이다. 독후감은 독서 후에 얻은 생각이나 느낌을 쉽고 짧게 정리한 글이다. 따라서 때로는 글쓴이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에서 읽힐 수 있는 단점이 상존한다. 원작을 읽지 않고도 읽은 것 같은 착시현상에 빠지게도 한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쓰지 않은 것만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으니까. 작가 역시 이 점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책을 전시회 브로슈어 정도로 이해해 달라고 청하기도 한다. 브로슈어를 보고 전시회에 다녀올 것을 결심하듯, 자신의 책을 징검다리 삼아 원작 읽어 보기를 강권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가의 조언에 기대어 새로 원작을 읽어본 후 확연히 알게 되었다. 아무리 정교하게 꾸민다 해도 진품과는 비견할 수 없다는 것. 매우 뛰어난 평자라 해도 원작을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그걸 새로운 글로 가공해 다시 전달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아울러 일종의 독후감 격인 작가의 신작에 대한 독후감을 쓰는 것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도.
어려웠지만 즐거움도 없진 않았다. 무슨 영화제였던가,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인데 상을 타서 민망하다던 어느 배우의 수상소감이 떠올랐다. 신작이 그랬다. 작가 특유의 통찰력과 전달력을 토대로 어려운 원작들을 맛깔나게 요리해내는데, 숟가락도 필요 없었다. 공짜 술을 얻어 마신 듯 황홀했다.
더욱 군침 돌게 만드는 건 원작들의 품격이다. 한 편 한 편이 발표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 오래도록 당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제공하는 스테디셀러, 시대를 관통하는 진리를 담은 수작 중의 수작, 때론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인생의 책들 아닌가. 그러니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좋은 재료가 훌륭한 요리의 원천 아니던가.
읽는 즐거움에서 그친 것도 아니었다. 「설민석의 책 읽어드립니다」의 진정한 미덕은 코로나 19 장기화로 인한 사회적 집단 우울증, 소위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는 방법과 다가오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열어젖힐 지혜를 제공하는 데 있다.
인간은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존재이지만 극단적인 위기상황에서는 놀라운 이타심을 발휘하기도 한다. 자본주의를 금과옥조로 종의 파괴와 환경오염을 아랑곳하지 않는 사피엔스지만 스스로 과오를 비판하고 개선하기도 한다. 페스트가 창궐하여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가운데서도 협력과 연대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릇된 교육관으로 왕이 세자를 죽이는 비정한 상황에서 진정한 교육을 모색하기도 하고 AI가 노동을 독식해 인류 모두가 실업자로 전락하는 시대에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패러다임 창출을 실현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 모든 것이 인간이라고 강변한다. 이기적이면서 이타적인, 탐욕스럽지만 나눌 줄 아는, 스스로 파괴한 것을 스스로 복구할 줄 아는, 그 모든 존재가 인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희망은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사색의 결과, 신작을 통해 독자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선물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