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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함종만 Dec 14. 2020

비움, 그 아름다운 욕망에 대하여

민족의 영산, 태백산을 오르며

계절과 산에도 궁합이 있다

  다시 내려올 것을, 뭐 하러 힘들게 올라갑니까? 솔직히 젊은 시절의 필자 역시 그랬다. ‘산이 거기 있어 오른다’고 한 영국의 등반가 말로리의 말은 그저 궤변일 뿐이고, 한가한 사람들이 주체할 수 없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산에 오르는 것이라 치부해 버리곤 했다. 나이 사십이 넘어 우연히 산을 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산이 좋아지기 시작했고, 주말마다 산을 찾으면서 등산의 묘미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도 하나 둘 깨닫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은 전문 산악인이 아닌 아마추어 등반객들의 대다수가 중년 이상의 연배라는 것이다. 사오십대가 주류고 백발의 어르신들도 적지 않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산에서 젊은 처자를 만난다는 것은 청년 등반객을 만나는 것만큼 드문 일이다. 하긴 젊은 이들이야 등산 말고도 즐길 게 많고 할 일도 태산인데, 한가하게 산을 찾을 이유가 없겠지.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계절마다 오르는 산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봄에는 동백이나 철쭉이 아름다운 월출산, 선운산, 소백산  등이 인기고 여름엔 계곡이 향기로운 덕유산, 지리산을 찾는 이들이 많으며 가을엔 단풍 천국 내장산이나 억새능선으로 유명한 민둥산을 즐겨 찾더라는 식이다. 물론 수학공식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사계절 가리지 않고 즐겨 찾는 산들도 많다. 그럼에도 계절과 산에 나름대로 궁합이 있다고 믿는 등반객도 적지 않다. 

  이렇게 불문율처럼 이어져 내려오는 계절과 산의 궁합이 딱 들어맞는 산 중 하나가 겨울 태백산이지 싶다. 설경으로 특히 등반객을 유혹하는데, 태백산 정상 부근의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는 동화책 속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살아서 천년, 다시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이 흰 눈을 배경으로 독야청청 서있는 모습도 그림처럼 아름답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다운 설경을 감상하려면 적지 않는 땀방울을 흘려야 한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유일사에서 2시간 가까이 땀을 흘려야 멋진 설경도 즐길 수 있다.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은 등산 들머리의 해발이 높아 정상까지 거리가 멀지 않고, 등산로도 완만하다는 것이다. 해발 900미터에서 등산이 시작되니 정상(1,567m)까지 고도 6~7백 미터만 높이면 되고 다소 가파른 오르막을 지나 일단 능선에 올라서면 수월하게 정상에 닿을 수 있다. 

  그래서 겨울이 시작되면 유난히 태백산을 찾는 등반객들이 많다. 새해가 시작될 무렵이면 엄청난 등반객이 태백산으로 몰려드는데, 태고적부터 제사를 지내왔다는 천제단에서 새해 일출을 즐기려는 등반객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한다.

  어차피 사람과 부대끼며 사는 게 우리네 인생이지만, 수백 명이 한꺼번에 몰리는 신년 초에는 태백산을 피하라고 권하고 싶다. 산 경치, 눈 구경하러 왔다가 등반객들 뒷모습만 즐기다 갈 수도 있고, 도립공원의 수려한 산세가 인파에 찌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는 것도 썩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도 여간 해서는 연말연시는 피하는 편이다. 진짜 좋은 것을 혼자 아껴가며 즐기고 싶은 욕심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발길에 신음하는 산의 통증에 저절로 가슴이 저려오는 까닭이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집에다 숨겨놓고 싶을 만큼 산세가 수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려오기 위해 오르는 것이다

  물론 발칙하고 가당찮은 상상일 뿐이다. 만인이 즐기는 민족의 영산을 집에 숨겨두고 혼자 즐기다니,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될 것이다. 산이 정말 좋은 것은 개개인의 치졸한 욕심을 특유의 넉넉함으로 안아주는 것인데, 그렇게 산을 오르고도 매양 산이 전하는 넉넉함을 옹졸한 욕심으로 갈무리하려 들다니, 멀어도 한참 멀었나 보다. 

  천제단이 건너다 보이는 태백산 정상 장군봉에 오르면 한없이 자애롭고 포근한 산의 마음이 가슴에 사무친다. 백두대간이 지나가는 능선 아래 크고 작은 봉우리들이 파도를 이루며 천하절경을 펼쳐 보이는데, 벌린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미처 눈이 쌓일 새도 없이 맨살을 드러낼 정도로 거친 바람이 자꾸 등을 떠밀지만, 경치가 너무 좋아 이를 악물고 버틸 정도다.

  완만하게 하강곡선을 그리는 능선을 따라 천제단에 닿는다. 정상인 장군봉보다 사람들이 오래 머물다 가는 곳이다. 바람에 무너질까 큼직큼직한 바위로 쌓아 올린 천제단에 올라 절을 하면서 소망을 비는 이들도 많다.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자연석으로 쌓은 20평가량의 원형 돌 제단인 이곳에서 저 먼 삼국시대에는 왕이 올라와 친히 천제를 올렸다고 할 만큼 뭔가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것 같다. 간절히 기원하면 한 가지 소원쯤은 너끈히 들어줄 듯하다. 

  순서를 기다려 제단에 올라설까 하다가 슬그머니 발길을 돌렸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동안 산이 베푸는 온갖 선물을 충분히 받았는데, 여기서 더 욕심을 내다가는 복이 아니라 벌을 내리지는 않을까 해서다. 눈과 가슴을 채워주는 황홀한 설경이나 한 발 한 발 걸어 오르며 배운 땀의 가치가 아니더라도 산이 주는 선물이 어디 한 두 가지인가. 산이 이곳에 있고 스스로 걸어 올라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을까.

  천제단을 지나 하산을 서두르면서 어째서 중년이 넘어서야 산을 찾는 이들이 많은지 문득 알게 된다. 삶의 경륜을 통해 어느 정도 비움의 미학을 깨쳐야 비로소 산이 가슴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바리바리 온갖 생활의 잡동사니를 짊어지고는 결코 산을 오를 수 없다. 가벼운 배낭과 비운 마음으로 올라야 가뿐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그래야 수월하게 하산도 할 수 있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힘찬 나날을 보낼 수 있다.

  그렇다면 결국 산행이란 하산을 위해 존재하는 즐거운 행위나 다름없지 않은가. 정상에 서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마음까지 훌훌 털어버리고 가뿐하게 내려설 줄 아는 여유. 비움으로써 더 많은 채움을 체득할 수 있는, 그 아름다운 욕망. 그러니 어차피 내려올 것을 뭣하러 산에 오르냐는 젊은 시절의 푸념이야 말로 무지고 궤변이다. 애초부터 내려오기 위해 오르는 것임을, 조용히 사라지기 위해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우리 인생인 것을. 

  하다가 이런 생각 또한 사색의 지나친 과대포장이지 싶어 슬며시 쓴웃음을 짓는다. 허청허청 세상 속으로 내려서며 단군 비각과 망경사를 지나면 저마다 비닐포대 등을 이용, 미끄럼을 타던 유명한 내리막 경사가 나타난다. 요즘은 사고가 늘면서 금하고 있지만, 더러 추억처럼 준비해온 비닐포대를 타고 재빨리 미끄러져 내려가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서둘러 내려선 곳에는 매년 1월부터 2월 초에 걸쳐 태백산 눈꽃축제를 여는 당골광장이 기다리고 있다.

관광문의: 태백시청 관광문화과(033-550-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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