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지만, 나는 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탓한다.
발터 벤야민은 《일방통행로》에서 이렇게 썼다. 작가가 글을 쓸 때 "아무 도구나 사용하지 않도록 할 것. 특정한 종이, 펜, 잉크를 좀스럽게 보일 정도로 고집하는 태도가 도움이 된다. 사치를 추구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도구들을 풍부하게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도구에 대한 집착에 이름이 생긴 것 같았다. 나는 도구에 좀스럽게 집착하는 편이다. 그것도 꽤 오래전부터.
알루미늄 팬을 예로 들면, 이건 사실 좀 까다로운 집착이다. 알루미늄은 관리가 번거롭다. 산성 재료를 오래 두면 용출 문제가 생기고, 용도에 따라 가려서 써야 하고, 쓰고 나면 나름의 방식으로 손질해야 한다. 모르고 쓰면 공포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알고 쓰면 조금 다른 물건이 된다. 귀찮음을 감수하면서까지 이걸 고집하는 이유를 물으면, 솔직히 말문이 막힌다. 그냥 이게 좋다. 그 이상의 설명이 잘 안 된다.
예전엔 대량생산된 물건을 좋아한다는 게 좀 이상한 일처럼 느껴졌다. 공장 컨베이어 위에서 수천 개가 찍혀 나온 것을, 무슨 이유로 특별하게 여기냐고. 그런데 내 손에 들어와 불 위에 올라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팬은 수천 개 중 하나가 아니라 그냥 내 것이 된다. 바닥에 생긴 흠집, 옆구리가 살짝 찌그러진 자리, 오래된 열기가 남긴 검고 얼룩진 그을음. 새것일 때는 없던 것들이다. 새것일 때보다 지금이 더 손에 맞는다.
그 과정에서 도구에는 기억이 쌓인다. 처음으로 카르보나라를 망쳤을 때도 이 팬이었고, 어쩌다 잘 됐을 때도 이 팬이었다. 실패와 성공이 교대로 눌어붙어 있는 물건이라고 하면 좀 과장이지만, 터무니없는 말도 아니다. 도구는 쓸수록 중립을 잃는다. 그리고 그 편향이 쌓일수록 나는 이걸 더 아끼게 된다.
때로는 펜 하나 때문에 글이 쓰고 싶어지고, 팬 하나 때문에 요리가 하고 싶어진다. 도구는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과정에 영향을 준다. 손에 쥐는 감촉, 행위 속의 즐거움, 이유 없는 정서적 안정 같은 것들. 물론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는 말’도 안다. 그런데 나는 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도구를 아주 열심히 탓한다. 벤야민이 말한 '좀스러운 고집'은 아마 이런 것이었을 거다. 사치가 아니라, 태도. 다들 각자의 도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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