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방망이로 파스타 반죽을 밀었다

마타렐로 대신 야구방망이를 산 사람의 변명

by 놈팡이세끼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다. 모순처럼 들리는데, 내가 모순적인 놈이란 걸 인정한다. 뭐든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면 시작을 안 한다. 도구가 없으면, 환경이 안 따라주면,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문제는 한 번 뿐인 인생에서 그런 조건들이 모두 갖춰지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나는 가지지 못한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 몸부림쳤고, 그 고통을 반추하는 데 인생의 반 이상을 날려먹었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을 이렇게 비유했다. “인생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시계추와 같다” 나는 완벽을 갈구하는 욕망이 충족되지 않아 고통받고, 그 압박을 피해 미루다 권태에 빠지는 순환을 반복했다.


이탈리아 요리에 빠져들면서 쿠치나 포베라(cucina povera)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가난한 자들의 요리. 없으면 없는 대로, 주어진 것을 끝까지 창의적으로 쓰는 태도다. 이탈리아 농부들은 불완전한 조건을 출발점으로 삼아 요리를 발명했다. 그들이 움직인 건 진짜 배고팠기 때문이다. 나는 아마 덜 배고팠던 것 같다. 이탈리아 농부들은 불완전한 조건에서 요리를 를 만들어냈다. 나는 완벽한 조건을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안 했다. 나 같은 놈팡이는 야구 방망이로 두들겨 맞아도 정신을 차릴지 모른다.


야구 방망이 하나를 장만했다. 마타렐로가 갖고 싶었다. 이탈리아 전통 스폴리아 반죽을 미는 긴 나무 밀대. 에밀리아로마냐 할머니들이 나무판 위에서 팔 전체의 무게로 반죽을 밀어내는, 그 도구. 그런데 이탈리아산 마타렐로는 비싸고 구하기도 쉽지 않다. 나는 개거지 놈팡이다. 이건 명백한 사실이다. 집에 긴 막대기 하나가 배송됐다. 어쩌다보니 충동적으로 싸구려 야구방망이를 하나 사버렸다. 나무 배트가 마타렐로와 비슷하게 생겨먹었다는 이유로. 논리적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도착한 야구방망이의 표면은 처참했다. 나무결이 거칠게 일어나 있었고,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알 수 없는 오염물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위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랩을 칭칭 감았다. 지금 생각하면 멍청한 판단이었지만, 그때는 꽤 영리한 해결책처럼 느껴졌다. 반죽을 밀기 시작하자마자 반죽이 랩에 달라붙었다. 스폴리아의 본질은 나무에 있다. 나무가 반죽의 수분을 조금씩 빨아들이고, 반죽은 그 저항 속에서 늘어나고 얇아진다. 그런데 나는 그 나무를 비닐로 봉인해버렸다. 끈적이는 막대기를 들고 서서, 나는 꽤 오래 그 상황을 납득하려 했다.


야구방망이에는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야구방망이는 타자의 손목 스냅을 위해 손잡이 쪽이 가늘고, 공을 맞히는 배럴 쪽이 두껍게 설계된 물건이다. 반죽을 미는 도구로는 구조적으로 잘못됐다. 밀 때마다 두께가 달라지니 반죽이 균일하게 펴질 리가 없었다. 한쪽은 두껍고 한쪽은 얇고, 어떤 부분은 아예 안 닿았다. 마타렐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정한 원통형인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야구 방망이에 화가 났다. 랩이 감긴 야구 방망이를 다른 야구 방망이로 마구 패주고 싶었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 나는 장인이 아니기 때문에 도구를 아주 열심히 탓한다. 결국 반죽용 밀대를 새로 샀다. 경험인지 학습인지 모르겠지만, 반죽은 다시 시작됐다. 손으로 치대고 밀대로 펴는 그 행위가, 이상하게 즐거웠다. 반죽의 탄성이 손바닥으로 올라오는 감각. 밀었다가 접고, 다시 미는 그 단순한 반복. 생각이 끊어지고 손만 남는 어떤 순간이 왔다. 명상이라는 말이 좀 거창하게 느껴지지만,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손으로 하는 일에는 머리가 비워지는 특별한 구석이 있다.


생각해보면 나의 깨달음은 전부 실패에서 왔다. 랩이 반죽에 달라붙지 않았다면 나무의 마찰이 왜 중요한지 몰랐을 것이다. 야구방망이가 균일하게 펴지지 않았다면 원통형 밀대의 의미를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실패는 지식과 경험을 몸에 새기는 방식이 좀 과격할 뿐, 결국 가장 확실한 교사다. 완벽한 도구를 갖출 때까지 기다렸다면 나는 지금도 반죽을 한 번도 밀어보지 못한 사람으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시작했기 때문에 실패했고, 실패했기 때문에 조금 알게 됐다. 쿠치나 포베라도 결국 수백 년의 실패가 켜켜이 쌓인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결국 요리에서 중요한 건 도구의 성능이 아니라, 그 도구를 쥐고 반죽 앞에 선 사람의 감각이고 태도다. 야구방망이를 들던, 막대기 들던, 각목을 들던 결국엔 그걸 들고 있던 내 손이 문제다. 거창하게 방구석 철학자처럼 나불댔지만, 여전히 볼로냐산 마타렐로가 너무 갖고 싶다. '중요한 건 도구가 아니라, 도구를 쥔 사람이다'라는 깨달음까지 얻은 놈팡이는 지금 장인이 깎은 밀대 가격을 보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야구 빠따로 좀 맞아야 할 것 같다. 야구 방망이를 버리지 않았으니, 도구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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