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안 하는 달콤함'

나 같은 놈팡이도 '아무것도 안 하는 달콤함'을 느껴도 될까?

by 놈팡이세끼

나는 한때 존재론적 위기에 빠진 적이 있다. 세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나 같은 쓸모없는 놈이 이 세상에 존재해도 되는가.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방구석에서 읽은 필립 로스의 소설 《미국인의 목가》에 메리라는 인물이 나온다. 세상에 조금도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집착이 자이나교 신앙으로 번지고, 결국 음식도 먹지 않고 파리해지는 여자다. 그 인물에 이입한 적이 있다. 최대한 숨을 적게 쉬고, 공간을 최소한으로 차지하고,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말자. 그게 내 결론이었다. 그 결론은 꽤 우울했다. 나는 모기조차 죽이기 어려웠다. 남의 피를 빨아 먹고 사는 게 꼭 나 같았다.


방구석에 처박혀 수많은 영화를 봤는데, 실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영화가 있다. 코엔 형제의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다. 더 듀드라는 놈이 나온다. 그는 40대 중반으로 추정되며, 직업이 없다. 실업수당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그는 친구들과 볼링을 치고, 화이트 러시안을 마시고, 목욕을 즐긴다. 한마디로 개놈팡이다. 더 듀드는 깡패 구타, 성기 절단 위협, 납치극, 속임수, 차 도난, 정액 도난, 친구 사망 등 온갖 사건을 겪는다. 더 듀드가 카오스 같은 사건들을 겪고 난 직후에도 볼링복 차림으로 볼링을 즐긴다. 더 듀드는 나 같은 놈팡이가 존재하는 방식을 보여줬다.


더 듀드는 강박 없이 흐름에 맡기고, 단순하고 소박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을 보여준다. 더 듀드의 주옥같은 대사들이 있다. "Yeah, well, you know, that's just like, your opinion, man." ("그래, 그건 그냥 네 의견일 뿐이야"), "Life goes on, man." ("인생은 계속되니까"), "Take it easy, man." ("진정해“).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대사는 마지막에 나온다. "The Dude abides."'더 듀드는 살아남는다'처럼 번역된다. 참고 견디다, 그 자리에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으로 지속한다에 가깝다. 세상의 무의미함, 불확실성, 부조리함을 논리적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받아들이고 흘러간다. 미국 로스 앤젤레스의 놈팡이의 삶은 이탈리아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이탈리아어로 돌체 파르 니엔테(dolce far niente)는 '아무것도 안 하는 달콤함'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걸 게으름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광장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손에 들고 아무 목적 없이 앉아 있는 것. 그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태도다. 끊임없는 생산성 강박에서 벗어나 존재의 기쁨을 느낀다. 세상은 효율과 생산성을 노래한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힌다. 내가 엄마한테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은 "그거 하면 쌀이나 오냐 밥이나 오냐?"였다. 한국과 미국은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으로 환산한다는 점이 닮아 있는 것 같다. 너는 무엇을 만들었냐. 너는 얼마를 벌었냐. 너는 얼마나 성장했냐. 쉬는 사람은 뒤처지는 사람이다. 이 문화권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죄에 가깝다.


방구석에서 본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다음 침공은 어디?》에 이탈리아의 모습이 나온다. 이탈리아에는 돌체 파르 니엔테가 제도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매년 8월 15일 전후 2주, 페라고스토(Ferragosto). 공장이 멈추고, 관공서가 닫히고, 도시가 텅 빈다. 이탈리아 전체가 집단적으로 아무것도 안 한다. 오후 1시에서 4시 사이, 시에스타. 가게 문이 닫히고, 전화가 끊기고, 세상이 잠시 멈춘다. 마이클 무어가 이탈리아 경영자에게 묻는다. "그러다 회사가 망하지 않냐?" 그 경영자는 잠깐 생각하더니 대답한다. "쉬어야 더 잘 일한다." 미국인에게는 이해 불가능한 대답이다.


뽀모도로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고, 그 영상을 올렸을 때 댓글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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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따끔했다. 금수저도 아닌 놈팡이 주제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요리를 했다. 댓글을 남긴 사람의 말에는 “모두가 바쁘고, 시간은 돈이며, 돈이 없으면 여유를 느낄 수 없다”는 신념이 깔려 있다. 효율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에게 한 시간 반짜리 파스타는 낭비다. 그런데 나는 그 한 시간 반 동안 토마토가 뭉개지면서 소스가 되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도 충만하려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느껴야 한다. 불안이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걱정이 멈추고, 과거의 후회가 잠잠해질 때 비로소 가능하다. 나는 잡념에 빠지지 않고 요리에만 집중했고,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꼈다. 그게 내 돌체 파르 니엔테였는지도 모른다. 뽀모도로 스파게티의 맛이 달콤했냐고 물으면, 존나 달콤했다.


이탈리아는 오래전부터 비판받아왔다. 느리다. 비효율적이다. 국가 부채가 GDP의 130%를 넘는다.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은 카르보나라 하나를 두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수십 년째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유국 1위다. 파스타 한 그릇에 지역마다 다른 철학이 담겨 있다. 더 듀드도 비슷하다. 더 듀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 진실을 완전히 밝히지도 못하고, 정의를 실현하지도 못하며,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리지도 못한다. 겉보기에 하찮은 러그에 애정과 시간을 쏟는다. 사람들은 여전히 더 듀드를 좋아하고 그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이탈리아와 더 듀드는 해결 되지 않은 문제들을 안가 계속 살아간다. 쓸모없다고 조롱당한 놈팡이는 자신의 삶의 리듬을 잃지 않았고, 비효율적이라고 비판받는 이탈리아는 찬란한 문화를 지속하고 있다.


인류가 만든 위대한 것들, 예술, 철학, 과학 등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서 태어났다. 내가 방구석에서 탐닉하며 진정 사랑했던 것들은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에서 태어났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가 남긴 재산 덕분에 철학에만 심취할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쇼펜하우어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생산성의 세계로 들어갔다면, 그의 철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사업 대신 세계를 여행하고, 사유하고, 글을 썼다. 나는 한때 돈 걱정 없이 책을 읽고 글만 쓰는 삶을 꿈꿨고, 쇼펜하우어 같은 아버지를 갖는 걸 부러워했다. 내가 입양되지 않는 이상 바꿀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내가 취할 수 있는 생존 방식을 택했다. 놈팡이라는 정체성을 나한테 심은 것이다. 더 듀드를 페르소나로 삼은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자조적인 농담과 자학적인 개소리를 하면서 고통을 흘려보내고 살아 나가는 것이다.


장자에 쓸모없는 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아무 쓸모도 없어서 아무도 베어가지 않은 나무가 수백 년을 살아남는다. 쓸모 있는 나무들은 차례로 목재가 되고, 땔감이 되고, 가구가 된다. 쓸모없는 나무는 그냥 서 있다. 쓸모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살아남았고, 오랫동안 자기 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 무용지용(無用之用). 쓸모없음의 쓸모다. 착취당하려면 일단 쓸모가 있어야 한다. 쓸모 있는 것들이 먼저 소모된다. 나 같은 놈팡이는 착취당할 일이 거의없다. 이걸 자랑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실이다.


앞으로도 나는 뽀모도로 스파게티를 만들 때 기꺼이 냄비 앞에서 한 시간 반을 쓸 것이다. 시간이 더 걸리는 라구도 만들고, 오소부코도 만들고, 마타렐로로 생면 파스타도 만들어 먹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나한테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떤 한가한 놈이 무슨 금수저도 아니고 요리하는 데 시간을 그렇게 쓰냐고 한다면,


"Yeah, well, you know, that's just like, your opinion, man."
("그래, 그건 그냥 네 의견일 뿐이야, 맨")

https://youtube.com/shorts/bWu70EYLV4U?si=9d_ZEuG6zUtl1C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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